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게, 고맙다는 말

by 박순동

겨울에게, 고맙다는 말

박순동


어느 날부터 아침 공기를 들이마실 때 겨울의 깊이가 조금 옅어졌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갑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날을 세우지 않았고 햇살은 창가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계절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번 겨울 동안 나는 멀리 가지 않았지만 많은 시간 속에 머물렀다.

눈 내리던 창가 앞에서 가만히 시간을 바라보던 저녁, 버스 창에 비친 얼굴과
괜히 오래 눈을 마주치던 귀갓길, 불 켜진 가게 앞을 지나며 잠시 걸음을 늦추던 순간들.

그날들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의 계절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은 늘 조용한 배경처럼 존재하며 무언가를 크게 바꾸지 않는 대신 사소한 감각들을 깊게 남긴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던 폐의 느낌, 적막한 길 위에서 또렷해지던 발자국 소리, 혼자 먹는 저녁의 온기, 그리고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주던 평온함.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겨울이 건네준 작은 문장처럼 받아 두었다.

이제 나무들은 다시 잎을 준비하고 물은 얼음을 떠나 흐르기 시작하며 햇살은 하루의 끝을 조금 늦추고 있다.

그러나 겨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은 어디론가 떠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접혀 기억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녹은 눈이 물이 되어 다른 길을 흐르듯 겨울의 날들도 다른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계절을 마음속에서 불러 본다.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 혼자 머물러도 괜찮았던 날들,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순간들.

그 모든 것 위에 작게 말을 얹는다.

고맙다고. 겨울은 대답하지 않지만 창가에 머문 햇살이 조용히 그 말을 받아 적는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다가 책 한 권을 덮듯 한 계절의 문장을 닫는다.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다음 시간 쪽을 바라본다.

26.2.27. 순동. 오늘로 겨울묵상 시리즈를 끝내며.

조용히 읽어 주신 시간에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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