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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장: 경계를 넘는 지혜들

by DrLeeHC

제6-16장: 경계를 넘는 지혜들



6-16.1. 기독교 카발라: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로이힐린



경계를 넘는 용기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와 독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대교 신비주의의 깊은 샘에 담긴 카발라의 지혜가, 그동안 단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던 종교의 경계를 조용히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열어젖힌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불꽃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피렌체에서 활약한 젊은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와, 독일 땅에서 히브리어 연구의 새 길을 닦은 학자 요하네스 로이힐린 (Johannes Reuchlin, 1455-1522)이었습니다. 이들은 카발라가 단순히 유대교만의 비밀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가장 깊은 진리를 증명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이탈리아 북부 미란돌라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놀라운 재능을 보인 그는 볼로냐에서 교회법을, 파도바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배웠고, 파리와 피렌체를 오가며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익혔습니다. 피렌체에서 그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 (Marsilio Ficino, 1433-1499)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피렌체는 그 시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혜를 부활시키려는 인문주의자들의 열정이 꽃피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피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뿐 아니라, 유대교의 신비 전통인 카발라까지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1486년, 스물셋의 나이로 피코는 유럽 전체를 놀라게 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그리스, 히브리, 아랍, 라틴의 모든 철학과 신학에서 뽑아낸 900개의 논제를 준비하고, 유럽의 모든 학자를 로마로 초대해 공개 토론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모든 명제를 옹호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참여하는 학자들의 여행 경비까지 모두 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900개의 논제 가운데 상당수는 카발라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피코는 유대교의 카발라가 기독교 신학을 증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카발라의 가르침 속에서 삼위일체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성, 영혼의 구원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토론회를 준비하며 피코가 작성한 서문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 Oratio de hominis dignitate』입니다. 이 짧은 글에서 피코는 인간을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특별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그 어떤 고정된 본성도 주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천상의 존재로, 짐승은 본능의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인간만은 자신이 무엇이 될지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받았습니다. 피코는 이것을 인간의 존엄성이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인간관은 카발라의 가르침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카발라는 인간을 작은 우주 (microcosm)로 보았습니다. 인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층위가 반영되어 있으며, 인간의 영혼은 가장 높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세계까지를 연결하는 사다리입니다.


그러나 피코의 대담한 시도는 교황청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교황청 위원회는 900개의 논제 가운데 13개를 이단으로 판정했고,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토론회 자체를 금지했습니다. 피코가 자신의 논제를 변호하기 위해 『변론, Apologia』을 썼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로 도망쳤으나 곧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얼마 후 석방된 피코는 피렌체로 돌아와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 1449-1492)의 보호를 받으며 남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는 겨우 31세의 나이로 1494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연 문은 다시는 닫히지 않았습니다. 카발라는 이제 기독교 세계 안으로 들어왔고, 수많은 학자가 피코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피코와 거의 같은 시대에 독일에서는 요하네스 로이힐린이 카발라 연구의 또 다른 길을 열고 있었습니다. 로이힐린은 1455년 독일 남부의 포르츠하임 (Pforzheim)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법학자이자 외교관으로 뷔르템베르크 공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열정은 언어 연구에 있었습니다. 로이힐린은 독일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연구의 기초를 닦은 선구자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 학자들은 라틴어 성경만을 읽었지만, 로이힐린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어인 히브리어를 배워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로이힐린이 카발라를 만난 것은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만났고, 피코의 카발라 연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 로이힐린은 유대인 학자들로부터 직접 히브리어와 카발라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주치의였던 유대인 의사 야코프 벤 예히엘 로안스 (Jacob ben Jehiel Loans)에게서 카발라의 깊은 가르침을 전수받았습니다. 로이힐린은 1494년 『신비한 말씀에 관하여 (De verbo mirifico)』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신의 이름들이 지닌 신비한 힘을 탐구했습니다. 카발라 전통에서 신의 이름, 특히 네 글자로 된 이름 (테트라그람마돈, Tetragrammaton, YHVH)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실제적인 힘을 담고 있습니다. 로이힐린은 이 신성한 이름들을 연구함으로써 신의 본성과 세계의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517년, 로이힐린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작 『카발라의 기술에 관하여, De arte cabalistica』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세 명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유대인 카발라 학자, 그리스 철학자, 그리고 기독교 신학자가 등장해 카발라의 지혜를 논합니다. 로이힐린은 이 책을 통해 카발라가 단순히 유대교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모든 진리를 담은 보편적 지혜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는 카발라의 세피로트 (Sefirot) 이론이 신의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카발라의 우주론이 기독교의 창조 신학과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이힐린의 카발라 연구는 당대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개종한 유대인 요하네스 페퍼콘 (Johannes Pfefferkorn, 1469-1523)은 로이힐린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페퍼콘은 유대교 문헌을 모두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로이힐린은 히브리어 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지혜가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은 몇 년간 계속되었고, 결국 로이힐린은 교황청으로부터도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로이힐린의 용기 있는 변호 덕분에 히브리어 문헌들은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세대의 학자들이 카발라를 연구할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뿌려진 씨앗


