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숭배'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흔히 중세의 흑마술사나 기괴한 제물을 바치는 광신도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탄교(Satanism)'라고 부르는 가장 대표적이고 조직화된 흐름은, 놀랍게도 그러한 고대의 미신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대 사탄교의 역사는 1966년 4월 30일, 발푸르기스의 밤 (Walpurgisnacht)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검은 집에서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고 '사탄 교회(The Church of Satan)'의 창립을 선언한, 기이하고도 카리스마 넘치는 한 인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이름은 안톤 샨도르 라베이 (Anton Szandor LaVey)였습니다.
서커스단의 사자 조련사, 범죄 사진가, 그리고 오르간 연주자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졌던 라베이는, 인간 본성의 위선과 기독교 도덕의 허구성에 깊은 환멸을 느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신을 경배하도록 만들어진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욕망과 이기심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동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원죄와 금욕, 그리고 내세의 구원을 설파하는 기독교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압하고 죄책감이라는 족쇄를 채워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거대한 정신적 사기극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라베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철학적 전복(顚覆)을 시도합니다. 그는 기독교가 '악'으로 규정한 모든 것, 즉 육체적 쾌락, 지적인 교만, 복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자기애(自己愛)야말로, 사실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진실하고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죄악시되던' 가치들을 긍정하고 대변하는 상징으로서,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적, 바로 사탄(Satan)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채택했습니다.
1969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사탄의 성서, The Satanic Bible』는 이러한 그의 철학을 집대성한 경전입니다. 이 책에서 라베이가 제시하는 사탄은, 뿔과 꼬리를 가진 채 지옥 불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초자연적인 악마가 결코 아닙니다. 라베이 사탄교는 근본적으로 무신론(Atheism)에 기반합니다. 그들은 신도, 악마도, 천국도, 지옥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사탄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외부의 신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된 원초적인 힘, 즉 낡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자(The Adversary)'로서의 지성, 금기에 도전하는 '탐구자'로서의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의 유일한 신으로 삼는 '강력한 개인주의'를 상징하는, 하나의 강력한 은유(Metaphor)이자 원형(Archetype)일 뿐입니다.
따라서 라베이 사탄교의 핵심 교리는 '악마 숭배'가 아니라, '자기 숭배'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아홉 가지 사탄 선언문은 "사탄은 금욕이 아닌 방종을 상징한다", "사탄은 영적인 망상이 아닌 현실적인 지혜를 상징한다", "사탄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대표한다"와 같이, 전통적인 기독교 도덕을 정면으로 뒤집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 대신 '네게 잘못한 자에게 복수하라'고 가르치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 대신 '자신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이기적인 은(銀)의 규칙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행하는 '의식(Ritual)' 역시,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 위한 마법이 아니라,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 드라마(Psychodrama)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를 저주하는 의식을 통해, 현실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심리적인 분노를 배출하고, 성적인 욕망을 긍정하는 의식을 통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은 외부의 신이나 악마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정신적, 감정적 만족과 강화에 있습니다.
안톤 라베이가 창시한 현대 사탄교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악마 숭배와는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른, 지극히 현대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철학 체계입니다. 그것은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Nietzsche)의 사상과, 객관주의 철학을 주창한 아인 랜드 (Ayn Rand)의 급진적 개인주의, 그리고 다윈 (Darwin)의 사회진화론이 기묘하게 결합된, 20세기의 산물입니다. 그들은 프리메이슨의 비판자들이 덮어씌운 혐의, 즉 '악마 숭배'라는 이름을 기꺼이 자신들의 깃발로 삼았지만, 그 깃발 아래에서 그들이 실제로 행하는 것은 신성모독적인 숭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을 극한까지 긍정하고 찬양하는, 지독히도 솔직하고 냉소적인 자기중심주의 철학인 것입니다.
13.2 루시퍼리안(Luciferianism)과 그 철학
만약 안톤 라베이 (Anton LaVey)의 사탄교가 인간을 동물로 규정하고, 그 육체적 본능의 완전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지극히 유물론적(Materialistic)인 철학이라면, 루시퍼리안의 사상은 그 시선을 정반대의 방향, 즉 인간 내면의 신성한 불꽃과 지성의 빛을 향한 무한한 상승의 길을 제시하는, 지극히 영적(Spiritual)이고도 지성적(Intellectual)인 철학입니다. 라베이의 사탄이 억압된 욕망의 화신이라면, 루시퍼리안의 루시퍼 (Lucifer)는 인류에게 금지된 지식의 불을 훔쳐다 준 고대의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와도 같은, 비극적이고도 영웅적인 계몽의 상징입니다.
