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명계를 다녀온 영웅들- 카타바시스

by 이호창

제9장: 명계를 다녀온 영웅들 - 카타바시스(Katabasis) 서사


제1절: 오르페우스(Orpheus)의 리라, 사랑으로 명계의 문을 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죽음 너머에 펼쳐진 수많은 세계의 지도를 그려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영혼이 건너던 위험한 강부터, 플라톤의 철학자가 마주했던 윤회의 수레바퀴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언제나 저 너머의 풍경을 상상하고 해석하며 죽음의 공포를 길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그 지도를 손에 들고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산 자의 몸으로 경계를 넘어 어둠의 심연으로 내려갔던 특별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살아있는 영웅이 의식적으로 명계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카타바시스 (Katabasis)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필멸성을 시험하고, 죽음의 법칙과 정면으로 대면하여 그곳에서 특별한 지혜나 구원의 열쇠를 가지고 돌아오는, 가장 숭고하고도 위험한 통과 의례였습니다.


이 위대한 여정을 떠났던 첫 번째 영웅의 이름은 오르페우스 (Orpheus)입니다. 그는 트라키아의 왕이자 아폴론의 아들이었고,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피를 이어받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리라 (lyre)의 현을 스치고, 그의 목에서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숨을 죽였습니다. 거친 강물은 흐름을 멈추었고, 사나운 맹수들은 그의 발치에 온순하게 엎드렸으며, 단단한 바위와 나무들마저 감동하여 그를 따라 움직였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를 관통하는 조화 (harmony)의 원리 그 자체이자, 혼돈을 질서로 바꾸고 무생물에게마저 영혼을 불어넣는 신적인 창조의 힘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었던 그의 삶에, 그 어떤 조화로도 막을 수 없는 불협화음이 찾아옵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 아름다운 님프 에우리디케 (Eurydice)가 들판에서 독사에게 발을 물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 죽음은 너무나 허무하고 부조리하여, 오르페우스의 세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그의 리라는 더 이상 기쁨을 노래하지 못했고, 그의 모든 음악은 이제 슬픔과 비탄의 눈물이 되어 흘러나올 뿐이었습니다.


그의 슬픔은 너무나도 깊어, 마침내 그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가장 대담한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죽음의 법칙을 거슬러,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되찾아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영웅들처럼 칼이나 갑옷을 챙기는 대신, 오직 자신의 리라 하나만을 손에 든 채, 하데스 (Hades)의 왕국으로 향하는 어두운 동굴로 들어섰습니다.


명계의 문턱에서 그를 가로막은 첫 번째 존재는 늙은 뱃사공 카론 (Charon)이었습니다. 그는 산 자를 자신의 배에 태우는 법이 없었으나,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자신의 슬픔을 노래하기 시작하자, 수천 년간 굳어있던 그의 험상궂은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뱃삯을 받는 것조차 잊은 채, 넋을 잃고 오르페우스를 강 저편으로 건네주었습니다.


강을 건너자,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흉포한 개 케르베로스 (Cerberus)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지만, 그의 노래 앞에서는 맹렬한 분노마저도 힘을 잃고, 마치 어미의 자장가를 듣는 강아지처럼 조용히 잠이 들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계속해서 명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의 노래는 너무나도 애절하여, 영원한 형벌에 시달리던 죄수들의 고통마저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목전의 물과 음식을 영원히 탐해야 했던 탄탈로스 (Tantalus)는 자신의 갈증을 잊었고,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던 시시포스 (Sisyphus)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노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음악은 죽음의 세계가 세운 모든 경계와 법칙을 무력화시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일한 예외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명계의 왕 하데스와 여왕 페르세포네 (Persephone)의 옥좌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인 리라를 연주하며, 자신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에우리디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절망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강요나 협박이 아니었으며, 오직 순수한 사랑이 담긴 애절한 간청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슬퍼서, 얼음처럼 차가웠던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의 뺨에 눈물이 흐르게 했고, 단 한 번도 그 무엇에도 동요한 적이 없었던 죽음의 왕 하데스의 마음마저 움직였습니다.


