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를 돈 주고 산다고?

선물과 포장 중 어디에 정성을 들이나요?

by 바람


언니,
전시회 티켓 생겼는데
갈래요?"


그녀에게 초대장을 받기로 약속하고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의 남편은 백화점 총무팀에서 근무하신다. 덕분에 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나 작은 공연 등의 행사가 있을 때 몇 번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그녀는 한 번도 초대장을 그냥 내민 적이 없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쁜 봉투에 담아 선물처럼 전달해 준다. 이번에도 늘 그렇듯 고급스럽고 예쁜 봉투 안에 전시회 티켓 두 장이 들어있었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는 7년쯤 됐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딸아이의 생일을 우연히 알게 된 그녀가 선물을 보내준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서로의 생일에 작은 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의 선물 포장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선물 상자나 포장이 예쁘고 정성스러워서 내용물은 무엇일까 기대감을 키운다. 한 번은 실내화를 선물 받았는데, 담긴 상자가 실내화 값이랑 비슷할 만큼 멋졌다. 한 번은 포장 상자가 화려하고 예뻤는데, 그 안에 든 내용물은 다소 걸맞지 않아서, 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녀가 본질보다 포장에 정성을 들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포장에 돈을 쓰느니, 그 돈을 보태어 더 좋은 선물을 해주는 편이다. 내용물이 마음에 드는 게 우선이라 포장지는 생략하고 쇼핑백에 담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나 누구에게도 그런 편이다.

너무 화려한 포장에 지나친 기대감을 갖다가 선물에 실망하느니, 무심하게 포장된 선물을 기대 없이 받아보고는 좋은 내용물에 놀라기를 은근히 바랐다.


어렸을 때,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서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생일 3일 전이 할아버지 생신이었고, 생신 잔치 준비는 4형제의 맏며느리였던 엄마의 몫이었다. 할아버지 생신 후 3일 째인 내 생일은 그냥 평범한 하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4형제 중 장남인 집안에, 딸 셋 중 가운데인 나는 부모님께 뭔가를 사달라고 하면 안된다는 걸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그때 가정의 형편과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했다. 서운함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선물을 주고받는 게 익숙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포장을 중시하는 그녀와 실속을 중시하는 나는 7년째 선물을 주고받고 있다. 그녀는 한결같이 포장에 정성을 들인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도 돈을 들여 포장지를 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녀의 과한 포장에 그녀를 오해하기도 했다. 나 자신은 실속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껍데기에 공을 들이는 그녀는 겉치레가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받으면서, 나는 선물 받는 그 순간의 상황과 기분을 즐기게 됐다. 예쁜 포장지를 북북 찢어내는 묘한 쾌감도 있다. 내용물이 뭐든 간에 나와 딸아이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선물을 준비하고 포장했을 그녀의 마음을 외면했던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선물 받는 상황과 감사함을 즐기기보단 선물 내용만 궁금해하는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고, 거기에 어울릴 포장지까지 구매하여 정성 들여 포장을 한다. 달력 흰 종이나 이마트 쓱 배송 종이봉투를 포장지로 활용한 나로서 이것은 대단한 발전이다. 예쁜 포장지로 싸인 선물을 받는 그 순간이 그녀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더불어 따스한 마음과 정성을 들인 순간의 나 자신도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됐다.





그녀는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것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아니었다. 실속이 꽉 찬 야무진 사람이고 책임강이 강하고 배려심도 깊은 사람이었다. 포장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 건 나의 큰 실수였다. 한두 번 보고 사람을 판단한 건 더욱 큰 실수였다.


그 이후로 사람이든 상황이든 지켜보기만 할 뿐 '판단'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지켜볼 뿐, '그러니까 저렇구나'하는 판단은 너무나 주관적이고 틀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림,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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