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장: 신지학: 동서양 지혜의 종합

by 이호창

제2-21장: 신지학: 동서양 지혜의 종합


2-21.1. 블라바츠키, 서구에 지혜를 전하다



19세기 후반의 서구 세계는 거대한 지적, 영적 격변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성서의 창조 신화를 뿌리부터 뒤흔들었고, 산업혁명이 낳은 눈부신 물질문명은 인간을 전례 없는 풍요 속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그 영혼은 깊은 갈증과 공허함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과학적 유물론의 차가운 빛 아래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권위는 빛이 바래고 있었으며, 수많은 지식인들은 맹목적인 신앙과 냉소적인 무신론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방황했습니다. 바로 이 영적인 공백의 시대에,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폭풍과도 같은 삶을 살았던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하여, 서구 정신사의 물줄기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 (Helena Petrovna Blavatsky, 1831-1891)였으며, 그녀가 점화한 신지학 (Theosophy)이라는 불꽃은 잠들어 있던 서구의 비의 (祕儀) 전통을 일깨우고, 오랫동안 잊혀졌던 고대의 지혜, 특히 인도를 비롯한 동양의 심오한 영적 가르침을 서구 세계에 소개하는 거대한 지적 운동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러시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블라바츠키는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젊은 시절부터 전 세계를 떠도는 파란만장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여정은 이집트의 신비, 티벳의 고원, 그리고 인도의 성스러운 도시들을 넘나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지식과 영적인 스승들을 만났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히말라야에 거주하며 인류의 영적인 진화를 이끌고 있는 위대한 영적 스승들, 즉 ‘마하트마 (Mahatma)’ 혹은 ‘지혜의 대사 (Masters of Wisdom)’들과 직접적인 연결을 맺었으며, 자신이 바로 그들의 지혜를 혼란에 빠진 서구 세계에 전하기 위해 선택된 메신저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인격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초능력, 그리고 방대한 동서양의 지식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모았고, 동시에 그녀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격렬한 비판을 낳으며 평생 동안 논쟁의 중심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1875년, 블라바츠키는 헨리 스틸 올코트 (Henry Steel Olcott) 대령, 윌리엄 콴 저지 (William Quan Judge) 등과 함께 뉴욕에서 신지학 협회 (Theosophical Society)를 창설합니다. ‘신지학’은 ‘신성한 지혜 (Divine Wisdom)’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그 이름 자체가 이 운동의 목표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신지학 협회는 세 가지의 원대한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첫째, 인종, 신조, 성별, 계급, 피부색의 차별 없이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의 핵을 형성한다. 둘째, 종교, 철학, 과학의 비교 연구를 장려한다. 셋째, 아직 설명되지 않은 자연의 법칙과 인간에게 잠재된 힘을 탐구한다. 이 목표들은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인종적, 종교적 편견과 과학적 유물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신지학은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대신, 모든 위대한 종교와 철학의 심장부에는 단 하나의 공통된 ‘고대의 지혜 (Ancient Wisdom)’가 흐르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이 고대의 지혜를 집대성하여 그녀의 일생일대의 역작인 ‘비밀 교리 (The Secret Doctrine, 1888)’를 출간합니다. 이 방대한 저작은 인류의 기원과 우주의 창조에 대한, 기존의 어떤 종교나 과학과도 다른 장엄하고도 복잡한 우주론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이 모든 지식의 출처가 ‘드지안의 서 (The Book of Dzyan)’라고 불리는, 아틀란티스 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지극히 오래된 비밀의 경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밀 교리’의 핵심 사상은, 우주가 절대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원리로부터 주기적으로 발출되고 다시 해체되는 거대한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적 드라마는 힌두교의 칼파 (Kalpa)와 프랄라야 (Pralaya) 개념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시간 단위 속에서 펼쳐지며, 그 안에서 인간의 영혼 또한 ‘환생 (reincarnation)’의 법칙에 따라 수많은 생을 거치며 진화해 나갑니다. 또한, 모든 행위는 그에 합당한 결과를 낳는다는 ‘카르마 (Karma)’의 법칙이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우주적 정의의 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블라바츠키가 서구에 전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이 모든 고대의 지혜가 가장 순수하고도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온 곳이 바로 인도와 티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서구 문명이 잃어버린 영적인 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양의 지혜, 특히 아리안 민족의 고향인 인도의 베단타 철학과 불교 사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녀 이전에도 소수의 학자들을 통해 인도의 경전들이 번역되기는 했지만, 블라바츠키는 카르마와 환생, 요가와 차크라, 아트만과 브라흐만과 같은 힌두-불교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서구 대중의 의식 속으로 직접 들여온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개념들을 서양의 헤르메스주의, 영지주의, 카발라와 같은 비밀의 지혜 전통과 연결시키고, 현대 과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재해석함으로써, 서구인들이 동양 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녀에게 인도의 지혜는 단순한 이국적인 철학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영적인 유산이자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녀와 올코트 대령이 신지학 협회의 본부를 인도의 아디아르 (Adyar)로 옮긴 것은 바로 이러한 신념의 상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서구인들에게 동양의 지혜를 전하는 동시에, 서구의 물질주의와 기독교 선교 활동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던 인도인들에게 그들 자신의 위대한 영적 전통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는 역할 또한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19세기 말, 동과 서라는 두 개의 거대한 문명 사이를 가로지르며, 서구에는 잊혀졌던 영원의 철학을 전하고 동양에는 새로운 자부심을 불어넣은, 거대한 문화적, 영적 지진의 진앙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2-21.2. 카르마와 환생: 힌두 사상의 서구 수용