결국 하데스는 죽음의 법칙을 단 한 번 깨뜨리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에우리디케의 영혼을 오르페우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대 어겨서는 안 될 단 하나의, 그러나 치명적인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지상의 빛을 보기 전까지, 결코 뒤를 돌아보아 아내의 모습을 확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명계로 다시 끌려오게 될 것이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감사하며 앞장서서 어둠의 길을 오르기 시작했고, 에우리디케의 희미한 그림자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길은 가파르고 험했으며,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과 섬뜩한 침묵만이 감돌았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바로 자기 뒤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희망과 함께, 끔찍한 의심의 그림자가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정말로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하데스의 잔인한 장난은 아니었을까? 그녀가 힘들어 주저앉았거나,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의 불안은 커져만 갔고, 아내를 향한 사랑은 그녀를 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갈망으로 변해갔습니다. 마침내 저 멀리, 지상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단 몇 걸음만 더 가면 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랑과 불안에 완전히 사로잡힌 오르페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희미한 안개와도 같은 에우리디케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안녕히..."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 채,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시 어둠의 심연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절규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차가운 허공뿐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명계의 강으로 달려갔지만, 뱃사공 카론은 더 이상 그를 태워주지 않았습니다. 사랑으로 열었던 죽음의 문은, 한순간의 의심으로 인해 그의 눈앞에서 영원히 닫혀버린 것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여정은 표면적으로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인류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을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는 비록 죽음의 법칙을 완전히 뒤엎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사랑과 예술이 그 절대적인 법칙에 감히 도전하고, 그 철옹성 같던 문을 잠시나마 열어젖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의 실패는 인간이 지닌 믿음의 나약함과 사랑의 조급함이 빚어낸 비극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심연까지 내려가게 만드는 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가입니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소리는 비록 명계의 침묵 속에 잦아들었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절망 앞에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사랑과 예술임을 영원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2절: 헤라클레스(Heracles)의 힘, 죽음의 파수꾼을 굴복시키다


오르페우스의 리라가 자아내는 애절한 선율이 사랑하는 이를 향한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노래했다면, 이제 우리가 마주할 영웅 헤라클레스 (Heracles)의 손에는 육중한 올리브나무 몽둥이가 들려있습니다. 그의 여정은 설득이나 간청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들의 시험에 맞서 인간의 힘과 의지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는, 장엄하고도 폭풍 같은 투쟁의 길이었습니다. 그의 명계 하강, 즉 카타바시스는 개인적인 사랑이나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열두 개의 위대한 과업 (athloi)을 완수하기 위한, 영웅적 운명의 마지막 관문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열두 번째 과업은, 그를 시기하던 왕 에우리스테우스가 꾸며낸 가장 악의적이고도 불가능해 보이는 시험이었습니다. 바로 명계의 입구를 지키는 무시무시한 파수견, 케르베로스 (Cerberus)를 산 채로 지상에 끌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음 그 자체의 파수꾼을 사로잡으라는 이 명령은, 사실상 헤라클레스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보내려는 비겁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이 불가능한 운명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의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명계 하강은 오르페우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살아있는 영웅의 압도적인 생명력 앞에, 명계의 희미한 망령들은 공포에 질려 길을 비켜주었고,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어둠의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슬픔의 강 스틱스 (Styx)에서, 뱃사공 카론 (Charon)은 산 자를 태울 수 없다며 그의 길을 막아섰지만, 헤라클레스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그의 험상궂은 얼굴을 노려보며 위협했습니다. 영웅의 신적인 위엄에 굴복한 카론은, 두려움에 떨며 묵묵히 그를 강 저편으로 건네주었습니다. 그의 여정은 이처럼 처음부터 타협이 아닌, 굴복의 방식으로 길을 열었습니다.


