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이라도 용기가 필요한,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한 왕국을 무너뜨리려고 마음먹은 마법사가 있었어.
그는 그 왕국의 백성 모두가 물을 길어 먹는 우물에 묘약을 풀었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미쳐버리는 묘약을 말이야.
이튿날 아침, 물을 마신 백성들이 모두 미쳐버렸어. 왕만 빼놓고 말이지.
왕과 그 가족을 위한 우물은 따로 있어서, 마법사도 접근할 수가 없었거든.
불안해진 왕은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안전과 공중위생에 관한 일련의 조치들을 내렸어.
그런데 관리들과 경찰들도 이미 독이 든 물을 마신 상태였어.
왕의 조치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 그들은 따르지 않기로 결심했지.
왕의 칙령을 접한 백성들은 왕이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확신했어.
그래서 모두들 궁궐로 몰려가 함성을 지르며 왕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
절망에 빠진 왕은 왕위를 떠날 준비를 했어.
그런데 왕비가 말렸지.
'우리도 우물로 가서 그 물을 마셔요. 그러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아질 거예요.'
왕비가 이렇게 제안했어.
그래서 왕과 왕비는 독이 든 물을 마셨고, 이내 정신 나간 말들을 하기 시작했지.
그러자 백성들은 마음을 돌렸어. 그처럼 크나큰 지혜를 보여준 왕을 무엇 때문에 쫓아내겠어?
그 왕국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어. 백성들이 이웃나라 백성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행동하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왕은 죽는 날까지 왕좌를 지킬 수 있었지."
베로니카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미친 것 같지 않아요."
"아냐, 난 미쳤어. 이제 낫기는 했지만. 내 경우는 아주 간단하거든.
내 몸에 어떤 화학물질을 주사하기만 하면 돼. 하지만 난 그 물질이 단지 내 만성적인 우울증을 해결해 주면 좋겠어.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거든.
바깥에. 빌레트의 담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
"같은 우물물을 마신 사람들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자신을 정상이라고 믿지.
나도 이제 그 우물물을 마신 척할 거야"
_파울로 코엘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중에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맡은 업무를 배우고 익힐 짬도 없이 개강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던 8월,
그리고 개강 후 휘몰아치는 일들을 쳐내느라 몹시 바쁘게 지낸 9월,
9월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9월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일을 하는 동안 예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을 읽었을 적에 당시 마음에 남았던 부분이 계속 생각났다. 미친 사람들이 정상인 세상에서 나만 미치지 않았다면 결국엔 내가 미친 사람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 부분이 내게 꽤 충격적으로 와닿았던 듯하다. 현재 나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다.
나는 상담사이지만 맡은 업무가 명확하지 않아 나는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나를 빼고는 다들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내가 예전에 일했을 때와는 내가 해야 하는 업무의 범위가 너무 달라 조심스럽게 이의도 제기해 보았지만,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전까지 행정직원이 해오던 일도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데, 해야하니 하면서도 동시에 당혹감과 부당함을 느끼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분노는 결국엔 나에게로 옮겨져 왔다.
예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그냥 내가 순순히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강력하게 업무에 대한 범위를 명확하게 해달라고 나의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들은 어찌하든지 간에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내 선에서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사실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위계질서나 업무 분담이 명확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를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로 인한 불편감과 분노를 느끼는 나만 미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냥 나만 적응하면 되는 거라고 거듭 내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내 마음은 매번 그냥 나만 이런 거지 같은 곳에서 나가면 된다고 외쳤다. "이러다 너 정말 미쳐버릴 거야. 이도저도 못하겠으면 그냥 도망쳐! 네가 우선이야."
아무리 무겁게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입사했다. 기회가 있으니 해보고 아니면 관두면 되지, 뭐_ 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처음 책을 읽었던 그때, 베로니카처럼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미친 짓이라면, 나는 그냥 미친 여자로 살겠다고. 그만큼 용기 있고 내면이 단단한 나로 살고 싶다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만은 나를 믿어주어야겠다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입사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퇴사는 너무나 무거운 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