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화는 여러 면에서 전체 코르푸스(Corpus)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헤르메스 체계의 이론을 요약하는 동시에 그 실제 수행에 대한 흥미로운 엿보기를 제공합니다. 대화의 초점은 ‘재탄생(Rebirth)’의 경험에 맞춰져 있는데, 이는 자아 내부의 열두 ‘고문자들(Tormentors)’을 열 개의 신적인 ‘권능들(Powers)’로 대체하는 과정을 포함하며, 자아와 신에 대한 앎의 각성으로 이어집니다. ‘비밀 찬가(The Secret Hymnody)’(17-20절)는 매일 두 번, 해가 뜰 때와 질 때 수행되는 예배의 연도(連禱)로 제시됩니다. 일출 예배는 동쪽을 향해 수행되는 반면, 일몰 예배는 남쪽을 향해 행해진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파라오 시대 이후 이집트 전통은 서쪽을 죽음의 방향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어 단어 로고스(logos)의 다중적 의미로 인한 일반적인 어려움은 번역자 미드(Mead)의 어색한 문체로 인해 더욱 복잡해집니다. 또한, 미드의 몇 안 되는 회피 중 하나가 12절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열두 고문자들을 ‘열두 가지 삶의-유형(twelve types-of-life)’과 연관시킵니다. 이것은 더 단순하고 정확하게 ‘황도 12궁(the twelve signs of the Zodiac)’으로 번역되었어야 합니다. 신지학(Theosophy)의 점성술에 대한 반감이 여기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 타트: 아버지, 일반 담론들에서 당신께서는 신성에 관해 대화하시며, 매우 불분명한 수수께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재탄생(Rebirth) 이전에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당신께서는 그 의미를 감추셨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당신의 탄원자가 되어 산을 오를 때, 당신께서 저와 대화하신 후, 그리고 제가 재탄생에 관한 담론, 곧 로고스(Logos)를 배우기를 갈망했을 때(다른 모든 것을 넘어 이것이야말로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그것을 제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세상에 대해 이방인이 되었을 때”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준비를 마치고 제 안의 생각을 세상-환영에 대해 이방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당신께서 재탄생의 전통을 제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제 안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시되, 그것을 말씀으로든 비밀스러운 방식으로든 설명해주십시오. 오, 세 번 위대하신 분이시여, 저는 인간이 어떤 물질과 어떤 자궁으로부터, 혹은 어떤 씨앗으로부터 태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2. 헤르메스: 침묵 속에서 이해하는 지혜가 바로 인간이 태어나는 물질이자 자궁이며, 참된 선(True Good)이 그 씨앗이다.
타트: 씨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아버지? 저는 완전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그것은 신의 의지(Will of God)이다.
타트: 그리고 태어나는 자는 어떤 종류입니까, 아버지? 제 안에는 감각을 초월하는 그 본질의 어떤 부분도 없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자는 신으로부터 온 또 다른 존재, 신의 아들(God's Son)이 됩니까?
헤르메스: 아들아, 이 종족(Race)은 결코 가르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분께서 원하실 때, 그 기억은 신에 의해 복원된다.
3. 타트: 아버지, 당신께서는 불가능한 것, 강요된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일들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원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종족에게 이방인인 아들입니까? 아버지, 그것을 제게 숨기지 마십시오. 저는 진정한 아들입니다. 제게 재탄생의 방식을 설명해주십시오.
헤르메스: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느냐? 나는 오직 이것만을 네게 말할 수 있다. 내 안에서 신의 자비로부터 태어난 단일한 환영(Simple Vision)을 볼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통과하여 결코 죽을 수 없는 육체(Body)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마음(Mind) 안에서 태어났다. 이것을 행하는 길은 가르쳐지지 않으며, 네가 보는 수단인 저 합성된 원소에 의해서는 보일 수 없다. 정녕, 나의 이전의 합성된 형상은 나를 위해 해체되었다. 나는 더 이상 만져지지 않으나, 나는 만진다. 나는 차원 또한 가졌으나, 이제 그것들에게 이방인이다. 아들아, 너는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지는, 육체와 시력의 온 힘을 다해서도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4. 타트: 아버지, 당신께서는 저를 격렬한 광기와 마음의 분노 속으로 던져 넣으셨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나는 네가 잠 속에서 꿈꾸면서도 잠들지 않은 자들처럼, 차라리 네 자신을 완전히 통과했기를 바란다. 타트: 이것 또한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재탄생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헤르메스: 신의 아들, 유일한 인간(the One Man), 신의 의지에 의해서이다.
