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씨앗', 욕망의 텃밭
1장 행복을 찾아서
산사의 밤은 조용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한 정적 속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적막 속에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번갈아 읽고 있었다.
‘탁, 탁, 탁’
산사의 적막을 깨는 목탁 소리가 맑은 새벽 공기를 또렷이 두드린다. 대략 여섯 시, 아침 공양을 알리는 절의 시간이다. 작은 암자라 스님과 나, 거사님이 함께하고, 보살님들은 따로 식사하셨다.
공양을 하면서 스님에게 평소 궁금함을 물었다.
“스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절에 다니나요?”
“행복하려고. 행복하면 우선 겉으로 표시가 나, 얼굴이 아주 해맑아져. 그러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교를 자연스럽게 알리지. 불교는 일상에서 실천하는 종교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씨앗’이 떠올랐다.
씨앗에서 활동하는 이유 역시 ‘행복’ 아닐까?
연습할 때 즐거운 나의 표정이 그 증거다. 내가 해 보니 너무 좋아서 주변에 알리고, 누군가 또 들어오게 된다. 스님 말씀과 내 처지가 겹쳐지며 작은 깨달음이 번졌다.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을 맞는 겨울방학을 산사에서 보낸다.
동기들은 육군·공군으로 흩어졌고, 나는 학교에 남아 ‘씨앗’을 조금 더 떠받치기로 했다. 빈자리는 내가 메우고, 복학하면 동기들이 다시 앞장서 동아리를 북돋울 것이다.
이 겨울, 내 몫의 등불은 여기, 산사와 ‘씨앗’ 사이에 놓여 있었다.
2장 트리거, J형
며칠 후, 나는 집에 물건을 챙기러 잠깐 들렀다. 그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혁진아, 우리 연극하자, 정말 괜찮은 작품이 있어. 넌 이제 배우야, 너는 기획도 뛰어나지만, 무대가 더 어울려. 형이랑 같이하자!”
특유의 중후한 음성이 차분하게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누굴까?
바로 J형이었다.
작년 ‘알’ 공연 전에 연출 없는 연극을 하자고 주장했다가 연출직을 박차고 나가 나와 간극이 벌어졌던 형이 아닌가? 그런 형이 내게 연락이 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기획이 아닌, 배우를 하라고.
‘배우? 정말일까?’
내가 J형 눈높이에 맞는 배우일까? 사람이 없어서 그냥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만큼 배우로서의 내 가치를 본 것인가? 하여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한 해 전 J형과 풀지 못한 매듭이 있었다. 나 때문에 형의 연출 꿈이 꺾였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가시지 않던 차였다.
정말 J형 말대로 기획이 아닌 무대의 배우로 더 잘 어울리는 것인가? 이제껏 나의 배우 생활은 대사 없는 단역 두 번, 지난 공연 조연이 전부인데, 지금부터는 기획에서 배우로 캐릭터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것일까? 이러다 곧 주인공 제안까지 오는거 아닐까?근거 없는 설렘이 가슴을 두드렸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J형에게 말하고, 산사로 발을 옮겼다. 지금 내 거처는 절이었다.
주지 스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스님, 산사에 있으면서 연극에 참여해도 괜찮을까요? 어머니는 제가 여기서 학문에 정진한다고 믿으시는데... 그건 저한테도 작은 속임수 같아서요.”
스님은 미소 지으며 대답하셨다.
“불교는 욕망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길이야. 연극은 무대 위에서 집착과 혐오를 연기하며, 그 본질을 깨닫는 수행 도구일 수 있지. 네가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수행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불법(佛法)은 다르지 않지. 해라. 먼저 어머니의 근심을 덜어드릴 약속을 세우고, 그다음 무대로 가거라. 숨긴 일이 있다면, 성심껏 최선을 다해 네 방식으로 갚아라.”
그 말씀에 용기가 솟았다. J형에게 연락했다.
“형, 결정했어. 함께 연극하자. 제 역할이 뭐예요?”