헬레나 블라바츠키 (Helena Blavatsky)가 19세기 후반의 서구 세계에 던진 가장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영향력 중 하나는, 바로 인도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두 개의 거대한 개념, 즉 카르마 (Karma)와 환생 (Reincarnation)을 대중의 의식 속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당시 서구의 정신 세계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세계관 아래에서 ‘단 한 번의 삶’과 그 삶의 결과로 주어지는 ‘영원한 천국 혹은 지옥’이라는 직선적인 시간관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신에 의해 창조되며, 지상에서의 단 한 번의 생을 통해 그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토양 위에, 블라바츠키가 소개한 카르마와 환생의 법칙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이 신의 자의적인 심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인과 법칙에 따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 스스로 결정된다는 합리적인 설명이었으며, 단 한 번의 실패로 영원한 저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생애를 통해 점진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며 마침내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인도 사상에서 카르마는 단순히 ‘운명’이나 ‘숙명’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 어원은 ‘행위 (action)’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크리 (kṛ)’에서 왔으며,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카르마는 개인이 행하는 모든 종류의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는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고, 그 행위의 도덕적 성질에 따라 하나의 잠재적인 힘 혹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언젠가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 즉 즐겁거나 괴로운 경험을 행위자 자신에게 가져다준다고 믿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원인으로서의 행위’와 ‘결과로서의 과보’를 모두 포괄하는 카르마 법칙의 핵심입니다. 모든 인도의 철학 체계 (유물론자인 차르바카 학파를 제외하고)는 이 카르마의 법칙을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이고도 비인격적인 도덕률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리적인 자연 법칙처럼 예외 없이 작동하며, 신들조차도 그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조건, 즉 나의 건강과 재산, 사회적 지위와 재능, 심지어 성격까지도 모두 과거의 나의 행위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이며, 현재 나의 모든 행위는 다시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카르마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개념, 즉 ‘환생’ 혹은 ‘윤회 (saṃsāra)’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한 번의 짧은 생애 동안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를 그 생애 안에서 모두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또한,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개인이 처한 조건이 그토록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 이전에 또 다른 삶이 있었음을 가정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인도의 사상가들은 영혼 (jīva 혹은 ātman)이 죽음 이후에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카르마의 무게에 이끌려 자신의 행위에 걸맞은 새로운 육체와 환경을 받아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 끝없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의 순환이 바로 윤회의 바퀴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삶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긴 여정의 한 순간에 불과하며, 동시에 무한한 미래로 이어지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이 윤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카르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절대적인 자유의 상태, 즉 해탈 (Mokṣa) 혹은 열반 (Nirvāṇa)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블라바츠키와 신지학 협회는 바로 이 카르마와 환생의 교리를 서구에 소개하면서, 그것을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이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으로 제시했습니다.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이 번영하는가? 왜 어떤 아이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다른 아이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가? 이러한 불평등과 부조리의 문제에 대해, 신지학은 ‘신의 불가해한 섭리’나 ‘원죄’와 같은 신앙의 언어가 아니라,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는 카르마의 법칙으로 설명했습니다. 현재의 고통은 과거 생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결과이며, 현재의 선한 노력은 미래 생애의 행복을 위한 씨앗이 된다는 설명은, 19세기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익숙했던 서구인들에게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신지학은 환생의 개념을 다윈의 진화론과 결합시켜 하나의 거대한 ‘영적 진화론’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다윈의 이론이 생물학적인 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신지학은 개별 영혼의 의식적 진화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가장 낮은 광물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로 진화해 나가는 장대한 순례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환생은 이 진화의 과정에서 영혼이 다양한 경험을 쌓고 교훈을 배우는 ‘학교’와도 같습니다. 각각의 생애는 영혼이 특정한 과업을 배우기 위해 입학하는 하나의 학년이며, 육체적 죽음은 하나의 학년을 마치고 다음 학년으로 넘어가는 졸업식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영원한 저주’라는 기독교의 위협적인 교리에 지쳐 있던 많은 서구인들에게, 인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모든 영혼은 결국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우주관을 제공했습니다.


