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프리메이슨의 상징

by DrLeeHC

제2부: 프리메이슨의 철학과 에소테리즘


제5장: 프리메이슨의 상징


5.1 직각자와 컴퍼스: 상징의 의미


인류의 역사가 낳은 수많은 상징들 중에서, 프리메이슨의 '직각자와 컴퍼스(The Square and Compasses)'만큼이나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으면서도, 그 의미는 깊은 안갯속에 가려져 있는 상징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묘하게 결합된 두 개의 도구를 오래된 건물의 주춧돌 위에서, 낡은 서적의 표지에서, 혹은 누군가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위에서 마주치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비밀스러운 암호처럼, 아는 자에게는 깊은 의미를, 모르는 자에게는 끝없는 호기심과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과연 이 단순한 석공의 두 연장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며, 프리메이슨은 왜 이 상징을 그들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프리메이슨의 도덕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이 상징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각각의 도구가 지닌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먼저 직각자 (Square)는, 그 이름 그대로 모든 모서리를 완벽한 직각으로 만들고 모든 면을 반듯하게 다듬기 위해 사용되는 석공의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이 실용적인 기능에서 프리메이슨은 매우 중요한 도덕적 가르침을 이끌어냅니다. 즉, 직각자는 바로 '도덕성'과 '정의', 그리고 '진실성'의 상징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미덕의 직각자에 맞추어 반듯하게 하라"고 배웁니다.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항상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며, 사회의 법과 도덕률을 성실히 지키는 올곧은 시민으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직각자는 우리의 발이 굳건히 딛고 서 있는 이 지상의 세계, 즉 물질 세계에서의 올바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컴퍼스 (Compasses)는, 건축가나 석공이 원을 그리고 설계도의 범위를 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주의 속에서, 컴퍼스는 우리의 내면 세계를 다스리는 '지혜'와 '절제'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컴퍼스의 한쪽 다리를 중심점에 고정하고 다른 쪽 다리를 움직여 원을 그리듯이, 우리 역시 자신의 불타는 열정과 욕망을 이성이라는 중심점 안에 머무르게 하고, 그것이 함부로 경계를 넘어 폭주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직각자가 타인과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적인 의무'를 상징한다면, 컴퍼스는 자기 자신을 향한 '내적인 수양'을 상징하는 도구입니다. 그것은 물질 세계를 넘어선 우리의 정신적, 영적인 삶의 영역을 관장합니다.


하지만 이 상징의 진정한 깊이는, 이 두 개의 도구가 따로 떨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서로 단단히 얽혀 하나의 완전한 상징을 이룰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직각자와 컴퍼스의 결합은, 바로 '물질적 삶과 영적 삶의 완벽한 균형'이라는 프리메이슨 철학의 최종 목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만다라(Mandala)입니다. 직각자만 있고 컴퍼스가 없는 삶, 즉 도덕과 규칙은 있지만 내면의 성찰과 영적 열망이 없는 삶은, 차갑고 공허한 형식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대로 컴퍼스만 있고 직각자가 없는 삶, 즉 뜬구름 잡는 영성만 추구하며 현실의 의무와 도덕을 소홀히 하는 삶은, 그 뿌리를 잃고 공중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프리메이슨은 자신의 발을 미덕이라는 직각자의 단단한 땅 위에 딛고 서서, 동시에 자신의 정신을 지혜라는 컴퍼스의 무한한 하늘을 향해 열어두는 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 두 세계의 조화로운 결합이야말로,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그들은 믿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종종 이 상징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알파벳 'G'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G라는 글자 역시 하나의 의미가 아닌, 여러 겹의 심오한 뜻을 품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의미는 물론 'God', 즉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를 상징합니다. 이는 모든 작업이 신성한 존재의 감시 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경건한 표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G는 프리메이슨이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신성시했던 '기하학 (Geometry)'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기하학은 우주를 창조한 신의 언어이자,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이성의 가장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또한 일부 에소테릭 전통에서는 이 G를, 단순한 지식이 아닌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신성한 깨달음, 즉 '그노시스 (Gnosis)'와 연결 짓기도 합니다. 이처럼 G라는 하나의 글자 속에, 신앙과 이성, 그리고 신비주의적 깨달음의 길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직각자와 컴퍼스는 프리메이슨의 단순한 로고나 장식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철학이 응축되어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자 명상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이 불완전한 '거친 돌'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미덕의 직각자로 자신의 행동을 반듯하게 하고, 절제의 컴퍼스로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며, 마침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완벽한 돌'로 거듭나는 평생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요약한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입니다. 프리메이슨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이 상징에서 시작하여, 다시 이 상징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5.2 빛과 어둠의 비유