피코와 로이힐린이 시작한 기독교 카발라는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들은 카발라를 단순히 외래 사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가장 오래된 진리를 재발견하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카발라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비밀 가르침의 일부였고,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마땅히 배워야 할 지혜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유대교 카발라 전통과는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유대 카발라 학자들은 카발라를 토라 (Torah)의 신비적 해석으로 보았지만, 기독교 카발라 학자들은 카발라를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코와 로이힐린의 업적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종교 전통 사이에 대화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하나의 전통 안에만 갇혀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르네상스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발라는 이제 유대교의 울타리를 넘어, 서양 사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지혜의 샘이 되었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카발라의 생명나무 (Tree of Life)를 자신들의 변환 과정과 연결했고, 신비주의자들은 세피로트의 구조 속에서 영적 상승의 지도를 발견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카발라의 아인 소프 (Ein Sof) 개념을 통해 신의 초월성을 새롭게 사유했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요하네스 로이힐린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지식의 경계를 허무는 용기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언어와 낯선 사상 속으로 기꺼이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비난받고 박해받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연 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걸어 들어왔고, 카발라의 지혜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꽃을 피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승 (Kabbalah)의 의미입니다. 지혜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6-16.2. 칼 융과 분석 심리학: 세피로트와 원형



생명나무와 집단무의식의 만남


1944년 겨울, 칼 융은 산책을 하다 넘어져 발목을 다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주간 헤매었습니다. 바로 그 경계의 순간, 융은 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파르데스 리모님 (Pardes Rimonim)’, 즉 석류동산에 서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티페레트 (Tiferet)와 말쿠트 (Malkhut)의 신비로운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융은 자신이 2세기 랍비인 시므온 바르 요하이 (Shimon bar Yochai)가 되어 그 성혼을 경험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후에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내가 본 것은 카발라 사상가들이 묘사한 그대로였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환상은 융이 카발라의 세계와 얼마나 깊이 공명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융은 카발라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그의 정신은 카발라의 상징과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80세 생일 인터뷰에서 그는 메제리츠의 라비 바알 (Rabbi Baer of Meseritz)가 자신의 심리학 전체를 이미 예견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융이 평생 탐구한 집단무의식과 원형의 세계는, 카발라가 수천 년간 전승해온 세피로트의 지혜와 놀라운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형과 세피로트가 마주하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원형 (Archetypes)입니다. 원형은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공유해온 근원적인 이미지와 패턴을 말합니다. 이 원형들은 집단무의식이라는 깊은 심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합니다. 어머니, 영웅, 그림자, 현자와 같은 원형들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 신화와 종교, 예술 속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납니다. 융은 이 원형들이 의식의 영역 너머에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정신의 성장과 통합을 이끈다고 보았습니다.


카발라의 세피로트는 융의 원형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세피로트가 신성이 세상에 드러나는 열 가지 권능이라면, 원형은 정신이 세상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근원적 형태입니다. 케테르 (Kether)가 순수한 존재의 가능성을 담고 있듯이, 융의 자기 (Self) 원형은 정신 전체의 중심이자 개성화의 목표입니다. 호크마 (Chokmah)와 비나 (Binah)가 능동적 지혜와 수용적 이해의 짝을 이루듯이, 융의 아니무스 (Animus)와 아니마 (Anima)는 남성과 여성 정신 안의 대극적 원리를 나타냅니다. 티페레트가 대립하는 힘들의 조화로운 중심이듯이, 자기 원형은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이루는 통합의 지점입니다.


융이 생명나무를 정신의 지도로 보았다면,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세피로트의 구조는 인간 정신의 해부도이기도 했습니다. 상위 세피로트는 집단무의식의 깊은 층위에 해당하며, 하위 세피로트는 의식에 가까운 원형들의 작용을 나타냅니다. 말쿠트 (Malkhut)가 신성이 물질세계에 현현하는 지점이듯이, 자아 (Ego)는 의식의 중심에서 무의식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융은 이 구조가 단지 유대 신비주의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정신의 원형적 패턴임을 직관했습니다.