명계의 가장 깊은 곳에 당도한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단지 자신의 과업만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려다 실패하여 영원히 의자에 묶이는 형벌을 받고 있던 친구 테세우스 (Theseus)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초인적인 힘으로 테세우스를 의자에서 떼어내어 구출해냈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힘만 센 영웅이 아니라,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의리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힘은 죽음의 법칙마저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명계의 왕 하데스 (Hades)의 옥좌 앞에 섰습니다. 그는 신에 대한 예를 갖추어, 케르베로스를 데려가게 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그의 당당함에 흥미를 느낀 하데스는 한 가지 조건을 걸고 그의 요청을 허락합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맨손으로 케르베로스를 제압할 수 있다면 데려가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흉포한 파수견을 제압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확신한 하데스의 오만한 제안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마침내 지옥의 문 앞에서, 죽음의 공포가 형상화된 듯한 끔찍한 괴물과 마주 섰습니다. 케르베로스는 으르렁거리는 세 개의 머리와, 등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뱀들, 그리고 살아있는 독사로 이루어진 꼬리를 가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얻은, 그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사자 가죽을 방패 삼아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것은 두 개의 거대한 힘이 맞부딪히는 원초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가 뿜어내는 독기 어린 숨결과 날카로운 이빨이 그를 공격했지만, 헤라클레스는 강철 같은 팔로 세 개의 목을 한꺼번에 휘감아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케르베로스가 발버둥 칠수록 그의 팔은 더욱 강하게 조여왔고, 마침내 죽음의 파수견은 고통 속에 신음하며 영웅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죽인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굴복’시킨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그 자체를 힘으로 제압하고 길들였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으르렁거리는 케르베로스를 쇠사슬로 묶어 지상으로 끌고 나오는 광경은, 모든 존재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태양 빛을 처음 본 케르베로스가 겁에 질려 토해낸 독 침에서는, 훗날 맹독 식물인 투구꽃 (aconite)이 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를 명계로 보냈던 에우리스테우스 왕은, 살아서 돌아온 영웅과 그가 끌고 온 끔찍한 괴물의 모습에 혼비백산하여 거대한 항아리 속에 숨어버렸습니다. 불가능한 과업을 내린 왕의 비겁한 모습은, 죽음의 공포마저도 정면으로 돌파한 영웅의 위대함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과업을 증명한 뒤, 약속대로 케르베로스를 다시 하데스의 왕국으로 정중히 돌려보냈습니다. 그는 죽음의 질서를 영원히 파괴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르페우스의 여정이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다면, 헤라클레스의 카타바시스는 압도적인 성공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죽음을 설득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그것을 극복해야 할 하나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자신의 모든 힘과 의지를 다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웅적인 태도입니다. 헤라클레스의 위대함은, 인간 (혹은 반신)의 정신과 육체가 그 정점에 달했을 때, 죽음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공포의 현신과 맞붙어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장엄한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몽둥이는, 사랑의 리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의지가 죽음의 침묵마저도 굴복시킬 수 있음을 우렁차게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제3절: 오디세우스(Odysseus)의 네키이아(Nekyia),

미래를 위한 지혜



오르페우스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명계의 문을 넘었다면, 트로이 전쟁의 가장 지략이 뛰어난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의 여정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띱니다. 그의 여정은 죽음의 법칙에 도전하거나 그것을 굴복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래의 길을 묻고자 망자들의 지혜를 빌리는, 지극히 실용적이면서도 심오한 순례였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그의 명계 탐험은, 지하 세계로 직접 내려가는 카타바시스와는 조금 다른, 죽은 자들을 지상으로 불러내어 대화하는 의식, 즉 네키이아 (Nekyia)라고 불립니다.