인류가 남긴 모든 신화와 종교, 그리고 철학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하나의 위대한 투쟁의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빛과 어둠의 대립에 대한 서사입니다. 낮과 밤, 앎과 모름, 생명과 죽음처럼, 이 원초적인 이중성은 인간의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틀입니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주의는 바로 이 보편적인 빛과 어둠의 비유를 그들의 철학적 드라마의 중심 무대로 가져와, 한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영적 여정의 과정으로 재창조합니다.


프리메이슨의 가르침 속에서, 어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악(惡)이나 사악한 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인간이 태어날 때 처해 있는 본연의 상태, 즉 무지 (Ignorance)와 편견, 그리고 아직 계발되지 않은 내면의 혼돈을 상징합니다. 프리메이슨에 입문하고자 하는 지원자는 의식의 가장 첫 단계에서 실제로 그의 눈이 가려진 상태로 로지 안으로 인도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원자가 지금 영적인 어둠 속에 있으며, 자신의 힘만으로는 진리를 볼 수 없고, 오직 타인의 인도를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겸손한 구도자(求道者)의 상태에 있음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의식적 표현입니다. 이 눈이 가려진 상태는,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의 내면적 상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상징적인 어둠 속에서, 지원자는 오직 하나의 것을 간절히 구하도록 요청받습니다. 그것은 부귀도 명예도 아닌, 바로 빛(Light)입니다. 프리메이슨의 모든 의식은 이 '빛을 향한 탐구'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갈망하는 빛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빛 역시 하나의 의미가 아닌, 여러 겹의 다층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첫째로, 빛은 이성(Reason)과 지식(Knowledge)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미신과 편견의 어둠을 몰아내는 계몽주의의 빛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이 빛을 통해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로, 빛은 도덕(Morality)과 진리(Truth)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유혹 속에서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올곧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내면의 등불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직각자와 컴퍼스는 바로 이 도덕의 빛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항해 도구와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차원에서 빛은 신성(Divinity)영적 깨달음(Spiritual Enlightenment)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로부터 발출되어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 한 조각씩 깃들어 있다는 내면의 신성한 불꽃입니다. 프리메이슨의 궁극적인 여정은, 바로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이 본성의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우주 전체에 가득한 위대한 빛과 하나로 합일시키는 것입니다.


입문 의식의 절정에서, 지원자의 눈을 가렸던 가리개가 마침내 벗겨지는 극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는 지원자가 그토록 갈망하던 빛을 부여받는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완성된 깨달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제 막 자신의 눈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하는, 기나긴 여정의 진정한 시작점입니다. 눈을 뜬 그의 앞에는, 로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상징들과, '세 개의 위대한 빛'이라 불리는 성스러운 경전(Volume of the Sacred Law), 직각자(Square), 그리고 컴퍼스(Compasses)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는 이제 평생에 걸쳐 이 상징과 경전의 의미를 탐구하며 자신만의 빛을 더욱 밝혀나가야 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프리메이슨에게 빛과 어둠의 비유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거쳐야 하는, 무지에서 지혜로, 혼돈에서 질서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더 큰 존재로 나아가는 영원한 성장과 변성의 드라마입니다. 프리메이슨의 비밀주의가 바로 이 어둠을 의식적으로 연출하여, 후보자가 '빛을 받는' 체험의 신성함과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들을 둘러싼 오해의 상당 부분을 걷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빛을 발견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5.3 사원 건축과 영적 건축