사실 엄마에겐 공부하겠다는 명목으로 절에 왔지만 지금까지 해온 행위는 알고 보면 ‘공부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게 맞다. 처음부터 누구처럼 무슨 시험에 합격하겠다거나 어디에 꼭 붙겠다는 대단한 목표는 없었다. 막연하지만 집중할 곳이 필요해서 집에 있던 소설책, 만화책 몇 권과 라디오 겸용 카세트를 가지고 들어온 곳이었다.
연극 연습은 수원 문화대학교. 왕복 다섯 시간.
눈 내리는 겨울 산길을 내려와 버스-길음역-수원역-학교.
돌아오면 산사는 벌써 어둑했다.
절살이는 오히려 집중을 불렀다.
오전엔 절에서 마음을 닦고 점심 뒤엔 하산.
겉으론 ‘공부하는 아들’, 실제는 ‘대사와 잠’.
“혁진아, 지난밤에 안 추웠어? 여기는 안채가 아니고 독채라 더 추워. 이불 좀 갖고 왔다. 이것은 생강차다.”
절을 경영하시는 노보살님의 미소만큼이나 생강차에서 보시가 느껴진다. 내가 있는 곳은 절 길목에 있는 공간에 마련한 일종의 요사채였다. 이런 이유로 신도나 보살님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산사에서의 동선은 나름 수행이었다.
3장 느릅나무 밑의 욕망
J형이 맡은 작품은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었다. 그는 연출과 아버지 에프라임 캐벗 역을 함께 도맡았고, 내게는 둘째 아들 ‘피터’를 제안했다. 작품의 축은 다섯 인물—가부장 캐벗, 전처소생 시이먼과 피터, 후처 소생 에번, 그리고 세 번째 아내 애비, 이들이 엮는 다섯 갈래의 욕망이 무대를 흔든다.
리허설 막바지, 한 신입생이 “에번은 밤일도 참 잘하지” 대사를 능청스럽게 던졌다. 그의 해맑은 눈웃음이 신입생답게 인상적이었지만 대사 처리엔 비꼬는 맛이 스며 있었다. 요즘 말로 막장에 가까운 세계, 누구도 선한 인간은 없는 세상, 이게 바로 이 극의 기본 톤이었다. 심지어 작품 끝 장면에서 애비의 출산을 축하한다는 명분의 파티 장면에도 마을 사람들의 축복 대신 비꼼과 조롱이 가득하다.
애비가 캐벗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네 부자의 관계는 이미 악화일로였다. 이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는 때는 오직 욕망이 거래될 때뿐. 형들이 캘리포니아로 금을 캐러 갈 여비를 마련해 달라고 하자 배다른 동생, 에번은 아버지의 돈을 훔쳐 건네고, 그 대가로 형들은 농장 상속을 포기하기로 약속한다.
농장을 떠나며 시이먼이 아버지 캐벗에게 내뱉는다.
“늙은 흡혈귀! 잘 있수!”
나의 배역, 피터도 격하게 덧붙인다.
“늙은 노랑이! 우린 가요!”
그리고 형제는 애비가 있는 방 창가로 돌을 던진다. 유리가 산산이 깨지며 “와장창” 소리로 이 집의 균열을 드러낸다.
아버지 캐벗을 무대 가운데에 두고 두 아들이 퍼붓는 온갖 비난과 욕설, 이 장면은 연출상으로도 중심축으로 아주 중요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이 부분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 갔다가 다시 올 수도 있잖아. 게다가 그래도 친아버지 아닌가?’라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기 때문이다.
“넌 지금 너무 착해. 더 모질게, 더 과장해! 그 거침이 이 집안의 언어야.”
나의 질문에 J형은 바로 대답했다.
스님은 해맑은 얼굴로 佛法(불법)을 전하라고 했지만, 연극 연습에서는 오히려 더 모질게 욕망을 과장하라 했다. 산사는 손을 비우라 했고, 무대는 손을 움켜쥐라 했다. 나는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했다.