십 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향하던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 또다시 십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지중해를 표류하게 됩니다. 수많은 동료를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그는, 마녀 키르케 (Circe)의 섬에 머물게 됩니다. 키르케는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바로 세상의 서쪽 끝, 오케아노스 강이 흐르는 곳으로 가서, 죽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Tiresias)의 망령을 불러내어 그의 조언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자가 죽은 자에게 미래의 길을 묻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여정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가 일러준 대로, 해가 지는 서쪽 땅 끝에 도착하여 칼로 사방 한 규빗의 구덩이를 팝니다. 그리고 그 안에 망자들을 위한 제주 (祭酒), 즉 꿀을 섞은 우유, 감미로운 포도주, 그리고 맑은 물을 차례로 붓습니다. 그 위에는 흰 보릿가루를 뿌리고, 테이레시아스를 위해 특별히 검은 양 한 마리를, 다른 망자들을 위해 또 다른 양들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마침내 검은 암양과 숫양의 목을 베어 그 피를 구덩이에 쏟아붓자, 피 냄새를 맡은 수많은 망령들이 어둠 속에서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갓 죽은 젊은이, 늙은이, 슬픔에 잠긴 여인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창에 찔려 죽은 병사들의 그림자가 소리 없이 아우성치며 피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창백한 공포에 휩싸였지만, 칼을 빼어 들고 테이레시아스가 먼저 피를 마시기 전까지는 그 어떤 망령도 구덩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그가 마주한 첫 번째 망령은 비극적이게도, 얼마 전 키르케의 섬에서 술에 취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자신의 동료 엘페노르 (Elpenor)였습니다. 동료들이 그의 죽음을 미처 알지 못하고 떠나왔기에, 그의 시신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엘페노르는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을 잊지 말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고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 만남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제대로 된 장례 의식이, 망자의 영혼이 평안을 찾는 데 얼마나 절대적인 조건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침내 황금 지팡이를 든 위대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망령이 나타났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가 구덩이의 검은 피를 마시게 허락했고, 피를 마신 예언자는 비로소 미래를 보는 힘을 되찾아 그에게 신탁을 내립니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앞으로 겪게 될 험난한 여정, 특히 태양신 헬리오스의 소 떼를 절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를 전합니다. 또한, 그가 마침내 고향에 돌아가 아내의 구혼자들을 모두 처치한 뒤에도,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노를 어깨에 메고 다시 한번 멀고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마지막 과업까지 알려줍니다. 이처럼 네키이아의 핵심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지혜를 얻는 데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조언을 들은 뒤, 오디세우스는 또 다른 슬픈 망령과 마주합니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 (Anticleia)였습니다. 그는 이타카를 떠날 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어머니가 망령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집니다. 그는 어머니에게도 피를 마시게 한 뒤, 그녀가 어쩌다 죽음을 맞이했는지, 고향의 아버지와 아들은 무사한지를 묻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기다리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에 사무쳐 죽음을 맞이했다고 답하며, 아내 페넬로페가 여전히 정절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오디세우스는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세 번이나 어머니를 힘껏 껴안으려 하지만, 그의 팔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한낱 꿈이요 그림자뿐이었습니다. 이 애처로운 장면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존재론적 간극이 놓여 있음을, 그 어떤 사랑으로도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차가운 현실을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서 그는 트로이 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위대한 영웅들의 망령들과 차례로 대화를 나눕니다. 아가멤논 (Agamemnon)은 아내에게 배신당해 비참하게 살해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내를 너무 믿지 말라는 씁쓸한 조언을 건넵니다. 그리고 마침내, 트로이 최고의 영웅이었던 아킬레우스 (Achilles)의 망령과 마주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를 위로하며, 살아생전에도 위대한 영웅이었으니 죽어서도 망자들의 왕으로 군림하며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에게, 서양 정신사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비관적 세계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저 유명한 대답을 돌려줍니다.


“죽음에 대해 나를 위로하려 들지 마시오, 영광스러운 오디세우스여. 나는 차라리 지상에서 가난한 농부의 품팔이꾼이 될지언정, 이 모든 죽은 자들의 왕이 되기는 원치 않소.”


이 한마디는, 그리스인들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얼마나 희미하고 무기력하며, 감각 없는 그림자의 왕국이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삶은, 고통스럽더라도 햇빛 아래에서 느끼고, 사랑하고, 투쟁하는 이 지상의 삶뿐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네키이아는 죽음의 세계를 정복하는 영웅적인 과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과거의 망령들과 대면하여 그들의 지혜와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미래의 삶을 향한 길을 찾아 나서는 성숙한 인간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어둠 속으로 가장 깊이 내려감으로써, 비로소 빛의 세계인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의 여정은, 진정한 앎이란 때로는 죽음의 침묵과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서늘하고도 심오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제4절: 단테(Dante)의 순례,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안내


오르페우스가 개인적인 사랑을 위해, 헤라클레스가 영웅적인 과업을 위해,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실질적인 지혜를 위해 명계의 문턱을 넘었다면,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의 여정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전혀 다른 차원의 목적을 향합니다. 그의 여정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길 잃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불후의 명작 『신곡, La Divina Commedia』은, 한 개인의 영혼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천상의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정화되고 성장하여 마침내 신과 합일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엄한 영적 순례기이자, 기독교적 세계관이 그려낸 가장 위대하고도 정교한 영혼의 지도입니다.