블라바츠키는 카르마와 환생을 단순한 동양의 철학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사실은 기독교 이전의 모든 고대 지혜, 즉 이집트와 그리스의 비의 전통 속에도 존재했던 보편적인 진리였으며, 단지 후대의 기독교 교회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서구인들이 이 낯선 동양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잃어버린 정신적 유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신지학을 통해 서구 사회에 뿌리내린 카르마와 환생의 개념은, 이후 서양의 수많은 새로운 종교 운동과 영성 문화, 그리고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닌 긴 여정의 일부로 보고,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느끼며,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의 상당 부분은, 19세기 말 블라바츠키라는 한 명의 여인이 서구 정신의 닫힌 문을 열고 동양의 지혜를 과감하게 들여온 그 노력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2-21.3. 근원 아리아 인종과 인도의 역할



헬레나 블라바츠키 (Helena Blavatsky)가 서구 세계에 소개한 고대의 지혜는 단순히 카르마와 환생과 같은 개별적인 철학적 개념들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비밀 교리 (The Secret Doctrine)’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운명에 대한, 다윈의 진화론과 성서의 창조 신화를 모두 넘어선 하나의 거대하고도 장엄한 영적 진화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였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사 (宇宙史)의 중심에는, 인간의 영혼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일곱 개의 거대한 진화 단계, 즉 ‘근원 인종 (Root Races)’을 거쳐 완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독특하고도 복잡한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 속에서, 블라바츠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다섯 번째 근원 인종, 즉 ‘아리아 인종 (Aryan Root Race)’의 시대라고 규정하며, 이 위대한 인류 주기의 영적인 지혜가 시작되고 가장 순수하게 보존된 곳이 바로 인도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주장은 당시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 신음하던 인도에 새로운 영적 자부심을 불어넣었으며, 동시에 훗날 끔찍한 비극을 낳게 될 인종주의적 오해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중요하고도 문제적인 것이었습니다.


블라바츠키의 인류학은 영적인 차원과 물질적인 차원이 교차하는 일곱 단계의 장대한 드라마입니다. 그녀에 따르면, 인류는 이 지구 위에서 총 일곱 번의 거대한 진화 주기, 즉 근원 인종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근원 인종은 특정 대륙에서 번성하며, 특정한 감각과 원리를 발전시키는 과업을 가집니다. 첫 번째 근원 인종은 순수한 영체로 이루어진 ‘아스트랄 인종’이었고, 두 번째는 오늘날의 북극 근처에 살았던 ‘히페르보레아 인종’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태평양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레무리아 (Lemuria) 대륙에서 번성했던 ‘레무리아 인종’입니다. 이 거인과도 같았던 인종의 시대에 비로소 인간은 남녀의 성별을 갖게 되고 물질적인 육체를 완전히 갖추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근원 인종은 대서양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아틀란티스 (Atlantis) 대륙의 ‘아틀란티스 인종’입니다. 이들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루었지만, 영적인 지혜를 남용하고 흑마술에 빠져들어 결국 거대한 지각 변동으로 대륙 전체가 물에 잠기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아틀란티스의 타락 속에서, 지혜의 대사들에 의해 선택된 소수의 영적으로 진보한 영혼들이 중앙아시아의 고비 사막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인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다섯 번째 근원 인종, 즉 ‘아리아 인종’의 선조들입니다. 여기서 블라바츠키가 사용한 ‘아리아’라는 용어는 훗날 나치즘이 사용한 편협하고 폭력적인 인종적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블라바츠키는 19세기 비교언어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아리아’를 산스크리트어 ‘아리야 (Ārya)’, 즉 ‘고귀한 자’라는 본래의 의미에 가깝게 사용했습니다. 그녀에게 아리아 인종이란 특정한 혈통이나 민족을 가리키는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아틀란티스 인종이 발전시켰던 감성과 욕망의 차원을 넘어, ‘마나스 (Manas)’, 즉 ‘지성’과 ‘정신’의 원리를 온전히 발달시키는 것을 시대적 과업으로 부여받은, 거대한 인류 진화의 한 단계를 의미하는 영적인 용어였습니다.