이 모든 철학의 출발점은 바로 '루시퍼'라는 이름의 어원 그 자체에 있습니다. 라틴어로 '빛'을 의미하는 '룩스 (Lux)'와 '가져오는 자'를 의미하는 '페레 (Ferre)'의 결합인 이 이름은, '사탄'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반대자' 혹은 '고발자'를 의미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탄이 기존의 질서에 '반대'하는 존재라면, 루시퍼는 인류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빛, 즉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지식과 깨달음입니다.
루시퍼리안의 신화적 서사 속에서, 에덴 동산의 뱀은 인류를 타락시킨 유혹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인류가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도록 하여, 신의 애완동물과도 같은 맹목적인 복종의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성적 존재로 거듭나도록 도와준 최초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인류를 영원한 무지 속에 가두려 했던 구약의 신이야말로, 영지주의 (Gnosticism)자들이 말했던 불완전하고 오만한 창조주 데미우르고스 (Demiurge)이며, 루시퍼는 바로 그 독재적인 권위에 맞서 인류에게 그노시스 (Gnosis), 즉 영적 깨달음의 길을 열어준 진정한 해방자입니다.
따라서 루시퍼리안은 결코 기독교가 규정하는 악마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희생 제물이나 흑마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악의적인 저주와 같은 행위를 경멸합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외부의 신이나 악마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지식의 탐구와 예술적 창조,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기 자신 안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God-like)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라베이 사탄교가 추구하는 육체적 쾌락의 극대화와는 전혀 다른, 영혼의 자기 신격화(Self-Deification)를 향한 고독하고도 험난한 길입니다.
또한, 루시퍼리안 철학의 핵심에는 균형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빛만을 숭배하고 어둠을 배척하는 전통적인 종교와는 달리, 빛과 어둠, 정신과 물질, 창조와 파괴가 모두 우주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이 두 상반된 힘의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잡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거듭나는 데 있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루시퍼리안의 철학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악마 숭배'와는 가장 거리가 먼, 오히려 지독히 엘리트주의적이고 지성적인 영적 휴머니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구원이 외부의 은총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가장 급진적인 개인주의자들이자 지식의 순례자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됩니다. '빛을 향한 탐구'와 '계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루시퍼리안의 이상은, 놀랍게도 프리메이슨이 추구하는 철학적 목표와 그 표면적인 언어에 있어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위험한 유사성 때문에,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의 가장 숭고한 이상을 상징하는 '빛'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루시퍼리안, 그리고 더 나아가 사탄 숭배자라는 끔찍한 누명을 함께 뒤집어쓰게 된 것입니다.
13.3 역사적 악마 숭배 사례: 헬파이어 클럽
현대의 사탄교가 하나의 철학적 반란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부터, 서구 사회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사회 최상류층의 엘리트들이 밤의 장막 뒤에 모여, 신을 모독하고 금지된 쾌락을 탐닉하는 비밀스러운 의식을 벌인다는, 달콤하고도 끔찍한 상상력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상상에 가장 완벽한 현실의 육체를 제공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18세기 중반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헬파이어 클럽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클럽의 공식적인 명칭은 '성 프랜시스의 기사단 (The Knights of St. Francis)'이었지만, 세상은 그들을 훨씬 더 자극적이고 솔직한 이름, 즉 지옥 불 클럽으로 기억합니다.
이 비밀스러운 모임의 중심에는 당대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던 프랜시스 대시우드 (Sir Francis Dashwood) 남작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고대의 신비주의와 이교(Pagan)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으며, 당대 영국의 위선적인 기독교 도덕률에 깊은 환멸을 느낀, 전형적인 18세기의 자유분방한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정계와 예술계의 최고위급 인사들을 모아, 기독교의 억압적인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기 위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성소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성소는 런던 근교에 위치한, 한때 시토회 수도원이었던 메드메넘 사원 (Medmenham Abbey)이었습니다. 대시우드는 이 낡은 수도원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개조하여, 신성모독적인 유머와 이교적 상징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수도원의 정문 위에는 프랑수아 라블레 (François Rabelais)의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Gargantua and Pantagruel』에 나오는 텔렘 사원 (Abbey of Thélème)의 좌우명, "그대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Fay ce que vouldra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클럽의 유일한 규칙이자, 모든 기독교적 계율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내부 정원은 여성의 신체를 본뜬 조각상들로 채워졌고, 예배당은 이교의 신들, 특히 술의 신 바쿠스 (Bacchus)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 (Venus)에게 헌정되었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공간 안에서, 회원들은 스스로를 '수도사'라 칭하고, 그들이 초대한 상류층 여성들은 '수녀'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한 의식은 결코 경건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가톨릭 미사를 조롱하는 패러디 의식을 거행하고, 이교의 신들에게 풍요와 쾌락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으며, 가면을 쓴 채 온갖 종류의 성적(性的)인 유희와 방종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들의 핵심 목표는 기독교가 규정하는 '악마'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기독교가 억압했던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고대의 이교적 즐거움을 '신성한 것'으로 복권시키려 했던, 일종의 귀족적 이교 부흥 운동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비밀스러운 활동은, 굳게 닫힌 문밖으로 새어 나가면서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훨씬 더 거대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부풀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히 이교의 신을 섬기는 것을 넘어, 실제로 악마를 소환하고 흑미사 (Black Mass)를 거행하며, 심지어는 사탄과 직접 계약을 맺는다는 끔찍한 소문을 만들어냈습니다. 