이야기는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리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었네”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됩니다. 인생의 절정에서 길을 잃고 죄의 어두운 숲을 헤매던 단테의 앞에, 한 영혼이 나타나 그의 안내자가 되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는 바로 단테가 가장 존경했던 고대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 (Vergilius, 베르길리우스)였습니다. 이 안내자의 선택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이성 (Reason)’과 ‘철학적 지혜’, 그리고 ‘예술적 덕 (德)’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안내는, 영혼의 구원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인간의 이성을 통해 죄의 본질을 이해하고, 도덕적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따라, 단테는 먼저 지옥 (Inferno)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단테의 지옥은 땅속 깊이 파고드는 거대한 원뿔 모양의 구렁으로, 아홉 개의 원 (Circle)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원에는 탐욕, 분노, 폭력, 기만 등 각기 다른 죄를 지은 영혼들이, 자신이 지은 죄의 본질과 정확히 상응하는 형벌, 즉 ‘콘트라파소 (contrapasso)’를 영원히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아생전 어두운 정욕에 휩쓸렸던 영혼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쉴 새 없는 폭풍에 휩쓸리고, 아첨으로 남을 기만했던 자들은 자신의 오물 속에 잠겨 고통받습니다. 이 끔찍한 여정의 목적은 단순한 공포 체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테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가, 죄악이 영혼에 얼마나 끔찍한 상처를 남기고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직접 목격함으로써, 죄를 멀리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철저히 교육적인 과정입니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 얼어붙은 코키투스 (Cocytus) 호수 중심에서 신을 배반한 가장 큰 죄인, 사탄의 모습을 통과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구의 반대편으로 나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곳에는 지옥과는 정반대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거대한 산, 즉 연옥 (Purgatorio)이 있었습니다. 연옥은 절망의 공간이 아닌, 희망과 정화의 공간입니다. 이곳에 도착한 영혼들은 비록 죄의 흔적을 지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천국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 속에서 기꺼이 정화의 고통을 감내합니다. 그들은 교만, 시기, 분노 등 일곱 가지 대죄 (大罪)를 상징하는 일곱 개의 층계를 차례로 오르며, 각 단계마다 죄의 성향을 씻어내는 고행을 합니다. 이 정화의 과정 속에서도 베르길리우스는 여전히 그의 안내자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노력이, 영혼을 정화하고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연옥의 가장 높은 곳, 지상낙원 (Earthly Paradise)에 도착했을 때, 단테는 가장 슬픈 이별의 순간과 마주합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더 이상 그를 안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기독교의 세례를 받지 못한 이교도였기에, 신의 은총이 지배하는 천상의 세계로는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적인 한계를 상징하는, 장엄하고도 애처로운 장면입니다. 바로 그 순간, 눈부신 빛과 함께 단테의 새로운 안내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바로 단테가 평생에 걸쳐 사랑하고 찬미했던 여인, 베아트리체 (Beatrice)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베아트리체는 더 이상 지상의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신의 사랑 (Divine Love)’과 ‘은총 (Grace)’, 그리고 ‘계시된 진리 (Revealed Truth)’의 화신으로 변모한, 신성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등장은, 인간의 모든 노력과 이성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오직 신의 자비로운 사랑과 은총뿐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단테는 마침내 천국 (Paradiso)으로의 마지막 비상 (飛上)을 시작합니다. 단테의 천국은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달과 수성, 금성 등을 거쳐 가장 높은 하늘 엠피레오 (Empyrean)에 이르는, 빛과 사랑, 그리고 지혜가 점점 더 충만해지는 의식의 상승 과정입니다. 그는 각 천상의 단계에서 성인들과 현자들을 만나 신학적인 진리와 우주의 신비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 그의 이해력은 점차 확장됩니다. 베아트리체의 미소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눈부시게 빛나며, 이는 신의 사랑에 가까워질수록 영혼이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단테의 순례는, 고대 영웅들의 모든 카타바시스를 종합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신앙 안에서 완성시킨 가장 위대한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여정에는 베아트리체를 향한 오르페우스적인 사랑이 있었고, 지옥의 공포를 견뎌낸 헤라클레스적인 의지가 있었으며, 우주의 질서를 배우고자 했던 오디세우스적인 지혜의 탐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이 모든 인간적인 덕목들이, 결국 베아트리체로 상징되는 신의 은총과 사랑의 빛 안에서 인도될 때에만, 비로소 영혼의 구원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죄의 어둠 속으로 가장 깊이 내려감으로써 그 본질을 이해했고, 정화의 산을 오르며 자신의 의지를 바로 세웠으며, 마침내 사랑의 빛에 이끌려 신성과의 합일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했습니다. 그의 순례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모든 영혼을 위한, 빛으로 향하는 영원한 지도가 되었습니다.