5. 타트: 아버지, 이제 당신께서는 저를 순수한 경악 속으로 이끄셨습니다. 제가 이전에 가졌던 감각들로부터 정지된 채... 이제 저는 당신의 위대함이 당신의 독특한 형상과 동일함을 봅니다.
헤르메스: 바로 이 점에서도 너는 틀렸다. 필멸의 형상은 매일 변한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쇠퇴하니,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다.
6. 타트: 그렇다면, 세 번 위대하신 분이시여, 무엇이 진실입니까?
헤르메스: 아들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 정의될 수 없는 것, 색깔도 형체도 없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옷을 입지 않은 것, 빛을 주는 것, 오직 그 자신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것, 변화를 겪지 않는 것, 어떤 육체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타트: 진실로 저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바로 당신에 의해 현명해지리라 생각했을 때, 저는 제 이 마음의 감각들이 막혀 있음을 발견합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그러하다. 불처럼 위로 솟아오르면서도 흙처럼 아래로 내려가고, 물처럼 축축하면서도 공기처럼 부는 그것을, 네가 어찌 감각으로 인지하겠느냐? 단단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으며, 어떤 것도 묶거나 풀 수 없고, 오직 힘과 에너지 안에서만 인간이 어떤 관념을 가질 수 있는 그것을, 그리고 그때조차도 신 안에서의 탄생의 길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그것을 말이다.
7. 타트: 그렇다면 아버지, 저는 이것이 불가능합니까?
헤르메스: 아니, 신께서 금하신다, 나의 아들아! 네 자신 속으로 물러나라, 그러면 그것이 올 것이다. 의욕하라, 그러면 이루어진다. 육체의 감각들을 작동하지 않게 던져버려라, 그러면 너의 신성(Divinity)이 태어날 것이다. 너 자신으로부터 짐승 같은 고문자들, 즉 물질의 것들을 정화하라.
타트: 그렇다면 제 안에 고문자들이 있습니까, 아버지?
헤르메스: 그렇다, 적지 않다, 나의 아들아. 아니, 두렵고 다채로운 자들이다.
타트: 저는 그들을 모릅니다, 아버지.
헤르메스: 아들아, 첫 번째 고문자는 이 앎-없음(Not-knowing)이다. 둘째는 슬픔(Grief)이요, 셋째는 무절제(Intemperance)이며, 넷째는 욕정(Concupiscence)이다. 다섯째는 불의(Unrighteousness)요, 여섯째는 탐욕(Avarice)이며, 일곱째는 오류(Error)이다. 여덟째는 질투(Envy)요, 아홉째는 기만(Guile)이며, 열 번째는 분노(Anger)이다. 열한 번째는 경솔(Rashness)이요, 열두 번째는 악의(Malice)이다. 이들은 수가 열둘이지만, 그들 아래에는 더 많은 자들이 있다, 나의 아들아. 그리고 육체의 감옥을 통해 기어 다니며, 그 안에 놓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감각 속에서 고통받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자비를 입은 자에게서 떠나가니 (비록 한꺼번에 떠나지는 않지만), 이것이 바로 재탄생의 방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 곧 로고스(Logos)이다.
8. 그리고 이제, 나의 아들아, 고요히 엄숙한 침묵을 지켜라! 그리하면 우리에게 흘러드는 신의 자비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기뻐하라, 오 아들아, 신의 권능들에 의해 네가 이성, 곧 로고스(Logos)의 명료한 발화를 위해 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그노시스(Gnosis of God)가 우리에게 왔고, 이것이 올 때, 나의 아들아, 앎-없음은 쫓겨난다. 기쁨의 그노시스(Gnosis of Joy)가 우리에게 왔고, 그것이 올 때, 아들아, 슬픔은 그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자들에게서 달아날 것이다. 기쁨을 따르는 권능, 너의 자제(Self-control)를 나는 부른다. 오, 가장 감미로운 권능이여! 아들아, 가장 기쁘게 그것을 환영하자! 그것이 오면서 어찌 무절제를 쫓아내는지 보라!
