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좋아 (딸)

걷는 게 좋아 (나)

by 바람


10년 전 나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로 임신 중이었다. 흔히 말하는 고령의 고위험군 산모였다. 거기에다가 한참 태아와 산모를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 시기에 '임신성 당뇨'진단을 받았다.




임신성 당뇨를 진단받으면 떡볶이나 파스타, 튀김, 빵 등 맛있는 탄수화물은 철저히 제한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과일도 하루에 포도 8알이나 사과 1/3쪽, 바나나 1/2 개를 선택해서 한 번만 먹을 수 있다. 매 끼니에 단백질 100그램 정도는 반드시 챙겨 먹어야 했고 밥은 흰쌀밥 대신 현미로, 빵은 거친 통곡물 빵을 밥대신 1쪽 정도만 먹을 수 있다. 2~3개의 나물 반찬이나 샐러드를 꼭 함께 먹어야 했다. 고구마나 옥수수 등 혈당이 올라가는 간식은 작은 걸로 1/2개 정도만 허용됐고 우유나 두유도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서 하루 한 개만 먹을 수 있었다. 공복 혈당과 매 끼니 후에 세 번의 식후 혈당까지 하루 네 번은 손가락을 찔러서 혈당을 확인해야 했다. 식 후 세 번씩 가벼운 산책으로 혈당이 올라가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물론 혈당 조절이 안 되는 산모는 약을 복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혈당관리가 가능했다.


지금은 덤덤하게 쓰는 몇 줄이지만 그 당시 내가 겪었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무척 컸다. 특히 가장 큰 위기는 추석 날, 차례상에 올라가는 그 많은 음식들을 그저 눈으로 보며 철저하게 식사 조절을 할 때였다. 식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모성애로 참으며, 혹시라도 어른들이 걱정하실까 애써 웃어 보였다.

그래도 심각해지지 않고, 주어진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아니 오히려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고 하루 세 번 운동해야만 하는 시간을 건강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의 태교는 철저한 절식이었고 운동이었고 생존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대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내가 노력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데, 임신성당뇨 그까짓 것 당연히 버텨야 했다. 임신 전 나는 54kg이었고, 10달 후 출산 하루 전날 몸무게는 58kg이었다. 딸아이 출생 몸무게는 3kg이었고 양수, 태반 등을 1kg으로 치자면 임신 동안 내 몸의 체중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철저한 혈당 관리로 다행히 거대아 출산은 막을 수 있었다.


임신성 혈소판 감소증에 역아이기 때문에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고, 전신 마취의 수술이라 회복은 더뎠지만 출산 후 일주일 정도만에 임신 전 몸무게로 회복했다. 임신성 당뇨 때문에 맛있는 것을 실컷 먹지 못했지만 임신성 당뇨 덕분에 임신 후 체중관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당뇨식은 실제로 건강식이고 그 식습관을 유지한다면 살찔 일도 없다. 물론 지금은 철저한 당뇨식을 하지는 않지만 임신성 당뇨였던 산모의 상당수가 당뇨병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경을 쓰며 식사 조절과 운동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힘겨운 임신 기간을 나 혼자 보낸 건 아니었다. 지금 11살이 된 딸아이도 생존을 위해 내 뱃속에서 힘겨운 태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터였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친구들은 체중이 15kg 이상 늘었어도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작다며 산모에게 더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적게 먹고 운동을 했건만 아이가 무척 잘 크고 있으니 더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태아일 때부터 많이 먹는 아이가 있고, 적게 먹는 아이가 있다는 것! (과학적 사실 아니고 제 의견일 뿐입니다.)


태아 때부터 잘 크지 않는 아이는 출생 후 부모가 어지간히 노력해도 먹을 것에 관심도 욕심도 없다. 임신성 당뇨를 함께 겪은 딸아이는 태아 때 실컷 먹지 못한 어미의 마음과 통했는지 먹는 것을 무척 즐기고 좋아한다.


아기 때 이유식을 만들어 200ml의 통에 담아주면 한 번도 단 한 숟가락도 남긴 적이 없다. 숟가락, 젓가락에도 관심이 많아서 일찌감치 의자에 앉아 자신의 수저로 밥을 먹었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가서도 스스로 밥 잘 먹는 아이라 예쁨을 많이 받았다.