제5절: 영웅의 귀환, 죽음의 지식을 가지고 돌아온 자의 사명


명계로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고독했지만, 그곳에서 돌아오는 영웅의 등 뒤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는 비록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그의 노래는 더욱 깊어졌고, 헤라클레스는 불가능한 과업을 완수하고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했으며,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갈 지혜를, 단테는 영혼 구원의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카타바시스의 진정한 완성은 어둠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가지고, 어떤 존재가 되어 지상의 빛 속으로 다시 돌아왔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영웅은, 결코 떠나기 이전의 그와 같은 존재일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존재의 소멸 가능성을 직접 목격한 자입니다. 그의 눈에는 망자들의 희미한 그림자가, 그의 귀에는 저편 세상의 서늘한 침묵이 영원한 잔향처럼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험은, 영웅이 겪는 가장 심오한 통과 의례이자, 그를 평범한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영적인 변성 (變性)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둠의 세계에서 무엇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신비한 보물이나 잃어버린 사랑이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돌아오는 가장 위대한 전리품은 바로 ‘죽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여기서의 지식이란, 사후 세계의 구조나 망자들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의 나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유한성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망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제대로 된 장례 의식이 영혼의 평안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고, 아킬레우스의 절규를 통해 지상의 삶이 그 어떤 명예보다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단테는 지옥의 끔찍한 형벌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정의의 법칙이 얼마나 서늘하게 작동하는지를 체득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세계라는 거울을 통해,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깊은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의 지식을 가지고 돌아온 자에게는 새로운 사명 (mission)이 주어집니다. 그의 여정은 더 이상 개인적인 구원이나 영광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경험을 공동체와 나누고,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에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게 됩니다.


첫째로, 그는 두 세계 사이의 살아있는 증인이 됩니다. 그의 귀환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곳 또한 나름의 법칙과 질서 아래 움직이고 있음을 공동체에 증명해 보입니다. 이는 죽음이라는 불가해한 혼돈 앞에서 불안에 떠는 사람들에게, 죽음이 결코 무의미한 소멸이 아니라는 깊은 위안과 확신을 줍니다.


둘째로, 그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안내자이자 스승이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테이레시아스에게서 얻은 신탁으로 험난한 바닷길을 헤쳐 나갔듯이, 돌아온 영웅은 자신이 얻은 지혜로 공동체가 겪는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단테가 그려낸 『신곡』의 지도는, 이후 수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고 구원의 길을 찾는 데 등불이 되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조자이자 입법자가 됩니다. 로마의 건국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명계에서 아버지의 예언을 듣고 로마 제국의 위대한 미래를 확신했듯이, 죽음의 세계에서 우주적인 질서의 근원을 목격한 영웅은, 그 질서를 지상에 구현할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습니다. 그의 말은 곧 법이 되고, 그의 행적은 새로운 시대의 신화가 됩니다.


결국 모든 카타바시스 서사의 종착역은, 돌아온 영웅이 죽음의 지식을 삶의 지혜로 통합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는 공동체에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유한한 시간을 더욱 충만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칩니다. 어둠 속으로 가장 깊이 내려갔던 그의 고독한 여정은, 마침내 살아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더 밝은 빛이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웅의 귀환은, 한 개인의 위험한 순례가 어떻게 공동체 전체를 위한 구원의 선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도 희망적인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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