9. 이제 넷째로, 나는 욕망에 대항하는 권능, 절제(Continence)를 부른다. ...이 단계가, 나의 아들아, 정의(Righteousness)의 굳건한 자리이다. 심판 없이도 그녀가 어떻게 불의를 쫓아냈는지 보라. 아들아, 우리는 불의가 떠남으로써 의롭게 된다. 여섯 번째 권능을 우리에게 부르니, 탐욕에 대항하는, 만물과-나눔(Sharing-with-all)이다. 그리고 이제 탐욕이 사라졌으니, 나는 진리(Truth)를 부른다. 그리고 오류는 달아나고, 진리가 우리와 함께 있다. 보라, 나의 아들아, 진리가 오자 선의 척도가 어떻게 가득 차는지를. 질투는 우리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에게는 선 또한 결합되니, 생명과 빛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어둠의 어떤 고문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정복당한 채 모두 윙윙거리는 날갯짓으로 달아났다.
10. 너는 이제, 나의 아들아, 재탄생의 방식을 안다. 그리고 열(Ten)이 와서, 나의 아들아, 열둘(Twelve)을 몰아낼 때, 이해 속의 탄생, 즉 지성적 탄생(noera genesis)은 완성되고, 이 탄생에 의해 우리는 신들로 만들어진다. 그의 자비로 신 안에서의 이 탄생을 얻는 자는, 육체의 감각들을 버리고, 자신이 빛과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고, 그리하여 지복으로 가득 차게 된다.
11. 타트: 신에 의해 굳건해졌나이다, 아버지. 더 이상 제 눈이 제공하는 시각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마음이 권능들을 통해 제게 주는 에너지로 봅니다. 저는 하늘에 있고, 땅에, 물에, 공중에 있습니다. 저는 동물들 안에, 식물들 안에 있습니다. 저는 자궁 안에, 자궁 이전에, 자궁 이후에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더 말씀해주십시오. 어둠의 고문자들은, 그 수가 열둘인데, 어떻게 열 개의 권능들에 의해 쫓겨납니까? 그 방식은 무엇입니까, 세 번 위대하신 분이시여?
12. 헤르메스: 우리가 방금 통과한 이 거처, 즉 인간의 육체는, 나의 아들아, 열두 가지 삶의-유형의 원, 즉 황도 12궁(the twelve signs of the Zodiac)으로부터 구성된다. 이것은 수가 열둘이지만, 하나의 본성을 지닌, 모든 형태를 갖춘 이데아인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들아, 인간의 망상 때문에 그것들 안에는 불화가 있지만,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는 하나이다. 우리는 결코 경솔을 분노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별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올바른 이성, 곧 로고스(logos)에 따르면, 그것들은 열 개나 되는 권능들, 즉 십(Ten)에 의해 쫓겨나므로, 자연스럽게 한 번에 모두 물러난다. 아들아, 십은 영혼들을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과 빛은 그곳에서 통일되니, 하나(the One)가 영(Spirit)으로부터 존재를 얻는 곳에서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따르면, 하나는 십을 포함하고, 십은 하나를 포함한다.
13. 타트: 아버지, 저는 전체(the All)를 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마음(Mind) 안에서 봅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이것이 재탄생이다. 더 이상 사물을 육체의 관점에서, 즉 공간적으로 세 가지 차원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비록 이 재탄생에 관한 담론(Logos)에 대해 내가 더 이상 주석하지 않았지만, 이는 우리가 다수에게 전체를 비방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함이며, 실로 신 자신도 우리가 그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14. 타트: 아버지,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이 권능들로 이루어진 육체는, 어느 때라도 해체됩니까?
헤르메스: 조용히 하라, 아들아!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죄를 짓고 네 마음의 눈이 꺼질 것이다.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는 자연적인 육체는 이 본질적인 탄생과 멀리 떨어져 있다. 전자는 해체되어야만 하지만, 후자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전자는 죽어야만 하지만, 후자는 죽음이 만질 수 없다. 너는 네가 신으로, 하나의 아들로 태어났음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나 자신처럼 말이다?