신지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다섯 번째 근원 인종의 모체로부터 여러 갈래의 ‘하위 인종 (sub-races)’들이 차례로 뻗어 나왔습니다. 그 첫 번째 하위 인종의 선구자들이 중앙아시아의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곳이 바로 인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인도의 위대한 베다 문명을 일으킨 영적인 선조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블라바츠키에게 인도는 단순히 오래된 문명국 중 하나가 아니라, 현생 인류인 아리아 인종의 영적인 ‘모태’이자, 그 인종에게 주어진 고대의 지혜가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온 성스러운 보고 (寶庫)였습니다. 그녀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심오한 가르침,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브라흐만과 아트만, 카르마와 윤회의 철학이야말로, 지혜의 대사들이 다섯 번째 근원 인종의 진화를 위해 내려준 최초의 신성한 계시라고 보았습니다. 다른 모든 문명과 종교들은 이 원초적인 인도-아리안의 지혜가 희석되거나 변형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서구 제국주의의 시선과는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인도를 미신적이고 정체된 문명으로 여기며, 자신들의 기독교 문명과 과학 기술을 통해 인도를 ‘계몽’시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블라바츠키는 오히려 영적으로 파산한 서구 문명이야말로 인도의 고대 지혜를 통해 구원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녀가 신지학 협회의 본부를 인도의 아디아르로 옮긴 것은 바로 이러한 신념의 구체적인 실천이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지혜의 근원으로 돌아가, 서구의 물질주의와 동양의 영성을 결합시켜 새로운 인류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 지배 아래에서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던 많은 인도의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자부심과 영감을 주었으며, 인도의 독립과 민족 부흥 운동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블라바츠키가 뿌린 이 ‘아리아’라는 씨앗은, 그녀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 비극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영적인 진화의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근원 인종’과 ‘하위 인종’이라는 위계적인 개념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수용되면서 본래의 신비주의적 의미가 제거되고, 순수한 생물학적, 인종적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되었습니다. 특히, 아리아 인종이 가장 진화된 인류라는 그녀의 주장은, 게르만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아리아 인종의 후예이며 따라서 다른 민족들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나치즘의 끔찍한 인종 이데올로기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블라바츠키 자신은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협회의 제1 목표로 내걸었으며, 유대 민족을 폄하하는 대신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를 고대 지혜의 중요한 일부로 존중했다는 점에서, 그녀를 직접적인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사용한 용어와 위계적인 진화의 도식은, 그 시대에 팽배해 있던 사회진화론적 편견과 결합하여 위험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아리아 인종’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도의 영적 위대함을 서구에 알리려 했던 블라바츠키의 시도는,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복잡하고도 아이러니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21.4. 크리슈나무르티와 새로운 의식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점화한 신지학 운동의 불꽃은 그녀의 사후, 애니 베산트 (Annie Besant, 1847-1933)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더욱 거대한 횃불로 타오르게 됩니다. 블라바츠키가 비밀스러운 지혜를 세상에 드러낸 계시자였다면, 뛰어난 웅변가이자 조직가였던 베산트는 그 지혜를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장시킨 실천가였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이자 뛰어난 투시가였던 찰스 웹스터 레드비터 (Charles Webster Leadbeater, 1854-1934)의 지도 아래, 신지학 협회는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끌 다음 단계의 위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위대한 ‘세계의 스승 (World Teacher)’, 즉 주님 마이트레야 (Lord Maitreya)가 세상에 곧 다시 오실 것이며, 그분의 의식을 담아낼 그릇, 즉 특별한 ‘매개체 (vehicle)’를 찾아내어 세상에 준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었습니다. 그리고 1909년, 인도의 아디아르에 있는 신지학 협회 본부 앞의 한 해변에서, 레드비터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던 한 브라흐만 소년에게서 이전에 본 적 없는 놀랍도록 순수한 오라 (aura)를 발견합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Jiddu Krishnamurti, 1895-1986)였으며, 이 발견은 신지학 운동의 역사를, 그리고 더 나아가 20세기 세계 정신사를 뒤흔들게 될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의 서막이었습니다.


