대견한 나, 인정해 주기.
일찍 졸려서 아이랑 같이 잠이 들면 새벽에 잠이 깨서 이런저런 잡념으로 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 걸까. 나는 필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취미는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각을 잡고 읽는다. 워낙 평소 생각이 많다 보니 온전히 책에만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진도가 영 느린데, 그래도 책을 읽으면 좋아서 읽는다. 이게 맞나, 틀렸나, 싶은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맞다며 확인받는 느낌도 든다. 힘이 난다. 주변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나누고 싶은 내용들을 나는 책을 통해 듣는다. 내 관심사에 대해 나눌 이는 없어도 책을 통해 비록 듣기만 해야 하지만, 그래도 좋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틀만 일해서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많았다. 청소년상담사 보수교육도 들었고, 공개사례발표 참관도 틈틈이 했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도 참여해 들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려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상담을 업으로 삼아 상담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그냥 배우고 싶은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상담 일이 좋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의미가 크다.
'마음병에는 책을 지어 드려요.'라는 책 서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돈을 많이 버는 한의사를 꿈꾼 적은 없지만 아픈 사람을 돕겠다는 소명도 없었다. 어지러운 내 마음 하나 잡는 게 목표였다. 내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내가 한의사로 살아가는 이유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나 역시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다. 다만 방송인은 시청률에 민감하고, 정치인은 지지율에 민감하고, 사업가는 매출에 민감한 것과 다르게 나는 내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에 민감하다. 이걸 놓치고서는 환자를 즐겁게 진료하기 어렵다. 한의사로서 인기와 매출이 오른다고 해도 건강과 평화를 잃고서는 의미가 없다. 나를 위해 한 것이 결국 나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도 돕는 길이다. 덕분에 공부도, 진료도 즐겁게 한다."
저자의 고백이 와닿았다. 나 역시 그런 것 같다. 내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내가 상담사로 살아가는 이유다. 나는 나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싶고 그렇게 한 것으로 나를 믿고 찾아오는 내담자를 돕고 싶다. 덕분에 공부도, 상담도 즐겁게 하고 싶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과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그렇지만 [불안의 철학]의 저자가 그러했듯, 내일을 산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뿐이다. 매 순간 일상에 감사하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며, 어쩌면 내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하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만족스러울까를 생각한다. 요즘은 나이 듦과 질병과 죽음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끼고 있으며, 그래서 지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멀티가 안 되는 내가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일도 하며 짬짬이 공부도 하고 양가 어른들을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음에, 그 어느 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만족스러울 만큼 어느 하나도 잘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애쓰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이, 나란 사람을 기준으로 봤을 때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 누구도 모르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알기에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