15. 타트: 아버지, 당신께서 여덟 번째 권능들의 층, 즉 오그도아드(Ogdoad)에 계셨을 때 들으셨다고 한, 찬양이 담긴 찬가를 듣고 싶습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목자께서 예언하셨듯이, 내가 여덟 번째에 이르렀을 때 그러했다. 너는 정화되었으므로, 너의 ‘장막을 거두기’를 잘 서두르는구나. 목자, 만물의 주재자이신 마음께서는 기록된 것 이상을 내게 전수하지 않으셨으니, 그는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16.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만드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내 안의 권능들은, 모든 것 안에 있는 그대로, 노래를 터뜨린다.
타트: 아버지, 저는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이 일들을 알고 싶습니다.
헤르메스: 고요히 하라, 나의 아들아. 이제 영혼을 조율하는 찬양을 들어라, 재탄생의 찬가를. 네가 모든 것의 끝에 이르지 않았다면 내가 이토록 선뜻 말하리라 생각지 않았을 찬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르쳐지지 않고, 침묵 속에 감추어진다. 그러므로 나의 아들아, 하늘에 드러난 곳에 서서, 지는 해가 기울 무렵 남풍을 마주하고 너의 예배를 드려라. 그가 뜰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동풍을 마주하고 하라. 이제, 아들아, 고요히 하라!
비밀 찬가
17. 세상의 모든 본성이 나의 찬가의 발성을 받아들이게 하라! 너 땅이여, 열려라! 심연의 모든 빗장이 나를 위해 열리게 하라. 너희 나무들이여, 움직이지 말라! 나는 창조의 주님, 전체이시자 하나이신 분을 찬미하려 하노라. 너희 하늘들이여, 열리고 너희 바람들이여, 멈추어라. 그리고 신의 불멸의 구체가 나의 말씀, 곧 로고스(logos)를 받게 하라! 나는 만물을 세우신 분을 찬양하리라. 땅을 고정시키고, 하늘을 매달고, 대양에게 명하여 거주하는 곳과 거주하지 않는 곳 모두에, 모든 사람의 부양과 사용을 위해 감미로운 물을 공급하게 하신 분을. 신들과 인간들을 위해 모든 행위를 위해 불을 빛나게 하신 분을. 우리 모두 함께 그를 찬양하자, 하늘들 위에 숭고하시며, 모든 본성의 주님이신 분을! 그는 마음의 눈이시니, 나의 이 권능들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18. 내 안에 있는 권능들이여, 하나이시며 전체이신 분을 찬미하라. 나의 의지와 함께 노래하라, 내 안의 모든 권능들이여! 오, 축복받은 그노시스여, 너로 말미암아 밝아져, 너를 통해 마음만이 볼 수 있는 빛을 찬미하며, 나는 마음의 기쁨 속에서 기뻐하노라. 나와 함께 찬양하라, 모든 권능들이여! 찬양하라, 나의 자제여. 나를 통해 노래하라, 나의 정의여, 의로운 분의 찬양을. 노래하라, 나의 만물과-나눔이여, 전체의 찬양을. 나를 통해 노래하라, 진리여, 진리의 찬양을! 노래하라, 오 선이여, 선을! 오 생명과 빛이여, 우리에게서 당신들에게로 우리의 찬양이 흐르나이다! 아버지,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당신, 내 모든 권능들의 에너지이신 분께. 감사하나이다, 오 신이시여, 당신, 내 모든 에너지들의 권능이신 분께!
19. 당신의 이성, 곧 로고스(Logos)가 나를 통해 당신의 찬양을 노래합니다. 나를 통해 전체를 당신의 이성 안으로 되돌려 받으소서. 나의 이성적인 제물을! 내 안의 권능들이 이같이 외칩니다. 그들은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 전체이시여. 그들은 당신의 뜻을 행합니다.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뜻이, 당신께로 전체가. 모든 이로부터 그들의 이성적인 제물을 받으소서. 우리 안에 있는 전체를, 오 생명이여, 보존하소서. 오 빛이여, 그것을 비추소서. 오 신이시여, 그것에 영을 불어넣으소서. 당신의 말씀을 돌보는 목자는 당신의 마음이시니, 오 당신, 창조주시여, 만물에 영을 부여하시는 분이시여.
20. 당신은 신이시기에, 당신의 사람이 이같이 당신께 외칩니다. 불을 통해, 공기를 통해, 흙을 통해, 물을 통해, 그리고 영을 통해, 당신의 피조물들을 통해. 저는 당신의 아이온으로부터 찬양을 찾았고, 제 탐구의 대상인 당신의 의지 안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타트: 당신의 선한 뜻에 의해, 저는 이 찬양이 불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것을 저의 코스모스 안에도 세웠습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너의 마음만이 볼 수 있는 코스모스 안에서라고 말하라.
