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타블렛』제13장

제13장: 열세 번째 구절 주해

by 이호창

제13장: 열세 번째 구절 주해


원문:

“내가 태양의 작업에 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완수되었다.”

(Quod dixi de operatione solis, completum est.)


13.1. 우주론적 해석: 창조의 순환이 완결됨


『에메랄드 타블렛』의 마지막 구절은, 이전까지의 장엄하고도 비밀스러운 선언들과는 사뭇 다른, 고요하고도 최종적인 어조로 울려 퍼집니다. “내가 현자의 돌의 작업에 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완수되었다.” 라틴어 원문에 더 가깝게는, “내가 태양의 작업(operatione solis)에 관해 말했던 것은 완수되었다.” 이 짧은 문장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하나의 명상’이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고,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창조 순환이 그 원을 닫으며 완결되었음을 알리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우주론적 관점에서, ‘태양의 작업’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제1원인인 신성한 ‘하나’가 자신의 빛(태양)을 유출시켜, 혼돈의 어둠 속에서 질서 있는 코스모스를 창조하고, 마침내 그 창조의 정점으로서 모든 힘을 통합한 ‘하나의 실체(현자의 돌)’를 탄생시키는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타블렛의 가르침을 따라가 보면, 이 창조의 순환은 다음과 같이 완결됩니다.


하나로부터의 유출: 모든 것은 ‘하나’의 명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절 3)


대극의 생성: 이 ‘하나’는 자신을 ‘태양(아버지)’과 ‘달(어머니)’이라는 두 개의 위대한 극성으로 나누어, 창조의 동력을 만들어냅니다. (구절 4)


원소의 작용: 이 두 힘은 다시 바람(공기)과 땅(흙)의 도움을 받아 서로 상호작용하며, 구체적인 현상 세계를 빚어냅니다. (구절 4)


분리와 정화: 창조의 첫 단계는 이 혼돈된 힘들을 분리하여(땅을 불에서), 각자의 본성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절 6)


순환과 통합: 분리된 힘들은 하늘과 땅을 오가는 영원한 순환을 통해, 위와 아래의 모든 힘을 자신 안에 통합합니다. (구절 7)


완성된 실체의 탄생: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마침내 모든 대극이 조화롭게 통합된 ‘하나의 실체’, 즉 현자의 돌이 탄생합니다. (구절 8-9)


열세 번째 구절은 바로 이 장엄한 우주적 연금술의 과정이 “완수되었다(completum est)”고 선언합니다. 이는 마치 창세기에서 신이 엿새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일곱 번째 날에 안식에 들어간 것과도 같습니다. 혼돈은 질서로 변모했고, 어둠은 빛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분리되었던 모든 것은 더 높은 차원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주는 이제 안정되고 완성된 상태에 도달했으며,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목적과 의미를 찾게 됩니다.


이 ‘완결’의 선언은 『키발리온』의 ‘리듬의 원리(The Principle of Rhythm)’와 깊은 관련을 맺습니다. 모든 것은 추처럼 앞뒤로 흔들리며, 팽창이 있으면 수축이 있고,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가 ‘여럿’으로 분화되었던 유출의 과정이 팽창의 리듬이었다면, 그 ‘여럿’이 다시 ‘하나의 실체’로 통합되는 위대한 작업의 과정은 수축의 리듬입니다. 이 구절은 바로 이 거대한 우주적 리듬의 한 주기가 완벽하게 끝났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정지가 아닙니다. 하나의 순환이 완결되었다는 것은, 곧 새로운 차원의 순환이 시작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열세 번째 구절은 우주론적 관점에서, 창조의 드라마가 무의미한 혼돈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목적과 방향성이 뚜렷한 하나의 완결된 ‘작업(operation)’이었음을 선언합니다. 그것은 ‘하나’에서 시작하여, ‘하나’를 통해, ‘하나’를 향한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처럼, 『에메랄드 타블렛』은 단지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그 구조 자체가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며,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지에 대한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완결된 순환의 이미지는,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소우주 또한 이와 같은 목적 있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깊은 신뢰와 희망을 우리에게 부여합니다.


