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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깨달은 일.

by 김현



사람은 모든 걸 인식하지는 못해도

모든 걸 의식하기는 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목욕탕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샤워를 마치고 탕으로 걸어갈 때였다. 나는 그날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 조심히 걸었는데, 탕에 들어간 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탕 옆에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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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시오'

조심하라는 문구 옆엔 람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양이 그려져 있다.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그런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팻말을 본 적이 없는데 왜 조심히 걸어왔지?

나는 탕으로 걸어 때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히 걸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팻말을 보고서야 의심했다. 내가 저 팻말을 본 건가? 아! 이런 문구가 있군! 이라며 인식하지 않았어도 어쨌든 내 시야에는 있었으니 나도 모르게 의식한 건가?





우리는 운전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운전할 때 전화를 받으면 우리는 전화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운전도 계속한다. 신호를 보고 가속도 하고 차선도 변경하면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의식한다. 개별 대상들을 하나하나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의식다.




우리는 모든 걸 인식하진 못해도 모든 걸 의식하긴 하는 것 같다. 리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를 모두 의식한다. 의식된 정보는 알게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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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광고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광고는 제품을 잠깐 비추고 사라진다. 제품은 내 시야에서 사라지듯 내 기억속에서도 사라진다. 마치 그걸 노리기라도 는 것처럼. 나는 솔직히 이런 광고를 보면서 '아니... 잠깐 비출 거면 광고를 왜 해 돈 아깝게...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되도록 딱 제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런 광고는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 잠시라고 해도 우리는 분명 그 제품을 의식한다. 응? 어떤 제품이지? 하면서 제품을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무의식적으로 제품에 대한 잔상이 남는다. 다음에 마트나 인터넷에서 그 제품을 보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상 때문에 익숙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한 번이라도 더 본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우린 그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광고는 우리의 이런 본능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다.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나는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게 영향을 주는 것.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내 행동의 뿌리가 되는 것. 의식 속을 떠다니는 상들을 나는 하나하나 바라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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