타트: 예, 아버지, 마음만이 볼 수 있는 코스모스 안에서입니다. 당신의 찬가와 당신의 찬양에 의해 저는 능력을 얻었고, 제 마음은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저 자신 또한 저의 본래 마음으로부터 신께 찬양을 드리고 싶습니다.
21. 헤르메스: 그러나 부주의하게는 안 된다, 나의 아들아.
타트: 예. 제가 마음속에서 보는 것을, 저는 말합니다. 저의 탄생의 부모이신 당신께, 신께처럼, 저 타트는 이성적인 제물을 보냅니다. 오, 신이시며 아버지시여, 당신은 주님이시오, 당신은 마음이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성적인 제물을 제게서 받으소서. 당신의 의지로 만물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헤르메스: 아들아, 만물의 아버지이신 신께 받아들여질 만한 제물을 보내라. 그러나 나의 아들아, “말씀(Logos)을 통해”라고 덧붙여라.
타트: 아버지, 제게 그러한 찬가를 노래하는 법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22. 헤르메스: 아들아, 나는 네가 죽을 수 없는 산물들인 진리의 선한 열매를 맺었음에 행복하다. 그리고 이제 네가 내게서 이 교훈을 배웠으니, 너의 덕에 대해 침묵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어떤 영혼에게도, 나의 아들아, 너에게 전수된 재탄생의 방식을 알리지 말라. 우리가 비방하는 자들로 생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둘 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으니, 말하는 나도 듣는 너도 그러하다. 마음 안에서 너는 너 자신과 우리 공동의 아버지를 아는 자가 되었다.
「산상에서의 비밀 설교」 주해
1. 재탄생의 심리학: 열두 고문관(악덕)의 추방
「포이만드레스」가 그노시스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약속했다면, 열세 번째 논고인 「산상에서의 비밀 설교」는 그 약속이 어떻게 한 인간의 내면에서 구체적인 심리적, 영적 사건으로 실현되는지에 대한 가장 상세하고도 실천적인 지도를 제공합니다. 이 논고의 중심에는 ‘재탄생(Palingenesia)’이라는, 헤르메스주의 구원론의 최종적인 목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탄생의 과정은, 우리 영혼을 감옥에 가두고 있던 ‘열두 고문관(Tormentors)’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열 개의 신성한 권능(Powers)’으로 채우는, 내면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장엄한 혁명으로 묘사됩니다.
재탄생의 전제 조건: 세상에 대한 이방인
이 비밀 설교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헤르메스는 그의 제자 타트가 이 가르침을 간청했을 때, “네가 세상에 대해 이방인이 되었을 때” 그것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에 대한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세상을 등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진리라고 믿는 모든 가치관, 즉 육체의 감각이 유일한 현실이며, 부와 명예, 쾌락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세상-환영(world-illusion)’으로부터 자신의 의식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내면의 혁명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가치 체계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신성한 재탄생의 씨앗이 심어질 수 있는 깨끗한 영혼의 토양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 재탄생은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헤르메스는 “이 종족은 결코 가르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신)가 원하실 때, 그 기억은 신에 의해 복원된다”고 말하며, 이 체험이 본질적으로 신의 자비와 은총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의욕하라, 그러면 이루어진다. 육체의 감각들을 작동하지 않게 던져버려라, 그러면 너의 신성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며, 구도자의 간절한 의지와 능동적인 실천이 신성한 개입을 불러일으키는 필수적인 조건임을 강조합니다.
내면의 폭군들: 열두 고문관
재탄생을 위해, 구도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내면을 점령하고 있는 적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헤르메스는 우리 안에 “두렵고 다채로운… 적지 않은” 고문관들이 살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열두 폭군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합니다.
앎-없음 (Not-knowing, Agnoia): 모든 악의 뿌리이자 첫 번째 고문관.
슬픔 (Grief, Lupe): 앎-없음에서 파생되는 필연적인 고통.
무절제 (Intemperance, Akrasia):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
욕정 (Concupiscence, Epithymia): 불타오르는 감각적 갈망.