그림자와 클리포트의 통합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 (Shadow)는 우리가 부정하고 억압한 정신의 어두운 측면을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 감추고 싶은 감정, 인정하기 싫은 성격의 한 부분들이 모두 그림자 속에 숨어 있습니다. 융은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이 그림자를 의식으로 끌어올려 통합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림자를 외면하면 그것은 더욱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면, 그 안에 갇혀 있던 에너지가 해방되어 성장의 원천이 됩니다.


카발라의 클리포트 (Qliphoth)는 융의 그림자와 깊이 공명합니다. 클리포트는 그릇의 파괴 이후 신성한 빛을 가두어버린 껍데기를 말합니다. 겉보기에는 악과 어둠의 근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신성한 불꽃이 숨어 있습니다. 카발라는 이 불꽃을 구해내어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가르칩니다. 클리포트를 단순히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이 관점은, 융이 그림자를 통합의 재료로 본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융은 개성화 (Individuation) 과정이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온전한 자기를 실현하는 여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림자를 포함한 모든 원형들을 의식 속으로 받아들여 조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카발라의 티쿤 (Tikkun) 또한 흩어진 신성의 조각을 모아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두 전통 모두 분열된 것을 통합하고, 억압된 것을 해방하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치유의 길을 제시합니다. 개성화가 개인 정신의 회복이라면, 티쿤은 우주 전체의 회복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치유가 곧 세계의 치유이며, 내면의 통합이 곧 우주의 조화이기 때문입니다.


상징의 언어로 말하는 무의식


융은 무의식이 개념이 아니라 상징의 언어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들, 신화 속의 이야기들, 종교적 의례 안의 상징들은 모두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 상징들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지만, 우리의 정신 깊은 곳에서 울림을 일으킵니다. 융은 만다라 (Mandala)를 통합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정신병 환자들이 그린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원이나 사각형의 만다라는, 해체된 정신을 다시 하나로 모으려는 무의식의 욕구를 담고 있었습니다.


카발라의 생명나무는 융이 본 가장 완전한 형태의 만다라였을 것입니다. 열 개의 세피로트가 세 개의 기둥 위에 배열되고, 스물두 개의 경로가 이들을 연결하는 이 구조는 단순한 도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이 무한에서 유한으로 흘러내리는 창조의 과정을, 정신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펼쳐지는 개성화의 과정을, 우주가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진화의 과정을 동시에 담고 있는 살아있는 상징입니다. 융이 환상 속에서 본 티페레트와 말쿠트의 결혼은, 정신의 중심과 물질적 현실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상징했습니다. 그것은 융 자신의 개성화 과정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무의식의 선물이었습니다.


융은 연금술의 상징들을 연구하면서 카발라와 자주 마주쳤습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카발라의 지혜를 자신들의 작업에 통합했고, 그들이 추구한 위대한 작업 (Magnum Opus)은 영혼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의 과정은, 그림자를 빛으로 변화시키는 개성화의 과정이자, 깨진 그릇을 온전히 복원하는 티쿤의 과정이었습니다. 융은 이 모든 상징 체계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며, 그 근원은 인류가 공유하는 집단무의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카발라가 유대교의 전통 안에서 꽃피웠다면, 융의 심리학은 그 같은 지혜를 보편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모든 인류에게 전하려는 시도였습니다.











6-16.3. 개성화 과정과 그림자 통합



내면의 클리포트를 마주하다


칼 융은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던 중 카발라의 구조가 인간 정신의 지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세피로트가 단순히 신성의 권능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살아 움직이는 심리적 원형들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개성화 (individuation)는 카발라의 티쿤 올람과 깊이 공명합니다. 흩어진 신성한 불꽃을 모으는 일과 내면의 파편들을 통합하는 일은 같은 여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융은 인간의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었습니다.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 (ego)가 있고, 무의식의 영역에는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자리합니다. 개인 무의식 속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억압한 모든 것이 쌓여 있으며, 집단 무의식 속에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원형적 상징들이 담겨 있습니다. 개성화란 이 무의식의 내용들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통합함으로써, 온전한 자기 (Self)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이 여정은 카발라에서 말쿠트로부터 케테르를 향해 오르는 길과 같습니다. 개성화의 첫 단계는 그림자 (shadow)를 직면하는 일입니다.


그림자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든 성격적 측면들의 총합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어떤 특성은 표현하고 어떤 특성은 숨기는 법을 배웠습니다. 분노, 질투, 욕망, 나약함, 이기심과 같은 특질들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식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렇게 억압된 특질들이 모여 그림자를 형성합니다. 그림자는 우리 의식이 만들어낸 페르소나 (persona), 즉 사회적 가면의 뒤편에서 살아갑니다. 페르소나가 우리의 밝은 면이라면, 그림자는 어두운 면입니다. 융은 그림자를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라 불렀습니다.