되짚어 보니, 이 장면의 본질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끊어내기’였다. 오래된 굴욕과 박탈감, 상속을 둘러싼 증오, 그리고 애비의 등장이 촉발한 불안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그들이 던지는 말은 돌아올 여지를 남기는 인사가 아니라, 서로의 목을 조이던 끈을 가위로 잘라내는 행위다. 창문을 깨는 돌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상징, 집과 혈연, 신의 질서까지 깨뜨리는 선언이다. 이 해석에 닿자, 비로소 피터의 입에서 나가는 모욕과 발걸음의 속도가 내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
요컨대, 그 장면은 “언젠가 다시 보자”가 아니라 “다시는 얽히지 않겠다”는 폭력적 서약이다. 그 결을 붙잡았을 때, 욕설은 과장이 아니라 정확이 되었고, 퇴장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평일은 보통 연습 끝나고 그냥 헤어진다.
연습이 없는 금요일에는 뒷풀이가 있었고, 보통 토요일은 연습이 없었다.
다섯 명이 술자리에 있어도 술을 음식처럼 맛나게 먹는 사람은
1년 선배 H형(에번)과 나(피터)뿐이었다.
“아무리 에번과의 사랑을 증명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가 낳은 갓난아기를 죽일 수가 있어?”
“시이먼과 피터는 금광에 성공했을까?”
“가는 길에 돈을 다 날리지는 않았을까?”
“그럼 집으로 오겠네?”
부자(父子) 관계뿐만 아니라 이 부분도 논쟁의 요소였다. 이 내용을 갖고 안주 삼아 이야기하며 꽤나 오랜 시간을 마셨다. 늘 반복되는 우리의 토론이었다. 어떤 가정이길래 저럴까?
잠을 자러 절에 가는 밤길은 산악행군 그 이상이었다. 국민대학교 정거장에서
내려 삼십 분 정도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로등도 없다. 휴대용 플래시를 갖고 다녔다. 술이 너무 취해 정말 억지로 억지로 걸어서 절까지 왔다. 그리고 쓰러져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침 아버지, 어머니가 절에 오셨다. 면회 오듯 바리바리 음식을 싸가지고 오셨다. 방에 음식을 펼치고 맛을 보라고. 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약식을 입에 넣어주신다. 그런데 전날의 과음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방바닥에 널 퍼져 있는 속옷과 종이 등을 질서 있게 정리해 주신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살이 빠져 보인다. 공부를 좀 쉬엄쉬엄 해. 갑자기 무리하지 말고.”
아버지의 이 말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캐벗의 매질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겨울 햇빛 같은 온화한 아버지 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난 오히려 『느릅나무 밑의 욕망』의 불효자식들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주말이면 가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절을 찾았다. 절에서 공부 대신 대사를 외우고, 기도 대신 연기 연습을 하고. 그것이 나만의 수행이라고 믿는 아들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스님 말씀처럼, 아버지가 가시고 나면 내 마음 한켠이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빚이었다.
3월에, 전두환 정권은 ‘학원안정법’을 선포했다.
6시 이후엔 도서관 외에는 캠퍼스 어떤 공간에도 학생이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한 배우의 삼촌이 운영하는 S갈비집 한쪽을 빌렸다. 고기 냄새가 스민 연습장이었지만, 그 냄새를 가로질러 대사와 동선을 맞췄다. 강하게 유혹하는 향을 참아내며 우리는 묵묵히 견뎌야 했다. 연습 막바지엔 배우·스태프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장면 전환의 타이밍을 맞추느라 조명은 형광등 스위치를 켰다 끄고, 음향은 카세트테이프가 맡았다. 학원안정법은 리허설의 풍경까지 새로 바꿔 놓았고, 그 순간 알았다. 연극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절간에서도, 때로는 고깃집에서도, 마음이 있는 곳이 곧 무대다.
해프닝도 있었다. 예산이 바닥나던 날, 기획이 궁여지책으로 찾아간 S경찰서에서 제안이 왔다.