불의 (Unrighteousness, Adikia): 신성한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
탐욕 (Avarice, Pleonexia): 끝없는 소유욕.
오류 (Error, Apatē):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기만.
질투 (Envy, Phthonos): 타인의 선함을 증오하는 마음.
기만 (Guile, Dolos): 거짓과 속임수.
분노 (Anger, Orgē): 파괴적인 격정.
경솔 (Rashness, Propetes): 사려 깊지 못한 충동.
악의 (Malice, Kakia): 순수한 악의적 의도.
이 열두 고문관의 목록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심리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대 점성학에서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여겨졌던 ‘황도 12궁(the twelve signs of the Zodiac)’과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열두 가지 성격적 결함을 체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번역자 미드는 이를 ‘열두 가지 삶의-유형’으로 완곡하게 번역했지만 말입니다.) 즉,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운명적 기질(별자리)이, 정화되지 않을 경우, 우리 영혼을 고문하는 열두 명의 폭군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감옥을 통해 기어 다니며, 그 안에 놓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감각 속에서 고통받도록 강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내면의 고통과 갈등은 바로 이 열두 폭군의 지배 아래에서 벌어지는 비극입니다.
추방의 기적: 그노시스의 도래
어떻게 이 강력한 폭군들을 우리 영혼의 왕국에서 추방할 수 있습니까? 헤르메스는 그들이 “신의 자비를 입은 자에게서 떠나간다”고 말하며, 이 추방이 인간의 의지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신성한 힘의 개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기적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신성한 힘의 이름이 바로 ‘그노시스(Gnosis)’입니다.
이 추방은 한 명의 적과 일일이 싸워 이기는 점진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국의 정당한 왕이 귀환할 때, 찬탈자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과 같은 극적인 혁명입니다. 첫 번째 신성한 권능인 “신의 그노시스”가 우리에게 오는 순간, 모든 고문관들의 아버지였던 “앎-없음은 즉시 쫓겨납니다.” 근본적인 원인인 무지가 사라지자, 그로부터 파생되었던 다른 모든 악덕들은 더 이상 존재의 기반을 잃고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질투는 진리 앞에서, 슬픔은 기쁨 앞에서, 무절제는 자제 앞에서, 욕망은 절제 앞에서 힘을 잃고 달아납니다.
이러한 재탄생의 심리학은 우리에게 구원의 과정을 내면의 심리 드라마로 이해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본래 신성한 왕국이지만, 현재는 우리의 무지(앎-없음)로 인해 열두 명의 폭군(악덕/운명)에게 점령당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이 폭군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자비를 구해 우리 안에 본래부터 존재했던 정당한 통치자, 즉 ‘그노시스’의 빛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이 빛이 우리 내면의 성소에 다시 켜지는 순간, 모든 어둠의 고문관들은 물러가고,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영혼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자아의 구성: 열 개의 신성한 권능
영혼의 왕국에서 열두 명의 폭군들이 추방된 후, 그 빈 왕좌는 결코 공허한 상태로 남지 않습니다. 파괴는 언제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전주곡입니다. 헤르메스는 어둠의 세력이 물러간 그 자리에, 이제 신으로부터 오는 열 개의 신성한 권능(Powers)들이 차례로 들어와 새로운 자아를 구성하는 장엄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마치 낡고 무질서한 건물을 철거한 뒤, 그 깨끗해진 대지 위에 열 개의 견고한 기둥을 세워 새로운 성전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 열 개의 권능은 단순한 도덕적 미덕의 목록이 아니라, 재탄생한 영혼의 새로운 의식 구조를 이루는 신적인 힘 그 자체이며, 그들이 들어오는 순서는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심리적 순서를 상징합니다.
추방과 귀환의 변증법
이 새로운 자아의 구성은 단순한 덧셈이 아니라, 추방과 귀환이라는 역동적인 변증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각각의 신성한 권능이 도착할 때마다, 그와 반대되는 성질의 고문관이 필연적으로 자리를 잃고 달아납니다.
