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딛고 서서,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기원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단순히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만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이 모든 존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훨씬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이야기가 바로 창세 신화 (Creation Myth)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한 부류의 신화들은, 세계가 무(無)에서 창조되거나 신의 단순한 명령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태초의 거대한 존재, 즉 우주적 거인 (Cosmic Giant)이나 원초적 괴물 (Primordial Monster)의 비극적인 희생과 그 몸의 해체를 통해 탄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화들을 우리는 신체화생 (身體化生) 신화라고 부릅니다.
고대인들에게 우주는 단순히 무생물적인 공간이 아니라, 실재적이고 살아 있으며 전일적 (全一的)인 유기체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몸이 심장, 폐, 사지 등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하나의 생명체로 기능하는 것처럼, 우주 또한 산과 강, 하늘과 땅, 동식물과 인간 등 모든 존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살아있는 우주'라는 신성한 체험의 원천은, 바로 창세 신화에 묘사된 우주적 거인의 희생에서 비롯됩니다.
이 신화들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의 태초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종종 형태 없는 혼돈 (Chaos)으로, 혹은 거대한 알이나 심연의 바다와 같은 원초적인 덩어리로 표현됩니다. 이 혼돈 속에서, 또는 이 혼돈으로부터, 비로소 최초의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가 나타납니다. 중국 신화의 '반고',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 바빌로니아 신화의 '티아마트', 인도 신화의 '푸루샤', 이란 신화의 '가요마르드'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원시적 생명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이 거인들의 존재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어떤 거인은 스스로의 힘을 다 소진하여 자발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어떤 거인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 신들의 폭력적인 공격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죽음이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의 거대한 몸은 해체되고, 그 몸의 각 부분들이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 즉 하늘과 땅, 산과 강, 바람과 구름, 그리고 심지어 동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의 질료가 됩니다.
이 신체화생 신화들은 고대인들에게 단순한 우주 기원 설명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즉 우주가 하나의 신성한 몸으로 연결된 거대한 유기체라는 심오한 깨달음을 제공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태초의 거인으로부터 생명력을 물려받은, 우주적 몸의 일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인들의 종교관, 윤리관, 그리고 삶의 방식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우주적 거인의 희생과 창조 신화들을 하나씩 깊이 들여다보면서, 인류가 어떻게 이 거대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우주의 관계를 이해하고, 존재의 근원적인 일체감을 체험했는지 탐험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잔혹한 희생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과 모든 존재의 신성한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2절: 중국의 창세 신화 - 반고
우리의 첫 번째 여정은 고대 중국의 신화가 태동하던 황하 유역의 안개 낀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장엄한 상상력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늘과 땅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 세상은 마치 거대한 닭의 알과 같은 형상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과 형언할 수 없는 혼돈만이 가득했습니다. 빛도, 소리도, 방향도 없는 이 원초적인 알 속에서, 1만 8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잉태되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반고 (盤古)였습니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반고는 자신을 둘러싼 무겁고 답답한 혼돈에 숨이 막혔습니다. 그는 어디선가 거대한 도끼 한 자루를 가져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이 혼돈의 알을 향해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알은 마침내 두 개로 쪼개졌습니다. 그 안에서 가볍고 맑은 기운, 즉 양(陽)의 기운은 위로 끝없이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운, 즉 음(陰)의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아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분리된 하늘과 땅이 다시 하나로 합쳐져 혼돈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한 반고는, 자신의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고 두 발로는 땅을 굳게 딛고 서서, 두 세계 사이를 온몸으로 버텨냈습니다. 그가 선 채로 보낸 세월은 또다시 1만 8천 년이었습니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하늘은 매일 한 길씩 높아졌고, 땅은 매일 한 길씩 두꺼워졌으며, 반고의 몸 또한 그에 맞춰 매일 한 길씩 자라났습니다. 그의 거대한 성장은, 곧 우주 자체의 성장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늘과 땅 사이가 다시는 붙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우주의 질서가 안정되었음을 확인한 순간, 반고의 몸을 지탱하던 모든 힘이 소진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다했음을 깨닫고, 땅 위에 조용히 쓰러져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그의 몸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변성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우주를 완성하는 마지막 창조 행위였습니다.
그가 내쉬는 마지막 숨결은 자유로운 바람과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 되었고, 그의 마지막 외침은 천둥과 우레가 되었습니다. 그의 왼쪽 눈은 세상을 비추는 밝은 태양이 되었고, 오른쪽 눈은 밤을 지키는 은은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의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는 대지를 이루는 사방의 기둥과 다섯 개의 큰 산 (五嶽, 오악)이 되었고, 그의 혈관을 흐르던 피는 땅 위를 흐르는 강과 하천이 되었습니다. 그의 근육은 세상의 길이 되었고, 그의 살은 비옥한 논과 밭으로 변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되었고, 온몸의 솜털은 땅 위의 풀과 나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의 치아와 뼈는 땅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금속과 바위, 그리고 영롱한 보석이 되었으며, 그가 흘린 땀방울마저도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이슬과 단비가 되었습니다.