“전면 광고, 우리가 하겠습니다.” 수십만 원, 순간 환호했다.
“야, 이건 숨통이다.”
그때 다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대신 목줄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우리는 짧게 회의했고 더 짧게 거절했다.
“야, 광고는 고깃집 냄새로도 충분해. 권력 냄새는 패스!”
학원안정법으로 바뀐 풍경 속에서 공권력의 로고를 우리 팸플릿 맨 앞에 박는 일, 그건 또 다른 검열의 프롤로그였다. 우리는 돈 대신 자유를 택했다.
공연 날, 작품의 명성 덕분이었는지, 객석은 만석이었다.
무대 한가운데, 이층 양옥이 그럴듯하게 세워져 있다. 위층은 침실, 아래층은 객석을 향해 왼쪽에 부엌, 오른쪽에 거실이 열려 있다. ‘씨앗’이 올린 무대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세트였다. 못자국과 페인트 냄새마저 역할을 맡은 듯 또렷했다.
나는 피터로서 문틀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등장을 기다린다. 그전 공연들과 달리 막이 오르면 바로 출연, 기다림의 벌은 없다. 저 집에서 살아볼 몇십 분이 내게 허락되었다. 어둠 속에서 행복의 조명이 조용히 나를 향해 켜지고 있었다. 서부 카우보이 음악에 맞추어 농부인 피터는 멜빵바지에 괭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형 시이먼과 무대로 흥겹게 나온다.
그리고 피터의 대사.
“캘리포니아에서 땅을 갈면 밭고랑에서 금덩어리가 나올 거요.”
두 달 만에 새어머니 애비와 함께 집에 온 아버지를 피해 욕망을 찾아 피터는 형 시이먼과 함께 떠난다.
무대 퇴장 후, 편안하게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J형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낮고 묵직한 바리톤, 하지만 때로는 캐벗의 괭이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특히 혼자 십여 분을 독백하는 장면에서 빛을 발했다. 군더더기 없이 오직 말과 침묵만으로. 그는 순도 높은 배우였다. 다만 연출을 겸하고 있어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연기를 모른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달까?
H형은 원작의 에번처럼 스물다섯으로 보였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 깊게 가라앉은 눈빛, 입 안에서 굴리는 낮은 대사, 잘생긴 얼굴 위로 음울한 그늘이 비껴 있었다. 배역과 사람이 겹쳐지는 드문 순간이었다. H형의 무대 중에서도 이번이 가장 그럴듯했다.
애비 역의 배우도 외모부터 원작의 삼십 대 중반의 요염한 배우처럼 보였다. 이 세 명의 배우가 실제로 연극을 끌어가는 것이다.
『느릅나무 밑의 욕망』은 막장에 가까운 인간 군상을 펼치지만, 서사의 골격이 워낙 단단해 끝내 재미로 끌고 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치안관이 농장을 훑으며 말한다. “거참, 근사한 농장이군. 이런 거나 소유해 봤으면 좋겠군.” 청렴해야 할 입에서조차 욕망이 미끄러져 나오는 그 한 줄로, 연극은 조용히 막을 내린다. 무대 밖 현실도 다르지 않다. 연극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시험대 위에 올려보는 안전한 실험실이다.
내가 잠만 잔 줄 알았던 산사에서, 나는 오히려 가장 깊이 연극 속으로 침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집에서 J형과 통화가 닿지 않았다면, 내 연극은 어디로 흘렀을까?
‘피터’는 배역을 넘어 계절의 이름이 되었다. 그 계절이 내 호흡을 바꾸고, 연극에 대한 사랑을 깊게 해 준 시간이 되었다.
느릅나무 아래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내 마음의 ‘씨앗’은 더 나은 나, 더 맑은 행복을 향한 갈망이었다. 여러 욕망이 모여 뿌리가 되었고, 나는 그 위로 자랐다. 산사도 무대도, 모두 내 욕망의 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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