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아빠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보다 이렇게 늦게 뛰어?”
아들 선우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마라톤 대회 주로 끝자락에서 나를 기다리며 건넨 말이다.
난 마라톤에서 분명 느린 주자였다.
풀코스 대회에 참가해 단 한 번만 후송 버스를 탔고, 기록이 늦어도 28번은 완주했다.
메이저 대회가 아닌 지방의 작은 대회에서는 주최 측의 실수로 물이나 바나나 같은 보급품이 떨어져 나처럼 후미에서 뛰는 주자들은 갈증을 참고 뛰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을까요?”
구십 도로 인사하며, 물을 든 채 곁을 지나던 이름 모를 주자에게 염치없게도 얻어 마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계속 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여러 해프닝도 겪었다.
대부분은 내가 늘 늦게 뛰는 러너였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대회는 보통 5시간이 지나면 길이 다시 도시의 속도를 되찾는다. 나는 그 속도 사이를 비집고, 끝까지 달렸다.
느리기 때문에 더 많은 장면이 내게로 왔다.
내게 마라톤은 기록이 아니라, 길 위에서 벌어지는 작은 연극 한 편이었다.
통제가 풀린 도로는 조금씩 본래의 얼굴을 되찾는다.
신호등이 깜빡이고, 인도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횡단보도 앞으로 모인다. 자원봉사자들은 접어야 할 테이블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마지막 남은 물 박스는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다. 텅 비었다. 그때부터 길은 ‘대회장’이 아니라 ‘도시’가 된다. 나는 그 도시의 틈을 비집고 달린다.
느린 주자들의 세계에는 이상한 동지 의식이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빛으로 안부를 묻는다.
“아직 살아 있네.”
“당신도 버티는구나.”
말은 없지만, 숨소리만으로 대화가 된다. 가끔은 작은 싸움도 난다. 뒤늦게 나타난 오토바이 한 대가 주자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가고,
누군가는 “위험해요!” 하고 소리친다.
응원도 달라진다.
초반의 응원은 축제처럼 요란하지만, 후미의 응원은 생활처럼 따뜻하다.
그리고 골인 지점에는 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은 이미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다음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남아 있는 얼굴들이 있다.
누군가는 가족이고, 누군가는 동료이고, 누군가는 그냥 끝까지 보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그 시선들을 마지막 보급처럼 받아 마신다.
다섯 시간의 풀코스 끝에서 내가 얻는 건 기록이 아니라 장면들이다.
통제가 풀린 길의 냄새, 늦게 피어나는 박수, 느린 자들끼리 나누는 묵묵한 연대.
그리고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던 가족과의 만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사실, 나는 가족 때문에 어떻게든 완주했다.
이제 운동화 끈 대신 만년필의 뚜껑을 연다
반복된 절 운동으로 무릎을 다친 뒤, 치료를 받으며 멈추는 법을 배웠다.
달리기의 기억을 문장으로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명상도 익혔다. 이건 마라톤 기록이 아니라, 내 삶의 호흡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빠르지 않았고, 대단하지도 않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완주하며 여기까지 왔다. 병원 치료와 부상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속도’보다 ‘지속’이었다.
이제는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며 무릎과 타협하고, 절하며 얻은 겸손을 ‘앉아서 하는 운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앉아서 하는 스트레칭 역시 단 1cm를 늘리기 위해 수천 번의 호흡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마라톤만큼이나 정직한 운동이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행위 역시 하나의 마라톤임을, 나는 요즘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 이제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대신, 만년필의 뚜껑을 연다.
지금의 주로에는 늘 응원해 주던 가족도, 지인도 없다.
텅 빈 주로 위를 홀로 달리는 기분이다. 누군가 건네주던 바나나나 생수 같은 보급품은 더 이상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라톤 풀코스를 28번이나 완주한 사람이다.
결국 아이디어는 이제 혼자 짜내야 한다. 종종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탈수 현상이 찾아오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분명 나는 알고 있었다.
오르막은 결국 끝나고, 그다음엔 다시 길이 열린다는 것을.
도로 위에 홀로 남아, 나만의 속도로 글쓰기를 이어간다.
때로는 교통 통제에 걸린다.
그럴 때면 가만히 앉아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아빠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보다 이렇게 늦게 뛰어?”
이제야 저 질문의 답을 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어제보다 한 걸음만 더,
그걸로 충분하다.
그게 내 방식이다.
202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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