반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이 신화는 창조주가 세상 ‘밖’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오히려 세상 그 자체가 바로 창조주의 몸입니다.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은 그의 살이며, 우리가 마시는 강물은 그의 피이고, 우리를 감싸는 바람은 그의 숨결입니다. 태양과 달은 그의 눈이 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밤하늘의 별들은 그의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흔적입니다.
이것은 고대 중국인들이 우주를 바라보았던 근원적인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즉, 이 우주는 분리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하고 신성한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거대한 몸의 일부로서, 자연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반고의 희생적인 죽음은, 그의 생명력이 우주의 모든 만물 속으로 스며들어 영원히 순환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 무수한 작은 생명들로 모습을 바꾸어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된, 장엄한 생명의 확장이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반고의 신화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 일체감을 일깨워주는 가장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노래라 하겠습니다.
제3절: 북유럽의 창세 신화 - 이미르
고대 중국의 반고 신화를 통해 우주적 거인의 희생과 창조를 살펴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대륙의 서쪽 끝, 얼음과 불의 땅 북유럽으로 건너가 또 다른 장엄한 창세 신화, 이미르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혼돈이 아닌 극명한 대립 속에서 거인이 태어나고, 그 거인의 피로 우주가 세워지는 더욱 역동적인 서사가 펼쳐집니다.
아무것도 없던 태초, 세상에는 오직 두 개의 극단적인 공간만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는 남쪽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뜨거운 불의 땅 무스펠 (Muspel)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불타는 칼을 든 수르트 (Surtr)가 혼돈의 끝에서 세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북쪽에 있는, 끝없는 얼음과 차가운 안개로 뒤덮인 암흑의 땅 니플헤임 (Niflheim)이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생명 없는 거대한 텅 빈 공간, 즉 긴눙가가프 (Ginnungagap, 심연의 강)가 어둡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무스펠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불꽃의 바람이 니플헤임의 거대한 빙산에 닿기 시작했습니다. 그 열기로 빙산이 녹아내리면서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그 수증기가 다시 얼어붙는 과정 속에서 태초의 생명, 즉 거대한 태초의 거인 이미르 (Ymir)와 그의 몸을 키울 태초의 암소 아우드훔라 (Audhumla)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미르는 아우드훔라의 젖 네 줄기를 먹고 자랐으며, 그 젖을 통해 힘을 얻었습니다. 한편, 아우드훔라는 소금기가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핥아 먹으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녀가 핥던 얼음 속에서는 놀랍게도 또 다른 생명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녀가 핥은 첫째 날에는 머리카락이, 둘째 날에는 머리가, 셋째 날에는 몸통이 나타나, 두 번째 거인 부리 (Buri)가 탄생했습니다. 부리는 보르 (Bor)라는 신을 낳았고, 보르는 여자 거인 베스틀라 (Bestla)와 성혼하여 마침내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족인 오딘 (Odin)과 그의 두 형제 빌리 (Vili), 베 (Ve)를 낳았습니다. 한편, 태초의 거인 이미르는 잠을 자면서 흘린 땀으로부터, 특히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 흘린 땀으로부터 다른 거인족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딘과 빌리, 베 형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신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태초의 거인 이미르가 혼돈스러운 상태로 존재하고 수많은 거인족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마침내 힘을 합쳐 이미르를 살해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세 신이 이미르를 죽이자,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오면서 세상에 거대한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이 피의 홍수는 모든 서리 거인들을 휩쓸어 죽였고, 오직 서리 거인 베르겔미르 (Bergelmir)와 그의 아내 한 쌍만이 관에 매달려 살아남아 새로운 거인족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이미르의 거대한 시체를 이용하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미르의 찢겨진 몸을 끌어내어 두개골로는 하늘을 만들고, 그의 뇌로는 구름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뼈와 이빨로는 거대한 산맥과 바위를 만들었으며, 이미르의 살은 우리가 딛고 선 이 광활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의 쏟아진 피는 바다와 호수가 되었고, 그의 털은 울창한 숲이 되었으며, 그의 머리카락은 온갖 풀과 나무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이미르의 몸은 우주의 모든 질료가 되었습니다. 신들은 또한 이미르의 눈썹으로 둘러싸인 울타리를 만들어 인간들이 살 수 있는 중간 세계, 즉 미드가르드 (Midgard)를 건설했습니다. 그 후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해안가를 걷다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오딘은 물푸레나무로 아스크 (Ask)라는 남자를 만들고, 느릅나무로는 엠블라 (Embla)라는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오딘은 자신이 만든 이 인간에게 생명과 영혼을 주었고, 빌리는 이성 (지각)을 주었으며, 베는 피와 따뜻한 감각,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주었습니다. 이 최초의 인간들은 미드가르드에서 살게 되었고, 신들은 하늘의 아스가르드 (Asgard)에서 그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이미르 신화는 북유럽인들의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우주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두 개의 상반된 원형, 즉 불과 얼음의 대립과 융합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평화로운 창조가 아니라, 폭력적인 희생과 해체를 통해 건설되었습니다. 이미르의 죽음은 잔혹했지만, 그것은 혼돈의 거인 시대를 끝내고, 질서와 생명이 있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대가였습니다.