클럽의 비밀주의와 회원들의 막강한 사회적 지위는, 이러한 소문에 오히려 신빙성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바로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얻었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헬파이어 클럽은 실제 역사 속에서 '악마 숭배'를 행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하는 집단은 아닙니다. 그들의 행위는 신성모독적이고 부도덕했을지는 몰라도, 그 본질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귀족적 반항이자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지배 계급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모여 기존의 도덕률을 조롱하는 행위는, 그들의 본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중의 눈에는 언제나 가장 끔찍한 형태의 악, 즉 '악마 숭배'의 이미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헬파이어 클럽이 남긴 이 강력한 이미지는, 훗날 프리메이슨과 같은 다른 비밀결사들이 부당하게 악마 숭배의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는 비옥한 역사적, 심리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13.4 대중문화 속 악마 숭배 이미지
우리가 앞선 절들에서 탐사한 라베이 사탄교 (LaVeyan Satanism)의 무신론적 개인주의나 루시퍼리안 (Luciferianism)의 지성적 탐구는,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마 숭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대중의 상상력 속에 살아 숨 쉬는 악마 숭배자의 모습은, 복잡한 철학 서적이 아닌, 어두운 극장의 스크린과 시끄러운 스피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읽는 공포 소설의 페이지 속에서 태어난, 훨씬 더 극적이고 원초적인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는 실제 사탄교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잠재된 공포를 자극하고, 선과 악의 장엄한 싸움을 연출하며, 금기에 대한 짜릿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강력한 신화적 원형으로서의 악마 숭배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합니다.
이 현대적 신화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는 단연 영화라는 매체입니다. 특히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등장한 일련의 기념비적인 공포 영화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악마 숭배의 거의 모든 시각적 문법을 창조해 냈습니다. 1968년,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감독의 영화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는 그 서막을 연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악마 숭배자들이 뿔 달린 괴물이나 사회 부적응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웃, 즉 친절하고 교양 있으며 부유한 도시의 엘리트들일 수 있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소름 끼치는 공포를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아파트에 모여,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적그리스도(Antichrist)를 잉태시키기 위한 끔찍한 의식을 벌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악마 숭배'는 더 이상 중세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대중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73년의 『엑소시스트, The Exorcist』는 이러한 공포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이 영화는 악마가 단순히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를 넘어, 어린아이의 순수한 육신에 직접 침투하여 그것을 끔찍하게 유린하고 신성모독적인 언사를 내뱉게 하는, 인격적이고 실재하는 악의 힘으로 묘사했습니다. 거꾸로 된 십자가와 구토, 그리고 기괴하게 뒤틀리는 신체와 같은 이미지들은, 악마의 존재에 대한 시각적인 증거로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구축한 세계, 즉 '일상 속에 숨어든 엘리트 악마 숭배 집단'과 '실재하는 악마의 초자연적 힘'이라는 두 개의 기둥이야말로, 이후 수십 년간 수많은 공포 영화와 소설이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주하게 될 악마 숭배 이미지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음악의 세계, 특히 헤비메탈 (Heavy Metal) 장르는 이러한 악마적 이미지를, 종교적 공포가 아닌 젊은 세대의 반항과 저항의 상징으로 전유(專有)했습니다.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에서부터 슬레이어 (Slayer)에 이르는 수많은 밴드들은, 자신들의 음악과 앨범 아트에 거꾸로 된 십자가, 오각성, 그리고 사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사탄 패닉 (Satanic Panic)' 현상 속에서, 이들의 음악은 실제로 청소년들을 악마 숭배로 이끄는 위험한 통로로 지목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사탄 숭배'는 실제 신앙 고백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도덕과 상업적인 주류 문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형태의 미학적 반항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탄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자유와 개인주의의 가장 짜릿한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대중문화의 거울에 비친 악마 숭배의 이미지는, 실제 존재하는 특정 집단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욕망과 공포가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키메라 (Chimera)입니다. 그 얼굴은 공포 영화의 주인공에게서, 그 심장은 헤비메탈의 반항 정신에서, 그리고 그 뼈대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관에서 가져와 조립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괴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프리메이슨을 둘러싼 비극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중들과 음모론자들은 프리메이슨을 비난할 때, 그들의 실제 철학이나 역사를 검토하는 대신, 바로 이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친숙하고도 자극적인 악마 숭배자의 이미지를 그들의 얼굴 위에 너무나도 손쉽게 겹쳐놓는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