신의 그노시스(Gnosis of God) vs. 앎-없음(Not-knowing):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근원인 “신의 그노시스”입니다. 이 빛이 비추는 순간, 모든 어둠의 아버지였던 “앎-없음은 즉시 쫓겨납니다.” 이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기쁨(Joy) vs. 슬픔(Sorrow):
앎이 오자, 슬픔의 자리에 “기쁨의 그노시스”가 찾아옵니다. 슬픔은 본질적으로 분리와 상실에 대한 감정이지만, 신과의 연결을 회복하고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아는 영혼에게 더 이상 슬픔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자제(Self-control) vs. 무절제(Intemperance):
기쁨을 뒤따라오는 권능은 “가장 감미로운 권능”인 ‘자제’입니다. 이 힘은 더 이상 외부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신성한 의지에 따라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절제(Continence) vs. 욕망(Desire):
자제의 더 강력한 형태인 ‘절제’가 도착하자, 불타는 욕망이 그 힘을 잃습니다. 여기서 헤르메스는 “이 단계가 바로 정의의 굳건한 자리”라고 말하며, 진정한 도덕성이란 욕망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힘(절제)이 자연스럽게 낮은 차원의 힘(욕망)을 대체함으로써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정의(Righteousness) vs. 불의(Unrighteousness):
절제의 자리가 마련되자, 마침내 ‘정의’가 들어섭니다. 구도자는 “불의가 떠남으로써 의롭게” 됩니다.
만물과-나눔(Sharing-with-all) vs. 탐욕(Avarice):
정의로운 영혼은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만물과-나눔’이라는 새로운 권능을 통해, 탐욕의 감옥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와 자신의 것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됩니다.
진리(Truth) vs. 오류(Error):
나눔의 마음이 탐욕을 몰아내자, 마침내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류와 기만의 안개가 걷히고, 영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명료하게 보게 됩니다.
완성의 삼위일체: 선, 생명, 그리고 빛
진리가 그 자리를 잡는 순간, 위대한 작업은 최종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헤르메스는 “진리가 오자 선의 척도가 가득 찼다”고 선언하며, 마지막 세 개의 권능이 동시에 도착함을 알립니다. 진리와 함께 “선(Good) 또한 결합되며, 생명(Life)과 빛(Light)과 함께” 옵니다. 이 마지막 삼위일체—선, 생명, 빛—는 신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며, 재탄생한 영혼이 도달하는 최종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도착함으로써, “이제 더 이상 어둠의 어떤 고문도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정복당한 채 모두 윙윙거리는 날갯짓으로 달아납니다.”
이 열 개의 권능이 열두 고문관을 몰아내는 과정은, 단순히 열 개의 미덕이 열두 개의 악덕을 이기는 도덕적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의식 구조 자체가 변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점성학적으로 황도 12궁이 상징하는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세계(열두 고문관)의 지배가 끝나고, 피타고라스 학파와 카발라 전통에서 완성과 신성을 상징하는 숫자 10(데카드, Decad)으로 대표되는, 자유롭고 신적인 세계(열 개의 권능)가 열리는 것입니다. 저자는 “열(Ten)이 와서, 나의 아들아, 열둘(Twelve)을 몰아낼 때, 이해 속의 탄생은 완성되고, 이 탄생에 의해 우리는 신들로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이 과정이 곧 신화(神化, theosis)의 과정임을 분명히 합니다.
새로운 인식: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계
이처럼 열 개의 신성한 권능으로 재구성된 새로운 자아는 세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타트가 “신에 의해 굳건해졌나이다, 아버지. 더 이상 제 눈이 제공하는 시각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마음이 권능들을 통해 제게 주는 에너지로 봅니다”라고 고백하듯이, 그는 더 이상 육체의 감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의 의식은 모든 경계를 넘어 확장됩니다. “저는 하늘에 있고, 땅에, 물에, 공중에 있습니다. 저는 동물들 안에, 식물들 안에 있습니다. 저는 자궁 안에, 자궁 이전에, 자궁 이후에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것은 제11장에서 ‘마음’이 제시했던,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의식과의 합일을 직접 체험한 자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새로운 자아의 구성’은 낡은 인격을 수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낡은 집을 완전히 허물고 그 자리에 신성한 재료들로 새로운 성전을 짓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무지에서 그노시스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탐욕에서 나눔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마침내 분리된 자아에서 모든 것과 하나 된 신성한 자아로 거듭나는, 영광스러운 재탄생의 드라마입니다. 이 열 개의 권능이 우리 안에 완전히 자리 잡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영혼의 진정한 주인이자, 신의 살아있는 형상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3. 비밀 찬가: 신과의 합일을 위한 기도문 분석
재탄생의 기적을 통해, 열두 고문관의 어둠이 물러가고 열 개의 신성한 권능이 영혼의 성전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인간의 언어는 그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신성과의 합일의 체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 설명이나 서사적 묘사는 더 이상 이 경지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헤르메스는 그의 아들 타트에게, 이 체험을 온전히 표현하고 완성시키는 유일한 길은 바로 ‘찬가(Hymn)’를 부르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산상에서의 비밀 설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비밀 찬가’는, 단순한 감사의 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재탄생한 영혼이 자신의 근원인 신에게로 되돌아가, 마침내 그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언어의 힘을 빌려 완성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신성한 마법적 행위(theurgic act)입니다.