돌 때쯤 외식하러 가서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엄마 아빠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시키지 않아도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안에 쏙 넣었다. 너무 작은 아이가 하는 야무진 포크질에 주위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홈쇼핑에서 음식물 처리를 위해 남은 김밥이며 고기며 과일들을 하수구에 버리고 갈아 넣는 광고보고 "엄마, 저런 게 왜 필요해요?"라고 묻는 아이다. 학교에서 자기네 반이 '잔반이 제일 적은 반'으로 뽑혔다는데 자기 역할이 제일 컸다고 얘기해서 나를 또 놀라게 한다.


아기 때부터 병원에서 주사 맞을 때 딸아이는 울지 않는 편이고 고통을 잘 참고 인내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내가 '아프면 울어야 돼.'라고 말해 줄 정도였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 원장님께 전화가 왔었는데,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관절이 꺾여 잘 걷지 못하니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서둘러 병원에 갔는데 아이는 울기는커녕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왜 이렇게 미련하냐며 뭘 그렇게 참고 견디냐며 오히려 울지 않는 아이를 나무라며 내가 울었다.


그런 아이가 7살 때쯤 크게 운 적이 있는데, 큰 이모네 집에서 부모 없이 1박 2일을 보내고 온 뒤였다. 큰 이모네 가족과 인사하고 아이에게 잘 놀았냐고 물었다.


딸아이: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 거리며 슬픈 표정으로) 다시는 이모네 집에 오지 않을 거예요.


나: (내심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는 대답을 기대하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딸아이: (억울하고 서러운 표정으로) 고기 먹을 때, 큰 이모가 나한테 살코기만 줘.


비계보다 살코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알고 있는 언니가 딸아이도 그러려니 하고 챙겨준 모양이다. 어른이 건네주시는 음식을 군소리 못하고 잘 먹고는, 잘 놀았냐는 내 물음에 비계를 먹지 못한 서러움이 폭발했다. 차 안에서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러면서 배가 고프니 고등어 김치찜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며칠 전에는 저녁 식사로 아빠가 햄버거를 사 온다고 했다. 아이는 퇴근한 아빠에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아빠의 손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별말 없이 식탁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햄버거를 배낭에 넣어서 보이지 않았을 뿐, 아빠는 그런 딸이 귀여워 딸의 옆구리를 찌르고 장난을 치며 햄버거를 꺼내준다. 아이는 울면서 또 웃으면서 햄버거를 입에 넣는다. 목구멍이 아플 만도 한데 참 맛있게도 먹는다.


자려고 누우면 내일 학교 급식 메뉴를 줄줄 외우면서 즐거워하고, 아빠가 회식을 한다고 하면 혼자만 맛있는 거 드시고 온다며 샘을 내고, 학교에서 오자마자 저녁 메뉴가 뭐냐며 궁금해하는 아이의 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많이 먹기 때문에 소아 비만을 막기 위해 나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꾸준히 운동을 시킨다.


공부하는 아이가 지루해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보이면 산책하자고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다이소나 아트박스에 가자며 지하철 역 두 정거장을 걷게 한다. 걷는 동안 아이가 지루해할 틈 없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도착해서는 신중하게 필요한 것 하나만 고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걸어온다.

바람이 좋은 날, 노을이 예쁜 날은 조금 과장해서 아이에게 말한다.

"어머머~~~ 이런 날은 집에 있으면 안 돼.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바람이야. 콧구멍에 바람 넣으러 가자."

"어머머~~ 밖에 구름 봐. 분홍빛 구름이야? 오렌지 빛이야? 동화책에서 본 장면 같은데?" 하며 호들갑을 떨면 아이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산책길에 따라나선다. 주말이면 서울 식물원 야외 편의점에 가서 사발면을 먹자고 꼬드겨서는 줄넘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손뼉 치며 잘한다면서 실컷 땀을 흘리게 한다. 나의 치밀한(?) 꾐에 잘 넘어가는 딸아이는 많이 먹지만 많이 운동해서 보기 좋게 통통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어느 날은 문득 내가 아이를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와 놀아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과 산책 시간을 누구보다 즐기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을 엄마, 아빠로 만들어준 이 통통한 아이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나이 많은 엄마는 기를 쓰고 운동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