카발라의 클리포트 (Qliphoth)는 융의 그림자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입니다. 클리포트는 셰비라트 하켈림 때 깨진 그릇의 껍데기들이며, 신성한 불꽃을 가두고 있는 장애물입니다. 클리포트는 악 그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신성입니다. 헤세드가 지나치게 확장되면 경계 없는 방종이 되고, 게부라가 과도하게 작용하면 파괴적 잔혹함이 됩니다. 클리포트는 균형을 잃은 세피로트의 그림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융의 그림자도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닙니다. 억압된 분노는 정당한 경계 설정의 능력이 될 수 있고, 숨겨진 욕망은 창조적 열정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림자 안에는 여전히 사용되지 못한 생명력이 잠들어 있습니다.


투사와 통합의 길


그림자를 만나는 가장 흔한 방식은 투사 (projection)입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특질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고 그것을 강하게 혐오합니다. 어떤 사람의 탐욕이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면, 그것은 우리 안의 억압된 탐욕이 그 사람을 통해 투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적 반응은 대부분 투사의 신호입니다. 융은 "우리가 타인에게 저항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에 저항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카발라는 세상의 악이 사실 흩어진 신성한 불꽃이 클리포트에 갇힌 상태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어둠은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빛입니다. 티쿤의 작업은 이 불꽃들을 해방시켜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융의 그림자 통합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 그림자를 거두어들여 자신의 것으로 인정할 때, 그림자에 갇혀 있던 심리적 에너지가 해방됩니다. 이 에너지는 더 이상 무의식 속에서 우리를 방해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창조적 힘이 됩니다.


그림자 통합의 첫 걸음은 자기 관찰입니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느끼는 강한 감정적 반응을 살피고, 그것이 내 안의 무엇을 비추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두 번째 걸음은 인정과 수용입니다. 나 역시 분노할 수 있고, 질투할 수 있고, 나약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것은 그림자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융은 그림자를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상당한 도덕적 노력"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를 포기하고, 불완전하지만 온전한 인간으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카발라에서 클리포트를 정화하는 방법은 카바나 (Kavvanah), 즉 의도를 가진 행위입니다. 미츠보트를 행할 때 순수한 의도를 담으면, 그 행위가 클리포트 안에 갇힌 불꽃을 해방시킵니다. 융 역시 의식적 자각이 그림자 통합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림자를 의식의 빛으로 비추는 순간, 그림자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융은 "이해는 구명정과 같다. 그것은 무의식을 통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림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림자에게 삼켜지지 않으면서도 그림자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온전함을 향한 순례


그림자 통합은 개성화 과정의 첫 단계일 뿐입니다. 그림자를 넘어 우리는 아니마 (anima)와 아니무스 (animus), 즉 내면의 이성과 여성성을 만나야 합니다. 그 너머에는 자기 (Self)가 기다립니다.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성의 원형이며, 융은 이것을 정신의 중심이자 궁극적 목표로 보았습니다. 카발라의 케테르가 아인 소프의 첫 발현이듯, 융의 자기는 개인을 넘어선 보편적 차원과 연결됩니다. 개성화의 목표는 자아가 자기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카발라의 개성화는 네 세계를 관통하는 야콥의 사다리를 오르는 여정입니다. 아시야에서 시작하여 예치라, 브리아를 거쳐 아칠루트에 이르는 길입니다. 각 세계를 넘어설 때마다 우리는 더 깊은 의식의 층위에 도달합니다. 융의 개성화 역시 의식의 확장입니다. 무의식의 내용들을 하나씩 의식으로 끌어올려 통합할 때, 우리의 인격은 더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그림자를 통합한 사람은 융이 말한 대로 "몸을 얻습니다." 더 이상 허공에 뜬 이상적 자아가 아니라, 땅을 딛고 선 구체적 존재가 됩니다.


티쿤 올람과 개성화는 모두 우주적 과업입니다. 카발라는 인간의 행위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나의 미츠바를 행할 때마다, 흩어진 신성한 불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세상은 조금씩 치유됩니다. 융 역시 개인의 심리적 변화가 집단 무의식에 파문을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어둠을 세상에 투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둠을 줄이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카발라와 융의 심리학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리를 말합니다. 흩어진 것을 모으고, 깨진 것을 치유하며, 분리된 것을 통합하는 일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클리포트 안에 갇힌 불꽃을 해방시키는 일과 그림자 속에 억압된 에너지를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같은 신성한 작업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더 온전한 인간이 되고, 세상은 조금씩 본래의 조화를 되찾습니다. 융이 꿈꾸었던 개성화의 완성은 카발라가 말하는 티쿤의 완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모든 빛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그날,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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