레드비터와 베산트는 크리슈나무르티야말로 지혜의 대사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세계의 스승이 임재할 바로 그 매개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크리슈나무르티와 그의 동생 니티아난다 (Nityananda)를 법적 후견인으로 입양하여, 그를 미래의 위대한 역할에 걸맞은 인물로 키우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보호하고 숭배하기 위한 조직, 즉 ‘동방의 별의 교단 (The Order of the Star in the East)’이 창설되었고, 전 세계의 수만 명의 신지학 협회 회원들이 이 새로운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며 그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헌신을 보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신지학의 정교한 우주론과 비밀 교리를 배웠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지학 협회가 인류에게 제시할 살아있는 희망의 상징이자, 미래의 구원자였습니다. 모든 것은 베산트와 레드비터가 예견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의 내면에서는 다른 종류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가 깊이 사랑하고 의지했던 동생 니티아난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건은, 그에게 깊은 실존적인 고통과 함께 모든 권위와 믿음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수년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역할에 대해 깊이 고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9년 8월 3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동방의 별의 교단 연례 캠프에서, 수천 명의 추종자들이 모인 가운데, 크리슈나무르티는 연단에 올라 20세기 정신사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충격적인 연설 중 하나를 행합니다. 그는 자신이 바로 그 교단의 중심이자 존재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동방의 별의 교단을 해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간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진리는 길이 없는 땅 (a pathless land)입니다. 당신은 어떤 길이나, 어떤 종교, 어떤 종파를 통해서도 진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나의 관점이며, 나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고수합니다. 진리는 조직될 수 없으며, 어떤 조직도 인간을 진리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 되고, 하나의 신조, 하나의 종파, 하나의 종교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될 것입니다.”


이 선언은 신지학 협회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폭탄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구원자로 지목하고 키워준 조직 전체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였으며,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수만 명의 추종자들에게 이제 그들 자신의 발로 직접 서야 한다고 말하는, 지극히 고통스럽지만 자비로운 결별의 선언이었습니다. 이 순간 이후, 크리슈나무르티는 ‘세계의 스승’이라는 역할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남은 생애 동안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직 한 명의 독립적인 사상가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변혁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새로운 종교나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모든 종류의 종교와 철학, 이데올로기, 그리고 영적인 권위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건 지워진 생각의 감옥 속에 가두는 족쇄라고 보았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새로운 의식’의 핵심은, 모든 형태의 심리적 권위를 완전히 내려놓고, 어떤 매개자도 없이 자기 자신이 직접 진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는 구루 (guru)나 스승, 성스러운 경전, 혹은 정교한 수행 체계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환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리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반복하거나 모방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진 것 (the known)’, 즉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지식과 경험, 기억과 전통, 신념과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 매 순간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영적 탐구는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이러한 ‘알려진 것’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는지를 아주 정직하고 철저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봄’의 행위를 위해 크리슈나무르티가 제시한 방법이 바로 ‘선택 없는 자각 (choiceless awareness)’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 욕망과 두려움을, 그것을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하거나, 억누르거나, 혹은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고요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관찰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분노와 질투, 슬픔과 불안이 외부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조건 지어진 반응 패턴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관찰이 더욱 깊어질 때, 우리는 마침내 ‘관찰하는 자가 곧 관찰되는 것이다 (the observer is the observed)’라는 놀라운 통찰에 이르게 됩니다. 즉, 나의 분노를 관찰하고 있는 ‘나’라는 중심과, ‘분노’라는 감정이 사실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심리적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이원적 분열이 사라질 때, 비로소 내면의 모든 갈등은 그 뿌리를 잃고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크리슈나무르티가 평생에 걸쳐 이야기한 것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회 제도나 정치 체제의 개혁이 아니라, 각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적인 심리적 혁명 (total psychological revolution)’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혁명은 점진적인 진화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통찰의 순간에 단번에 일어나는 의식의 근본적인 변이입니다. 이것은 신지학이 제시했던, 수많은 생애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영혼의 여정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신지학이 우주의 비밀을 설명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지도를 제공했다면,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모든 지도를 불태워 버리고, 지도 없는 미지의 땅을 자기 자신의 빛만으로 걸어가라고 요구한 셈입니다. 이처럼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자신을 낳아준 신지학이라는 모태를 부정하고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역설적으로 신지학이 추구했던 ‘새로운 인류 의식의 도래’라는 예언을 자기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가장 급진적이고도 순수한 형태로 실현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적 혁명가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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