이 신화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들이 모두 이미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분화되어 나온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딛고 선 땅은 이미르의 살이고,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그의 피이며, 우리가 숨 쉬는 세상은 그의 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 또한 나무에서 창조되었지만, 궁극적으로 이미르의 몸에서 파생된 질료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존재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북유럽인들의 인식을 반영하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때로는 잔혹하게 느껴지는 세상의 원초적인 힘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미르의 희생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근원적인 전환점이자, 모든 존재의 신성한 뿌리를 상징하는 거대한 드라마인 것입니다.
제4절: 바빌로니아 창세 신화 - 티아마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정수이자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중 하나인 『에누마 엘리쉬, Enuma Elish』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최고 신 마르둑 (Marduk)이 어떻게 우주의 질서를 확립했는지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신화는 우주적 거인의 희생을 통한 창조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원초적인 대양의 괴물과 영웅 신의 치열한 전쟁이라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풀어냅니다.
세상이 시작될 때에는, 오직 두 원초적인 신만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모든 민물의 근원인 달콤한 물의 신 아프수 (Apsu)와 모든 짠물의 근원인 거대한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 (Tiamat)였습니다. 이 둘의 결합을 통해 모든 신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라흐므 (Lahmu)와 라하무 (Lahamu)가 먼저 태어났고, 이어서 안샤르 (Anshar)와 키샤르( Kishar)가, 그리고 하늘의 신 아누 (Anu)가 탄생했습니다. 아누에게서는 지혜의 신 에아 (Ea)가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젊은 신들은 밤낮으로 끊임없이 소란을 피웠고, 그들의 활기찬 활동은 태초의 평화를 사랑했던 아프수에게 큰 방해가 되었습니다. 아프수는 이들을 없애버리고 다시 조용히 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에아는 아프수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그가 잠든 사이에 마법을 걸어 아프수와 그의 시종을 죽여버렸습니다.
남편 아프수의 죽음은 티아마트에게 엄청난 분노와 함께 복수심을 불태우게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마저 해를 입을 것을 염려하여, 거대한 바다뱀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무시무시한 괴물들 (뱀 인간, 사자 괴물, 전갈 인간 등)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연인이자 이 군대의 지휘관으로 킹구 (Kingu)를 내세워 새로운 신들에게 맞섰습니다. 에아를 비롯한 젊은 신들은 티아마트의 군대에 대항했지만, 그녀의 압도적인 힘과 괴물들의 사나움에 매번 패하여 돌아갔습니다.
절망에 빠진 신들 가운데, 에아의 아들이자 강력한 전사인 마르둑 (Marduk)이 나섰습니다. 그는 신들에게 자신을 최고 신으로 추대하고 우주의 모든 권능을 부여한다면, 티아마트를 처치하겠노라고 맹세했습니다. 신들은 마르둑의 용기와 지혜를 인정하여, 그를 자신들의 왕으로 선포하고 모든 권능을 그에게 위임했습니다.
마르둑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티아마트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는 바람을 잡는 그물, 일곱 개의 강력한 폭풍, 그리고 번개를 무기로 삼고, 지혜의 신답게 교활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거대한 입에 거센 바람을 불어넣어 그녀의 몸을 부풀어 오르게 한 뒤, 화살을 쏘아 그녀의 심장을 꿰뚫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뱀으로 변한 그녀의 거대한 몸뚱이를 두 동강으로 잘라, 하나의 반쪽으로는 하늘의 둥근 지붕을 만들고, 다른 반쪽으로는 단단한 땅을 만들었습니다.
