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쇠퇴의 깨달음
주로를 달리던 내가 집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시대, 마라톤 대회는 멈추고 헬스장에선 마스크를 쓴 채 운동을 해야 했다. 사람 한 명 만나기 어려운 날들에, 답답함을 달래려고 집에서 TV를 켜놓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유튜버의 운동법을 따라 하다 보니, 살을 빼겠다는 욕심이 은근히 나를 더 열심히 ‘절’에 빠지게 했다. 처음엔 한 20분, 영화를 틀어 놓고 점차 시간을 늘렸다. 내가 평소 헬스장에서 흘린 땀과는 다른 굵고 진한 땀방울이 몸을 가볍게 했고, 기분도 날아갈 듯했다. 새벽 시간에 헬스장 대신 절,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첫발을 딛는 순간 무릎이 울리며 걸음이 엉겼다.
“어!? 왜 이러지...”
순간 의심보다 놀라움이 먼저 밀려왔다.
그리고 당황스러움은 금세 불편함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의 시선과 건네는 말들이 더 피곤했다.
“걸음이 왜 그래?”
“어디 다친 거 아냐? 병원 가봐!”
걱정하는 말이라기보다 호기심과 위로 사이 어딘가에 걸쳐있는 어색한 관심이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말이 아니라 마음이 잠시 숨을 고를 여백이라는 것을.
동네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염증이라 한다. 치료하면서 며칠 쉬면 나을 거라는 말에 안도했다. 치료 후 한동안 나아지는 듯싶더니 다시 불편해졌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찼단다. 주사기로 물을 빼니 한결 가벼웠다. 의사는 일상 활동을 줄이라고 말한다. 걷기도 과하게 하지 말라고 조심스레 권유한다. 말대로 헬스장도 안 가고 남산 산책도 참았다. 체외충격파 치료와 재활의학과 물리치료를 받으며 두 달을 버텼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비탈길이나 계단에서는 무릎이 욱신욱신 울었고 평지를 걷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두 달의 치료가 내게 남긴 건 통증보다 불안이었다. 돈보다 더 무서웠던 건 ‘혹시 이대로 낫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비용과 시간을 꽤 들였는데 호전이 없다고 더 자세히 봐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의사에게 모처럼 강하게 말했다.
의사는 “염증이란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세월이 약”이라면서 위로했지만 평소와 다른 내 표정을 보고는 결국 MRI를 찍어보자고 권유했다.
MRI를 찍기 위해 고무마개 같은 것으로 귀를 막고 터널 같은 공간에 들어갔다. 윙~ 울리는 소음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그동안 달린 마라톤 길과 산행의 능선들이 떠올랐다. 몸은 갇혀 있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반월상 연골이 많이 찢어졌습니다. 시술을 해야 합니다.”
의사는 차갑고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퇴행성 관절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평생 걷는 것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고. 동네 의사는 대학 동기가 원장으로 있는, 시술을 잘하기로 유명한 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정형외과 전문 '수술적 치료 병원'이었다. 상담 후 시술을 결정하고 '무릎 관절 내시경 시술'을 받았다. 대학병원과의 차이를 확실히 느낀 건 너무나도 친절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점이었다. 마치 VIP 대접을 받는 듯한 3박 4일이 지나갔다. 병원도 결국 서비스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퇴원했다.
“제가 이 다리로 마라톤과 산악 마라톤을 해왔는데... 앞으로도 가능할까요? "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의사는 그냥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걸을 때라는 뜻으로 들렸다.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지금 군인이라면 참 좋겠는데. 공식적으로 뺀질거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냐?’
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나에게도 이제 몸에 무언가가 느껴지는 두 달이 지나갔다. 몸에 둔한 신호들이 나에게 말한다. 내 몸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할 때라고.
미련하게도 이제야 깨달았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정밀 운동부하 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공단 직원이 나에게 해준 말은 뼈 나이가 남들보다 많으니 달리기보다 다른 운동을 선택해 보라고 권유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듣고 더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지금 찬란했던 달리기와 산행이 이른 노화의 모습으로 나에게 돌아오고 있다. 무릎을 많이 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찜질을 하며 쉬라는 조언이 뒤늦게 마음에 박힌다. 절기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몸 또한 어느 순간 예고 없이 꺾이는 지점이 있다. 기업도 가장 성장할 때 쇠퇴를 대비하듯 말이다. 나는 달리기와 등산으로 체력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던 그때 몸은 이미 쇠퇴의 신호를 보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는 법 밖에 몰랐다. 그저 달리면 건강해지는 줄만 알았다.
결국 성장과 쇠퇴는 한 몸처럼 함께 오는 것이다. 쇠퇴하고 있는 내 무릎에 다시 성장의 정성을 기울여야겠다. 달리던 다리에 그동안 미안했음을, 이제야 말하게 된다.
이제는 달리던 다리를 아내의 베개로 내어줄 차례다.
2022. 0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