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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Aug 12. 2023

같은 직장에 3번째 입사하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그렇지만 배우는 것도 있어.

7월 1일부로 같은 직장에 3번째로 입사했다. 2번의 퇴사와 3번의 입사인 셈이다.

7월은 대학교 방학기간이어서 크게 바쁘지 않을 시기였지만, 대학의 기관인증평가로 인해 평가를 받느라 꽤 분주한 것 같았다. 나는 기존에 있던 자리가 아닌 새로 충원된 자리에 입사하게 된 셈이었으나, 나의 입사가 확정되자마자 기존에 계시던 선생님 한 분은 퇴사 의사를 밝히셨다고 했다. 그전부터 분위기가 위태롭긴 했으나 어쨌든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태풍으로 인해 목요일에는 평소보다 늦게 출근했다. 방학이지만 다른 행정부서들은 학기 중과 다를 바 없는 듯했고 우리 부서에  각종 양식의 보고서들을 계속해서 요구했다. 8월 1일부로 퇴사한 선생님의 공백이 몹시 크게 느껴진 한 주였다.

이후 채용공고를 내고 면접을 진행했으나 결과는 적임자가 없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재공고를 낸 상황이지만, 내가 같은 곳에 2번이나 재입사할 정도로 전문 인력이 귀한 곳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간 회의 때마다 새롭게 해야 할 업무는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었다. '물론 다 하면 좋죠, 저도 알죠, 그렇지만 누가 언제 다 하냐고요, '라며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현재 상황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탓인지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나는 계속해서 우울감을 느꼈다. 잠들기 직전까지 그날 직장에서 하고 온 업무에 대해 생각하고, 잠들다 깬 새벽에도 내가 맡은 업무가 떠올랐다. 문득 나는 이런 내 모습을 깨달았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다시 내 몸이 버티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그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일해야 한다. 대충대충 하자.

평소 강박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이 높은 내게 '대충 하라'란 말은 '완벽하라'만큼이나 어려운 과업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대충 하지 않으면 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이곳의 시스템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나 자신의 체력과 한계 등 지금까지 쌓여온 데이터들을 종합해서 펼쳐놓고 보면 결코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맡은 일을 최대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내가 맡은 사업은 결국엔 내가 하는 것이므로 누군가가 제안한 방법보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강구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이 제안한 방법은 내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참고는 하되 결정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만 한다. 일이 많으면 많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반드시 말해야 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몫이다. 물론 나만 힘든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들도 다 각자의 업무로 힘들겠지. 나만 일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공유하고 추가되는 다른 업무를 맡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며 힘든 건 힘들다고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이다.


-일하는 틈틈이 반드시 쉬어야 할 것이다.

기한이 임박한 일들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혹은 어느 정도 하던 일을 마무리해 놓고 쉬고 싶어 미루다 보면, 결국엔 일하는 나를 풀가동하다 퇴근 후에는 방전이 되어버린다. 일하는 자아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될 것이다.


-상담사로서의 본분을 잊어선 안 된다.

내가 일하는 목적을 늘 상기해야 할 것이다. 상담센터의 사업이나 행정적인 일보다 상담의 질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행정직원인지 상담사인지 본업이 헷갈릴 정도로 상담보다 행정적인 일에 더 치중하게 된다.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상담일이다. 내가 가진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써야 할 것이다.  

대학의 실적을 위한 사업과 행정적인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내게 주어진 상담시간만큼은 내담자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전문성을 가지고 조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 안에는 상담자의 자기 돌봄 역시 포함된다. 상담자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내담자를 잘 조력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므로.

 

-동료지만 그들이 일하는 목적과 우선하는 욕구는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같은 곳에 소속되어 한 팀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의 입장과 생각이 나와 다른 것은 어쩌면 몹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들과 다른 나를 탓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원망하고 탓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 우선시하는 가치와 일을 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같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내 마음이 덜 괴로울 것이다. 나는 애사심이 없다. 그저 내가 하는 상담일에 대한 애착이 있을 뿐. 그리고 누군가의 눈에 띌 만큼 인정받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가 내 일을 할 수 있음에 대한 만족나의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


어제는 연차날이어서 한동안 직장일에 스트레스를 과중하게 받는 바람에 하지 못했던 집안일을 하고 청소년 상담사 보수교육을 들었고 아이를 케어했다. 그리고 초저녁인 8시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시간에도 매미소리가 한창이고,  엊그제가 절기상 입추라더니 한낮엔 덥지만 새벽 공기가 무덥진 않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인지 어제는 하늘도 공기도 무척 맑아진 느낌이었다. 내 마음에 불어닥치던 태풍도 어서 빨리 지나가 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면 내 마음도 무척 맑아져 있을 테지.

태풍을 잘 보내주기만 한다면 태풍 자체는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구나 싶다. 평소에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어 잘 보이지 않던 먼지나 먹구름들을 한방에 휘저어 날려 보내 주니까. 그리고 나면 분명하게 보이게 되겠지. 갈팡질팡하고 흔들리던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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