계속해서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시신을 이용하여 우주의 나머지 부분들도 창조해냈습니다. 티아마트의 침 (唾液)으로는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 바람, 그리고 비를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거대한 두 눈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생명줄과도 같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흘러나오게 했고, 그녀의 가슴으로는 민물 샘이 솟아나는 산들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마르둑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의 몸을 해체하여, 질서정연하고 기능적인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그 후, 마르둑은 신들이 더 이상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쉬게 해주기 위해, 하위 신들의 노동을 대신할 존재, 즉 인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는 티아마트의 연인이자 그녀의 군대를 이끌었던 킹구를 죽인 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먼지와 섞어 반죽하여 최초의 인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신들을 섬기고 세상의 노동을 담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티아마트 신화는 단순한 창조 이야기를 넘어, 고대 바빌로니아 사회의 세계관을 깊이 반영합니다. 그것은 혼돈에 대한 질서의 승리를 강조하며, 우주가 평화로운 과정이 아닌, 폭력적인 투쟁과 희생을 통해 건설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신들의 몸에서 세상의 질료가 창조되는 신체화생 신화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하늘과 땅, 강과 산,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티아마트와 킹구라는 원초적 존재들의 몸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상은, 모든 만물이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이 신화는 또한 여신 숭배의 몰락과 남성 신의 권력 상승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혼돈과 원초적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거대한 어머니 여신 티아마트가 살해당하고, 질서와 문명을 상징하는 남성 신 마르둑이 그녀의 몸으로 세계를 재창조함으로써, 새로운 부계 중심의 사회 질서와 종교 체계가 확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티아마트의 희생은 새로운 바빌로니아 문명의 탄생을 위한 우주적인 대가였던 셈입니다.
제5절: 인도 신화 - 푸루샤
고대 인도의 가장 성스러운 문헌인 『리그 베다』에 수록된 「푸루샤 숙타, Purusha Sukta」는, 우리가 지금까지 탐험해 온 신체화생 신화의 가장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변주를 들려줍니다. 이곳의 태초의 존재 푸루샤 (Purusha)는 분노에 찬 거인이나 혼돈의 괴물이 아닙니다. 그는 천 개의 머리와 천 개의 눈, 그리고 천 개의 발을 가진, 우주 전체를 감싸 안으면서도 그 너머까지 뻗어 나가는, 형언할 수 없는 우주적 인간 (Cosmic Man) 그 자체입니다.
푸루샤는 이 모든 세계이며, 과거에 존재했고 미래에 존재하게 될 모든 것입니다. 그의 위대함은 우리가 보는 현상계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푸루샤의 사분의 일에 불과하며, 나머지 사분의 삼은 하늘에 있는 불멸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이처럼 푸루샤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실재이자, 이 세계가 발현된 근원적인 원재료입니다.
이 장엄한 신화의 중심에는, 신들이 푸루샤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태초의 야즈나 (yajna, 제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폭력적인 살해가 아니라, 우주적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신성하고도 자발적인 희생 의례입니다. 신들은 태초에 태어난 이 위대한 희생 제물 푸루샤를 성스러운 잔디 위에 눕히고, 정화의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바쳐지는 이 위대한 제사를 통해, 우주의 모든 만물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제사로부터 시와 노래가, 그리고 신성한 운율과 형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사를 통해 말이 탄생했고, 위아래로 두 줄의 이빨을 가진 모든 짐승들이 생겨났습니다. 암소와 염소, 그리고 양 또한 이 신성한 희생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푸루샤의 희생은 모든 생명과 문화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들이 푸루샤의 몸을 분할했을 때, 그로부터 인간 사회의 질서와 우주의 구조가 탄생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신성한 지혜와 말씀을 전하는 사제 계급, 즉 브라만 (Brahman)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두 팔에서는 사회를 보호하고 다스리는 전사 계급, 즉 크샤트리아 (Kshatriya)가 생겨났습니다. 그의 넓적다리에서는 생산과 상업을 담당하는 평민 계급, 즉 바이샤 (Vaisya)가 만들어졌고, 그의 두 발에서는 이 모든 계급을 떠받치고 섬기는 노동자 계급, 즉 수드라 (Sudra)가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푸루샤라는 하나의 신성한 몸에서 비롯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유기적인 부분들로 설명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본래의 의미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비록 역할은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신성한 근원에서 나왔음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푸루샤의 몸은 사회 질서뿐만 아니라 우주 그 자체를 창조했습니다. 그의 마음에서는 밤하늘을 비추는 달이 생겨났고, 그의 눈에서는 세상을 밝히는 태양이 태어났습니다. 신들의 왕 인드라 (Indra)와 불의 신 아그니 (Agni)는 그의 입에서 나왔으며, 바람은 그의 생명의 숨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배꼽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 공간이 생겨났고, 그의 머리로부터는 드높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그의 두 발은 우리가 딛고 선 땅이 되었고, 그의 귀에서는 동서남북 사방이 열렸습니다. 이와 같이 신들은 푸루샤의 희생을 통해, 혼돈스럽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푸루샤의 신화는 다른 신체화생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신성한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근원적 일체감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푸루샤의 희생은 단순한 해체를 넘어, ‘제의 (祭儀)’라는 질서정연한 행위를 통해 세계가 창조되었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이것은 고대 인도 사회에서 제사가 얼마나 중요한 우주적 의미를 지녔는지를 보여줍니다. 제사는 단순히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행위가 아니라, 태초의 창조 행위를 재현하고, 흩어진 우주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며, 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을 다시 하나로 묶는 가장 신성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푸루샤의 희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써 우주 만물이 되었고, 그 만물은 제사라는 의례를 통해 다시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푸루샤의 신화는, 모든 존재가 하나의 거대한 희생과 제의의 순환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정교하고도 철학적인 창조의 서사시라 하겠습니다.
