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 허무를 마시는 오후
박순동
낮에 마시는 술은 어딘가 죄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솔직하다.
저녁의 술이 사람과 이야기의 온기로 따뜻해진다면,
낮술은 혼자서 마시는 생각의 그림자다.
점심 무렵, 낡은 간판 아래 막걸리집에 들어선다.
햇살도 나처럼 조용히 앉는다.
반쯤 열린 출입문으로 바람이 들고, 볕이 들고, 세월이 들고,
그러다 슬그머니 내 어깨 위에 앉는다.
술잔을 들기 전부터 마음은 이미 젖어 있다.
젊을 적엔 낮술을 보면 ‘패배’라고 여겼다.
할 일 없는 어른들의 허기,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의 손떨림.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앉아 잔을 기울이고 있는 요즘은,
그 술잔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안다.
살아보니, 먹고사는 일이 가장 어렵고
가장 지루하며, 가장 견디기 힘든 싸움이더라.
“그냥 산다”는 말 한마디가
어쩌면 가장 정직한 고백인지도 모른다.
낮술의 맛은 쓰지만,
그 쓴맛 속에 허무가 있고,
허무 너머에 또 다른 나날이 있다.
슬픔은 때로 고요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처럼,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청춘처럼,
그냥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안주 삼아 씹고 있을 뿐이다.
막걸리 잔을 들고 중얼거리듯 시구를 읊는다.
내 안의 신음이 한 모금 술에 실려 나간다.
이 술이 나를 치유하진 않더라도
조금 덜 외롭게 해줄 순 있겠지.
낮술은 언제나 날 위로한 적 없다.
다만, 내가 나를 버티게 했던 작은 휴전,
그런 오후가 있었다고—
조용히 적어둘 뿐이다.
25. 8. 2.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계현과 같이 가던 동태탕집 수련에서 낮술을 하였습니다.
이제 그만 제 마음에서 故 고계현 총장님을 놓아 주며, 이 연재를 끝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