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전도사

by 플레이런너

내가 가입한 달리기 동호회에서는 토달(토요일 달리기)을 한 후 언제나 뒷풀이가 진행되었다. 이때 몇몇 러너들이 달리기를 통해서 변화된 자기 자신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체중이 빠졌다”

“허리가 확 줄었다”

“당뇨가 좋아졌다”

“요통이 사라졌다”

“혈압이 내려갔다”

“부부관계가 좋아졌다”


마치 웅변하듯, 침까지 튀어가며 서로의 변화를 증명하듯 열변을 토해냈다. 같은 러너가 아니라, 어디서 전문 강사를 데리고 왔나 싶을 정도로 잘했다. 듣고 있던 러너들은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냈고,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응했다. 마치 교회 간증이나 다단계 현장에서 듣는 이야기 같았다. 난 성격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유혹에 아주 쉽게 흡수되는 스타일이다.

‘정말 달리기가 이렇게까지 효과가 있는 걸까?’

그 호기심이, 내가 마라톤에 푹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마라톤 전도사가 되었다. 즐거운 에너지로 만나는 사람마다 달리기의 효능을 이야기했고, 줄어든 체중과 단단해진 몸으로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마라톤은 하나의 종교 같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뜻밖의 반응에 마라톤을 전도하던 힘이 쭉 빠지는 일이 생겼다.

나는 열심히 전도했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칭찬에는 인색했다.

그 무렵 나는 체중이 8kg쯤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저 마다 한 마디씩 했다.

“사업 잘 안돼?”

“집안에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심지어 “이혼했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세상의 온갖 걱정은 그때 다 들은 듯하다.

어느 날 동네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요즘 많이 힘들지?”

나는 웃으며 “아니, 마라톤 덕분이야”라고 답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몇 킬로미터를 뛰었는지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뛴 거리를 묻지 않았다. 대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야속할 정도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일까?’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은 타인의 변화를 성취로 읽기보다,

사연으로 짐작하는 데 더 익숙하다.


나 스스로는 내 몸이 마치 마징가제트라도 된 듯 흐뭇했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그 반대라는 사실에 조금 실망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느린 주자였다. 그래서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다. 전도했던 이들 중에는 어느새 나를 앞질러 결승선으로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등을 보며, 전도사에게 가장 큰 보람은 신도가 자신을 넘어서는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글쓰기든, 일상이든, 사람 사이든 끝내 남는 건 말이 아니라 계속되는 행동이다. 나는 이제 체중이 살짝 올라왔다. 몸은 예전만 못해도 믿음은 굳이 입으로 증명하지 않기로 했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그저 계속하는 쪽을 택했다.

그때는 몰랐다.


마라톤은 입으로 전하는 종교가 아니라, 몸으로 버티는 방식으로만 이해되는 일이라는 걸.

말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는 사람, 조금 느려도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사람.

나는 지금도 느리게 간다. 새벽 운동장, 아직 불도 켜지지 않은 트랙 가장자리에서 나는 늘 마지막으로 몸을 푼다. 그리고 가끔 누군가 묻는다.

“왜 그렇게 오래 뛰세요?”

나는 대답 대신 헐거워진 신발 끈을 한 번 더 잡아당긴다.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서 있다가,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속도로 다시 한 걸음, 주로로 들어선다.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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