제6절: 신체화생 신화들의 의미와 상징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해지는 여러 신체화생 신화들, 즉 태초의 우주적 거인이나 원초적 괴물이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희생한 뒤, 그 몸이 해체되면서 우주의 만물이 생겨났다는 창세 신화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의 반고, 북유럽의 이미르,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 그리고 인도의 푸루샤에 관한 신화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 신화들은 각각의 지역이 지닌 역사, 사회, 정치,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개별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물리치는 내용은, 호전적인 남신이 폭력적으로 승리하고 여신 숭배가 몰락하는 사회 변화의 반영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인도의 『리그 베다』에 담긴 푸루샤의 희생은 사회 계급, 즉 카스트 제도를 정당화하는 신화로 인식되기도 하며, 봉헌 제의의 상징적 설명을 제공한다고 평가됩니다. 이란의 '태초의 황소'와 가요마르드의 희생을 다루는 『분다히쉰』은 빛의 신 오르무즈드와 어둠의 신 아흐리만의 대립을 통해 이원론적 세계관의 기초를 보여주며, 훗날 그리스 영지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 같은 학자는 이러한 신체화생 신화들을 모두 뭉뚱그려,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인신공희(人身供犧)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신화들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각 신화가 지니는 개별적인 의미와 특성을 넘어, 이 모든 신체화생 신화들이 공유하는 우주의 본성에 관한 공통적인 의미와 상징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들만 보면, 이 신화들은 죽음, 살해, 시신의 해체 등 잔혹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 마치 정복을 위한 살해나 무자비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잔혹한 첫인상 뒤편에는, 신과 인간, 그리고 대자연의 근원적 일체감을 일깨워주는 장엄한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신화들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태초의 우주적 거인이나 원초적 괴물의 죽음과 신체의 해체는 단순한 사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거대한 대자연이 생명력을 지닌 살아있는 유기체로 탄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태초 존재의 시신이 질료가 되어 대자연의 각 개체들이 새롭게 생겨났다는 이야기는, 대자연의 근원적 일체감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자연의 각 개체들은 태초의 존재인 신의 신체를 질료로 삼고 있으며, 신의 신체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기에 이 우주의 근원은 원래 한 몸, 즉 하나의 신성한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에 속해있는 각각의 세포와도 같은 것이며, 우주 자체는 각각의 세포로 구성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태초의 거인이나 원초적 괴물이 단순히 자신의 신체를 대자연의 각 개체로 변화될 재료로 제공한 것만으로는 창세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주가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되려면 생명력의 전이가 불가피합니다. 즉, 대자연의 각 개체에 태초의 존재가 지녔던 신성한 생명력이 그대로 전이되어야 비로소 대자연은 살아있는 실재적 존재로 태어나게 되고 창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 태초의 존재가 폭력적 희생을 당하고, 신체를 해체당했으며, 그 결과로 자신의 신성한 생명력을 달, 별, 동물, 식물, 인간 등을 포함하는 대자연의 각 개체에 고스란히 제공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신화들로 창세를 상기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폭력적 희생을 당하는 태초의 존재는 '존재의 지속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존재의 생명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됩니다. 단지 외관의 형태만을 바꾸었을 뿐이며, 그가 지녔던 생명력은, 자신의 신체가 질료가 되어 탄생된, 대자연의 각 개체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어 유지되는 것입니다. 대자연의 각 개체들은 태초의 존재가 폭력적 희생을 통해 나누어준 생명력을 전이 받은 결과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에, 태초의 존재가 지녔던 생명력을 모두 함께 공유합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과 대자연의 각 개체들은 서로 분리되고 독립된 존재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생명을 함께 공유하는 전일적이고 신성한 유기체라는 사실이 이해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죽음을 그 자체로만 바라보고는 완전한 소멸로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죽음을 창조를 위한 희생으로 여겼습니다. 즉, 고대인들은, 대자연의 모든 생명은 다른 어떤 생명의 희생이 수반되지 않고는 탄생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대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든 죽으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죽어서 썩어지면 땅은 비옥해지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다시 싹트게 됩니다. 