13.2. 연금술적 해석: 작업의 완성와 ‘헤르메스의 봉인’


“완수되었다(Completum est).” 연금술사가 그의 용광로 앞에서 듣기를 갈망했던 가장 영광스러운 이 한마디는, 위대한 작업의 모든 노고가 마침내 그 결실을 맺었음을 선언합니다. 이 마지막 구절은, 실험실에서 벌어졌던 모든 구체적인 과정—흑화, 백화, 적화의 색채 변화, 용해와 응고의 반복, 증류와 고정의 기술—이 이제 끝났으며, 마침내 ‘현자의 돌’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작업 완료의 공식적인 선포입니다. 이 구절은 연금술사에게, 그의 손안에 있는 것이 더 이상 변화 과정에 있는 불완전한 물질이 아니라,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영원불변의 완전성에 도달한 궁극의 실체임을 확증해 줍니다.


태양의 작업: 루베도의 완성


라틴어 원문은 이 작업을 더 구체적으로 “태양의 작업(operatione solis)”이라고 명시합니다. 연금술에서 ‘태양’은 두 가지 핵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황금(Gold)’ 그 자체이며, 둘째는 ‘붉은색’, 즉 ‘루베도(Rubedo)’ 단계입니다. 따라서 ‘태양의 작업이 완수되었다’는 것은, 작업이 마침내 최종 단계인 루베도에 도달하여, 모든 불완전한 것을 완벽한 황금으로 변성시킬 수 있는 붉고 빛나는 ‘현자의 돌’의 창조에 성공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헤르메스 비의』가 묘사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백색 작업(알베도)을 마친 연금술사는, 그 흰 돌에 다시 한번 가장 강렬한 “불꽃의 열”을 가하여 “적색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순수한 영혼을 상징하는 “백합으로부터” 마침내 완전한 영을 상징하는 “보라색 장미”가 피어나고, 그 색은 점차 “피의 어두운 붉은색”으로 깊어집니다. 이 ‘태양의 작업’이 끝났을 때, 물질은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가장 붉은 재”의 형태로 남게 되며, 이것이 바로 모든 힘을 자신 안에 통합한, 궁극의 완성체입니다.


헤르메스의 봉인: 침묵의 규율


그렇다면 왜 헤르메스는 이 위대한 성취의 순간에,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완수되었다”며 갑작스럽게 가르침을 끝맺는 것일까요? 이 마지막 문장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 자체를 통해, 연금술의 가장 중요한 규율 중 하나인 ‘침묵의 규율’, 즉 ‘헤르메스의 봉인(The Seal of Hermes)’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 현자의 돌의 본질은 더 이상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었습니다. 이제 마침내 달(현자의 돌)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더 이상 손가락에 대한 설명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달을 직접 보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진정한 앎, 즉 그노시스(Gnosis)는 말을 넘어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얻어지며, 이 체험의 경지에 이른 자에게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고, 이르지 못한 자에게는 어떤 말도 무의미합니다.


둘째, 이 지식은 신성한 비밀(Arcanum)로서,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함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헤르메스 비의』의 저자가 끊임없이 “거짓 철학자들”과 “속인들”을 경계했듯이, 이 힘을 탐욕이나 교만으로 사용하려는 자에게 이 지식이 전해지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수되었다”는 선언은, 이 문을 통과한 입문자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음을, 그러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외부인에게는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단호한 경계선을 긋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의 용기를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하는 ‘헤르메스의 봉인’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열세 번째 구절은 연금술사에게 작업의 완성이란 무엇이며, 그 완성을 이룬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진정한 아뎁트(adept)는 자신의 성취를 떠벌리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얻은 지혜와 힘의 신성한 가치를 알기에, 깊은 침묵 속에서 그것을 지키고, 오직 자비와 사랑의 동기로, 그리고 합당한 이에게만 그 빛을 나눌 뿐입니다. 이 마지막 구절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지혜는 가장 깊은 침묵 속에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며, 영원한 신비의 여운과 함께 『에메랄드 타블렛』의 문을 조용히 닫습니다.