프리메이슨의 상징 세계를 여행하는 우리에게, 모든 길은 결국 하나의 장엄하고도 신비로운 건축물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솔로몬의 성전 (King Solomon's Temple)입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파괴되어 그 터만 남아있는 이 고대의 사원이, 어떻게 시공간을 넘어 현대 프리메이슨들의 정신 세계에서 그토록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왜 그토록 끈질기게 이 잃어버린 성전의 건축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 속의 인물들을 기리는 것이겠습니까? 그 해답은, 프리메이슨 철학의 가장 위대한 연금술적 변환, 즉 물리적인 사원 건축을 영적 건축이라는 심오한 알레고리로 승화시킨 과정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성서에 따르면, 솔로몬의 성전은 지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곳은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께서 직접 내려주신 설계도에 따라 지어졌으며, 모든 돌은 채석장에서 완벽하게 다듬어져, 정작 성전 부지에서는 망치나 정 등 어떤 쇠 연장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은 완전한 침묵과 조화, 그리고 질서 속에서 신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평화의 집이었습니다. 프리메이슨에게 이 이야기는, 인간이 신의 뜻과 합치되어 위대한 과업을 이루어낸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이 전설적인 건축 과정 속에서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 왕, 물질적 힘의 상징인 티레의 히람 왕, 그리고 이 둘을 조화시켜 실제 건축을 수행한 최고의 장인, 히람 아비프 (Hiram Abiff)라는 세 명의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를 발견하고, 이들을 자신들의 이상적인 역할 모델로 삼습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의 진정한 목표는 결코 예루살렘에 돌로 된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위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거대한 청사진으로 삼아, 전혀 다른 차원의 건축 작업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 작업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에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도덕적 자기계발'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과 같습니다. 프리메이슨은 바로 이 자기 자신이라는 원석을, 평생에 걸쳐 상징적인 작업 도구들을 사용하여 다듬어 나갑니다. 망치로 악덕을 깨뜨리고, 끌로 지성을 연마하며, 직각자로 행동을 반듯하게 하고, 컴퍼스로 욕망을 제어하는 이 모든 과정은, 바로 내면의 성전을 짓기 위한 지난한 노동입니다. 이 영적 건축의 목표는, 자신의 영혼을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께서 기꺼이 머무실 수 있는,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며 조화로운 성소(聖所)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친 돌이 완벽한 돌로 변모하는 과정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건축 작업은 결코 개인의 내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프리메이슨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두 번째의, 더욱 거대한 차원의 건축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라는 이름의 위대한 성전(The Temple of Humanity)을 짓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돌을 완벽하게 다듬는 데 성공한 사람은, 이제 그 돌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완벽한 돌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 크고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꺼이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거대한 사회적 성전은 총과 칼이 아닌, 우리가 제4장에서 배운 형제애, 구제, 진리라는 세 개의 위대한 기둥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각각의 프리메이슨이 자신의 자리에서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 때, 그의 그 선한 행위 하나하나가 바로 이 인류의 성전에 놓이는 또 하나의 벽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벽돌들을 서로 단단히 결합시키는 신성한 접착제는, 바로 '흙손'으로 상징되는 따뜻한 형제애와 자비의 마음입니다.


프리메이슨의 로지는 바로 이 이중적인 건축 작업을 위한 상징적인 '작업장'입니다. 로지의 바닥이 선과 악, 기쁨과 슬픔 같은 인간 삶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흑백의 모자이크 타일로 깔려 있는 것은, 우리가 바로 이 혼돈스러운 현실 세계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성전을 지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로지의 천장에 해와 달과 별들이 그려져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작업이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위대한 건축가의 시선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프리메이슨 철학의 정수는 '영적 건축술'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었던 솔로몬의 성전이라는 전설을 살아있는 상징으로 채택하여, 그것을 자기 완성의 길이요,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청사진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프리메이슨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비밀 악수나 신비로운 의례의 형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리고 인류 역사라는 거대한 시공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지어 올리고 있는 저 보이지 않는 성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건축은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작업 또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5.4 G 문자와 신비주의적 해석