이때 죽음은 존재의 종말이 아니라 대자연으로 귀의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며, 희생되는 생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위해 창조적인 전이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죽음과 삶은 결국 생명력의 외형이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체화생을 통한 창세를 이야기하는 신화들 대부분에는 인간 역시 태초의 존재가 희생당하면서 그 몸의 일부분에서 생겨난다는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고의 신화에서는 인간의 직접적인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다른 중국 신화에 보면 여와 (女媧)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혼인시켜 세상에 퍼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고의 살이 흙이 되었고 그 흙으로 사람이 만들어졌기에, 인간은 근본적으로 반고와 같은 몸에서 나온 것이 됩니다.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마르둑이 신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킹구를 죽인 후 그의 피를 먼지와 섞어 인간을 창조합니다. 이 신화는 인간이 최고신의 신체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신인 킹구의 신체를 물려받았기에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역시 신적 존재의 신성을 물려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카렌 암스트롱 (Karen Armstrong)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신화들은 최초의 인간이 신의 실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비록 제한적이나마 신적인 본성을 공유한다. 인간과 신들 사이에 간극은 없다. 자연 세계와 인간 그리고 신 자신도 모두 같은 본성을 공유하고 동일한 신적 실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태초의 존재에게서 분화되어 나왔기 때문에 그와 생명력을 공유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존재의 사멸이나 생명력의 상실이 아니라, 단지 육체라는 형태만을 벗어 버린 채 대자연, 즉 태초의 존재에게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태초의 우주적 존재와 재통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태초의 존재가 자신을 희생하는 결과로 생명을 얻은 자연계의 모든 개체들은 죽음을 통해 근원으로 회귀하여 원초적 일체감을 회복하고, 그 일체감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받아 재생하는 순환 상태를 무한히 반복하게 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이란의 텍스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세상이 생겨날 때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뼈는 땅으로 돌아가고, 피는 물로 돌아가며, 머리카락은 식물로, 숨결은 불꽃으로 되돌아간다."
인도의 텍스트들은 죽음 이후의 여정에 관해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여정들은 죽음을 통해 실현되는 반환 행위, 즉 태초의 존재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었던 것의 반환의 여러 양상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너의 눈은 태양으로 가고, 목숨 (아트만 atman)은 바람으로 간다" (『리그베다』, X, 16, 3) 또는 "너의 숨결은 바람을 향해 가고, 너의 귀(청각)는 사방(동서남북)을 향해서, 너의 뼈는 땅으로" (『아이타레야 브라흐마나』, II 6, 13)라는 표현들이 그러합니다.
제7절: 신화에서 사상으로
앞서 살펴본 신체화생 신화들이 전하는 의미들은 세 가지 핵심적인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전 우주는 태초의 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각 개체로 독립된 듯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신성한 유기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죽음은 사멸이 아니라 생명력의 전이이자 외형의 변화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죽음은 우주 창조의 근원에게로 회귀하고 재통합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심오한 통찰들은 단순히 신화로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때로는 철학적 사상으로, 때로는 종교나 윤리 덕목으로 계승되어 인류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교의 윤회설, 피타고라스학파의 우주 창조설과 윤회 사상, 도교, 유대교의 사랑과 자비의 윤리 등 수많은 사상이나 종교들에서 위의 신체화생 신화들이 내포하고 있는 신성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체화생 신화들이 전하고 있는 의미들과 비슷한 사상과 종교 및 윤리를 몇 가지 예로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피타고라스 교단의 철학
피타고라스 교단은 우주 창조의 근원과 제일 원인을 미덕과 진리로 앙양된 자연력의 합일인 신성 (神性, Divinitatea)으로 보았습니다. 이 신성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탄생한 지고의 지성이며, 감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오직 맑은 정신으로만 수용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하나이자 에테르, 물질, 시간, 운명이라는 네 가지 구성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는 마치 사각형과 같은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영혼에 대한 깊은 고찰을 가졌는데, 모든 영혼은 하나의 ‘절대영혼 (혹은 보편영혼, Sufletul Universal)’에서 발산되어 세상으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절대영혼은 우주 창조의 근원인 신성이자, 천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모나드(Monad)로 정의됩니다. 절대영혼에서 신들의 영혼이, 다시 그 신들의 영혼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분화했고, 인간의 영혼은 이러한 발산의 맨 마지막 단계에 속합니다.