13.3. 심리학적 해석: 말 너머의 지혜, 침묵 속의 깨달음


『에메랄드 타블렛』의 마지막 “완수되었다(Completum est).”는 이 한마디는, 심리적 연금술의 여정을 걸어온 구도자에게 가장 깊은 안식과 최종적인 깨달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고요하고도 장엄한 종결 선언입니다. 이 구절은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정보와 개념, 즉 모든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앎이 시작된다는, 가장 심오한 심리학적 진실을 그 형식 자체를 통해 보여줍니다. 위대한 작업의 완성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을 내려놓고 ‘침묵의 지혜’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와 ‘초월적 기능’


우리의 모든 내면 탐구는 언어와 사유를 통해 시작됩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스승의 가르침을 들으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분석하며, 그 경험에 이름을 붙이려 노력합니다. 이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그것은 혼돈스러운 무의식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의식의 빛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솔베(Solve)’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만 머무르는 한, 우리는 결코 강 저편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강을 건너기 위한 셔틀과 같지만, 강 건너편의 땅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칼 융(Carl G. Jung)은 이성적 사유와 무의식적 직관이라는 두 개의 대극이 만날 때, 이 둘을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것, 즉 ‘상징(symbol)’이 탄생하며, 이것이 정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초월적 기능(transcendent function)’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전체 가르침은 바로 이 초월적 기능의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구도자는 ‘위’와 ‘아래’, ‘태양’과 ‘달’이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분열된 내면을 이해하고, 마침내 그 둘을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이 끝나고 마침내 현자의 돌, 즉 통합된 자기(Self)가 탄생하는 순간, 이제 모든 상징과 언어는 그 역할을 다하고 침묵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달을 보기 위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필요했지만, 일단 달을 직접 보게 된 자에게 더 이상 손가락은 무의미할 뿐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완수되었다”는 선언은, 바로 이 ‘손가락에서 달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제부터의 앎은 더 이상 언어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앎이 아니라, 존재와 앎이 하나가 된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체험 그 자체가 됩니다.


침묵의 연금술: 현존(Presence)의 상태


이 ‘말 너머의 지혜’란 구체적으로 어떤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완전한 현존(presence)’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통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계획 사이를 오가는 ‘내적 대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대신, 그것을 끊임없이 명명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며, 언어라는 필터를 통해 경험합니다. 이 끊임없는 내적 소음이 바로 우리를 현재의 순간으로부터, 그리고 실재 그 자체로부터 분리시키는 장벽입니다.

위대한 작업을 완수한 자는, 바로 이 내적 대화가 멈춘 고요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세상과 ‘함께 존재’합니다. 그는 나무를 보며 ‘나무’라는 단어나 그에 얽힌 식물학적 지식을 떠올리는 대신, 그냥 나무의 푸르름,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소리, 거친 나무껍질의 감촉과 하나가 됩니다. 이처럼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사라지고, 아는 자와 알려지는 대상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상태, 이것이 바로 ‘침묵 속의 깨달음’입니다.

이것은 결코 몽롱하거나 무의식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고도로 깨어있는, 가장 생생한 의식의 상태입니다. 모든 개념의 필터가 사라졌기에, 그는 세상을 이전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경험합니다. 그의 모든 감각은 활짝 열려 있으며, 그의 존재 전체가 세상의 모든 떨림에 공명하는 섬세한 악기가 됩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자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습니다. 그 자신이 곧 살아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침묵은 그 어떤 웅변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하며, 그의 단순한 현존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평화와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더 이상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라, 진리를 ‘살아내는’ 현자입니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에게, 모든 위대한 영적 여정의 끝은 화려한 언변이나 복잡한 이론 체계가 아니라, 깊고 평화로운 침묵임을 가르쳐줍니다. 진정한 앎은 도서관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을 내려놓고 고요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때 찾아옵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것으로 완수되었다”는 헤르메스의 마지막 속삭임은, 이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언어를 멈추고, 말없는 실재 그 자체가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그 거룩한 침묵의 소리를 들을 차례임을 알리는, 가장 자비로운 초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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