침묵 속의 찬가: 말 너머의 말
이 찬가는 역설적이게도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타트가 어떤 곡조로 노래해야 할지를 묻자, 헤르메스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노래하라고 답합니다. 이는 이 찬가가 외부의 귀를 향한 공연이 아니라, 오직 신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노래임을 의미합니다. 모든 외부적인 소음과 내면의 잡념이 사라진 완전한 고요 속에서, 비로소 영혼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합하여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찬가는 “비밀”의 찬가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내용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재탄생을 직접 체험한 자만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메스는 타트에게 “네가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전에는, 너는 이것을 가르칠 수 없다”고 경고하며, 이 지혜가 단순한 지적 정보로 전달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곧 노래의 내용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권능들의 합창: 우주적 찬미
찬가의 내용은, 재탄생한 영혼 안에 들어온 열 개의 신성한 권능들이 이제 한목소리로 신을 찬미하는 장엄한 합창의 형태를 띱니다.
“오, 모든 권능들이여, 내 안에서 노래하라! 그대들 모두 내 안에서 노래하라! 그노시스여, 그대에 의해 빛을 받아, 나는 마음의 빛을 통해 노래하노라… 오, 영이여, 내 안에서 노래하라. 오, 나의 뿌리들이여, 내 안에서 노래하라.”
여기서 노래의 주체는 더 이상 개별적인 ‘나’가 아닙니다. ‘나’는 이제 신성한 권능들이 자신을 통해 노래하는 하나의 투명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노시스는 빛을 비추고, 영은 호흡을 불어넣으며, 뿌리(신성한 근원)는 힘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재탄생한 자아는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우주적 힘들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살아있는 악기가 됩니다.
그는 “나의 이성이 그대를 찬미하나이다. 나의 권능들을 통해, 그대를 노래하나이다. 그대의 말씀이 그대를 통해 노래하나이다”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모든 부분—이성, 권능, 말씀—이 이제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찬미하는 자와 찬미받는 자, 노래와 노래하는 자가 하나가 되는 궁극적인 합일의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체로부터 전체에게: 궁극의 귀환
찬가의 마지막 부분은 이 합일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오, 전체여, 그대 안에 있는 전체로부터 이 영적인 희생을 받으소서.”
이 구절은 헤르메스주의 신관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나’라는 분리된 존재가 ‘신’이라는 외부의 대상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이미 신인 ‘전체(the All)’이기에, ‘전체 안에 있는’ 나의 모든 것(권능, 이성, 말씀) 또한 본래 신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찬가는 ‘전체로부터 나와서 전체에게로 되돌아가는’ 영적인 희생입니다. 그것은 빚을 갚는 행위가 아니라, 강물이 바다로 되돌아가듯, 자신의 근원으로 기쁘게 귀환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을 통해, 구도자는 “우리가 바라는 바, 즉 안식 속에 머무는 것”을 얻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구원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가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이자 종착점인 신 안에서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찾은 자입니다.
종합해서 이야기 하면, 「산상에서의 비밀 설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재탄생의 여정은, 내면의 악덕들을 추방하는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을 거쳐, 신성한 권능들로 새로운 자아를 구성하고, 마침내 이 비밀 찬가를 통해 신과의 완전한 합일 속에서 그 완성을 찾는 장엄한 드라마입니다. 이 찬가는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재탄생을 체험한 영혼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승리의 노래이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이 되는 기적을 언어로써 성취하는 가장 강력한 선언입니다. 이 노래를 진정으로 부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헤르메스가 약속했던 “신의 아들들”이 되어, 영원한 빛 속에서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