이 영혼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성의 완전체인 ‘절대영혼’에게로 되돌아가 지복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영혼들은 물질인 육신에게 한시적으로 생명을 제공했다가 육신이 죽으면 잠시 풀려났다가 새로운 육신으로 또 들어가기를 한없이 반복하는데, 이러한 여정을 윤회 (metempsychosis) 혹은 환생 (palingenesis)이라고 합니다.
피타고라스 교단의 사상에 의하면, 각 개인의 영혼은 우주 창조의 근원인 ‘절대영혼’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므로 ‘절대영혼’의 특성인 선재성(先在性), 신성, 그리고 영원성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의 영혼은 인간의 육신에 머물면서 인간의 정욕과 부정(不正)에 더럽혀졌으므로, 정화되기 전에는 절대영혼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윤회의 고통을 반복하면서 완전히 정화되어야 비로소 절대영혼에 회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철학적 설명은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전 우주가 하나의 신성에서 분화되었다는 것이고 인간 삶의 목표는 분화되기 이전의 절대 신성으로 온전히 회귀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신체화생 창세신화들과 거의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의 윤회설
불교의 윤회설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집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Moksha)은 윤회의 사슬을 끊고 태초의 존재와 완전한 재통합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렇다면 열반 (Nirvana)은 '창조를 위해 분화되기 이전의 태초의 일원성'으로 재생되어 완전한 신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 (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 역시 모든 존재의 근원적 일체감을 강조합니다.
도교 및 중국의 기(氣) 사상
기를 토대로 한 중국의 명상이나 도가(道家)의 사상도 우주 만물이 같은 생명을 공유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신체화생 신화들과 똑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상에서 기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 식물이 죽고 바위가 부서지는 것처럼 기는 흩어집니다. 하지만 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가 다시 모여서 또 다른 형태를 띠게 됩니다.
따라서 우주 만물은 각각의 강도는 다 다르지만 똑같은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반고 신화에서 거인의 몸이 해체되어 만물이 되었지만, 그의 생명력은 만물 속에 전이되어 유지된다는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유대교 및 기독교의 사랑과 자비의 윤리
신체화생 신화들, 특히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쉬』를 배척했을 것 같은 유일신교인 유대교의 경전 토라에서도 우주 만물이 모두 하나의 생명을 공유하는 유기체이기에 똑같이 소중하다는 윤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토라의 가르침을 계승한 예수가 가장 강조했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냥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네 몸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경우는 만물이 하나의 몸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이웃 (타인)이 나와는 다른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사실 근원적으로는 일체인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라야만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동방정교의 지혜를 서방에 전파했던 아일랜드 신학자인 에리우게나 (Johannes Scotus Eriugena)는 "신은 어떤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의미의 존재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이기도 했다. 신이 영향을 미치는 모든 피조물 하나하나가 신의 현현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신의 현현이기에 '신은 모든 것'이라는 에리우게나의 말 역시 앞서 살펴본 신체화생 신화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바, 즉 전 우주가 태초의 신성한 존재 (태초의 우주적 거인 혹은 대양 괴물)의 생명력을 부여받았기에, 신성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세상의 각 종교들은 교리나 형태 또는 현상들에서 다양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모든 종교의 합일점은 태초의 신성함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세상 속에서 속화되어 버린 우리 인간에게 태초의 신성, 즉 태초의 '우주적 거인'이 지녔던 신성함에 다시 동참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세기의 수사학자 락탄티우스 (Lactantius)는 종교 (religion)의 어원을 re + ligare로 이해했습니다. 're'는 '다시'라는 뜻이고 'ligare'는 '묶다', '관계시키다', '연결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즉 종교는 인간을 신성한 존재와 '다시 연결시켜주는 무엇'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re (다시)'라는 접두사입니다. 원래 우리가 신성한 존재와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고 이제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종교 (religion)라는 단어의 어원에 're (다시)'라는 접두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re (다시)'라는 접두사를 쓴 것은 본래부터 인간들은 신성한 존재와 연결 관계에 있었으나 일시적으로 그 관계가 끊어져 버렸기에, 그 관계를 '다시 연결'시켜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내포합니다.
신체화생의 신화들을 이야기했을 고대인들의 모든 일상은 바로 신성한 존재 또는 그 존재에게서 생명력을 얻은 모든 만물과의 일체적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 인간 (Homo Religious)이었던 그들은 매 순간 신화를 되새기며 자신들을 신성한 존재와 '다시 연결'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입니다.