프리메이슨의 가장 유명한 상징, 직각자와 컴퍼스가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형태의 바로 그 심장부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글자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알파벳 'G'입니다. 이 글자는 마치 상징의 전체 구조에 화룡점정(畫龍點睛)을 하듯, 조용히 그러나 강력한 존재감으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음모론과 비의적(秘儀的) 해석이 바로 이 하나의 글자를 중심으로 뻗어 나갔으며, 그 의미를 둘러싼 논쟁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 G라는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며, 프리메이슨은 왜 이토록 중요한 위치에 이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우리를 프리메이슨 철학의 가장 표면적인 의미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신비주의적 핵심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의미의 지층을 탐사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이 상징을 이해하는 가장 첫 번째 층위, 즉 가장 널리 알려지고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바로 신(God)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이 G가 그들의 모든 작업이 그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지고의 존재, 즉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The Great Architect of the Universe)'를 상징한다고 가르칩니다. 로지의 동쪽(East)에 이 상징이 걸려 있는 것은, 마치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 세상을 비추듯, 모든 지혜와 빛이 위대한 건축가로부터 비롯됨을 상기시키는 장치입니다. 이는 프리메이슨이 무신론적 단체가 아니며, 회원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 우주를 창조한 신성한 원리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명료하고도 중요하지만, 만약 G의 의미가 이것이 전부라면, 굳이 'God'의 첫 글자인 G를 사용할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상징의 진정한 깊이는 바로 다음 층위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층위에서, G는 기하학(Geometry)을 상징합니다. 이는 사변적 프리메이슨이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작업적 석공들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의미입니다. 중세의 석공들에게 기하학은 단순한 수학의 한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이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할 때 사용했던 신성한 언어 그 자체였으며, 돌과 나무라는 혼돈스러운 물질에 질서와 조화, 그리고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실천적인 기술의 정수였습니다. 이 전통을 물려받은 사변적 프리메이슨에게, 기하학은 물질 세계를 넘어선 우주의 합리적인 원리와 이성의 힘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의 눈을 통해 우주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설계도를 읽어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G라는 글자는 바로 이 '이성의 빛'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G는 한편으로는 신앙의 대상인 God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신의 창조 원리를 이해하는 도구인 Geometry를 동시에 가리키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계몽주의적 이상의 완벽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장 깊고도 난해한, 에소테릭(Esoteric) 전통이 말하는 세 번째 층위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 신비주의적 해석 속에서, G는 마침내 그노시스(Gnosis)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함께하게 됩니다. 그노시스는 단순히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책을 통해 배우는 지적인 앎(Knowledge)이 아니라, 명상과 내적 성찰, 그리고 신비체험을 통해 얻게 되는 직접적이고도 영적인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머리의 앎'이 아닌 '가슴의 앎'이며,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신성(神性)을 직접 발견하는 변형적인 체험입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프리메이슨의 모든 여정은 바로 이 내면의 그노시스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재해석됩니다. 로지 안에서 눈이 가려진 채 빛을 찾아 헤매는 입문자의 모습은, 외부의 신이 아닌 자기 안의 신성한 빛, 즉 내면의 G를 찾아가는 영혼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거친 돌을 완벽한 돌로 다듬는 작업은, 바로 자신의 무지와 편견이라는 껍질을 깨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신성의 불꽃, 즉 그노시스의 광채를 드러내기 위한 영적 연금술인 것입니다. 이 해석 속에서 G는 더 이상 외부의 신이나 학문을 가리키는 기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신성한 중심점, 즉 '내 안의 신(The God within)'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됩니다.


G라는 하나의 글자는 결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될 수 없는, 열려있는 상징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길을 걷는 이에게는 God을, 이성의 길을 탐구하는 이에게는 Geometry를, 그리고 내면의 길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Gnosis를 보여주는 신비로운 거울과도 같습니다. 프리메이슨의 진정한 지혜는 이 세 가지 길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의 중심을 향하는 서로 다른 길임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신앙과 이성, 그리고 신비체험은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세 개의 다른 창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G라는 글자는 프리메이슨의 관용과 지적 개방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며, 그 진정한 의미는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비밀이 아니라, 각자가 평생의 여정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고 체험해야만 하는, 살아있는 진리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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