각 사상이나 종교들이 위에서 소개한 신체화생 신화들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인류가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폭력이 극심해지는 역사적 위기의 순간마다 종교적 인간이었던 고대인들의 지혜, 즉 우주가 신성한 하나의 유기체라는 생각을 회복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방대한 저서 『축의 시대, Axial Age』 전체에 걸쳐,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는 사랑과 자비의 윤리, 즉 황금률이 기축시대 (Axial Age) 현자들 (붓다,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자들, 소크라테스, 에우리피데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예레미아 등)의 공통된 깨달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체화생 신화들, 특히 마르둑과 티아마트의 싸움, 이미르의 살해 등과 같은 창세 신화들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보여주었습니다. "혼돈 (Chaos)에서 질서 (Cosmos)를 끄집어내려고 신이 괴물과 싸운다는 이야기는 생명의 핵심에 자리 잡은 근본적으로 '아곤(agon: 경쟁)'적인 투쟁을 드러냈다. 생명은 늘 다른 존재의 죽음이나 파멸에 의존했다. 그런데 최초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들의 진정한 창조성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내줄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도 신화 속의 푸루샤에 관해서는 "세상이 태어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놓음으로써 자신을 비우는 사랑의 원리를 소중하게 실천한 '최초의 인간'"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푸루샤 신화는 "우리가 이기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장 창조적일 수 있다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카렌 암스트롱의 말은, 만물의 성스러운 일체감을 느끼며 신체화생 신화를 상상해 냈던 고대인의 종교적 태도가 기축시대를 기점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종교와 윤리에서 다시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8절: 존재의 근원적 일체감과 순환의 지혜
우리는 이 장을 통해 고대인들이 우주의 기원과 존재의 본질에 대해 품었던 심오한 통찰을 신체화생 신화 속에서 탐험했습니다. 중국의 반고, 북유럽의 이미르, 바빌로니아의 티아마트, 그리고 인도의 푸루샤에 이르기까지, 이름과 서사는 달랐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강력하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초의 우주적 존재의 희생과 해체를 통해 이 세계가 창조되었으며, 모든 만물은 그 신성한 존재의 생명력을 공유하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화들은 우리에게 세 가지 핵심적인 지혜를 전해줍니다.
첫째, 전 우주의 근원적 일체감 (Fundamental Unity of Existence)입니다. 신체화생 신화들은 하늘과 땅, 산과 강, 바람과 구름,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이 결코 분리되거나 독립된 존재가 아님을 역설합니다. 이 모든 것은 태초 거인의 몸이라는 동일한 질료에서 분화되었고, 그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졌기에, 본질적으로 한 몸과 같습니다. 우리가 들이쉬는 공기,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딛고 선 땅은 모두 태초의 존재가 자신을 내어준 흔적이며, 살아있는 그의 몸의 일부입니다. 이처럼 신화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생명 유기체와 깊이 연결된 부분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겸허함과 경외감을 일깨워줍니다.
둘째,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창조적 희생의 가치입니다. 현대인에게 죽음은 종종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자 절망적인 끝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체화생 신화 속에서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질서의 탄생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자 창조적인 전이입니다. 태초의 거인들이 죽고 해체되었기에 비로소 우주는 혼돈에서 벗어나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몸이 썩어지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싹트고 자라났습니다. 이는 대자연의 순환 법칙, 즉 하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한 양분이 되는 자연의 섭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명력이 외형을 바꾸어 영원히 순환하고 확장되는 변형의 과정인 것입니다.
셋째,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근원으로 회귀하는 지혜입니다. 신체화생 신화들은 인간의 죽음 또한 육체의 소멸이 아니라, 태초의 존재에게서 받은 생명력을 다시 그 근원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고, 숨결은 바람이 되며, 피는 물이 되어, 우주를 이루는 근원적인 요소들로 되돌아갑니다. 이는 곧 태초의 신성한 존재와의 재통합을 의미하며, 죽음을 통해 개별적인 존재는 우주적 일체감을 회복하고 영원한 순환 속에 편입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의 지혜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삶과 죽음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 리듬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러한 신화적 통찰은 단순히 고대인들의 세계관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지혜가 불교의 윤회와 해탈, 피타고라스학파의 절대영혼 사상, 도교의 기 (氣) 철학, 그리고 유대-기독교의 사랑과 자비의 윤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주요 사상과 종교적 가르침 속에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고 발전해왔음을 확인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황금률은 바로 이 '모든 존재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신체화생 신화의 일체감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의 말처럼, 혼돈에서 질서를 끄집어내는 생명의 핵심에는 '경쟁'적인 투쟁과 '희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창조성은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태초의 거인 푸루샤가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놓아 세상을 창조했듯이, 우리가 이기심을 버리고 스스로를 내어줄 때 비로소 가장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체화생 신화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이 신화들을 통해 우주는 신성한 유기체이며,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창조적 순환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만물과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분열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바로 이런 시대에 신체화생 신화의 지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지혜는 우리가 다시 '종교적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주면서, 만물과의 일체감을 회복하도록 도와줍니다. 나아가 희생과 사랑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수 있게 하고,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영원한 의미를 찾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