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그리움
박순동
빌려 입은 헐렁한 옷처럼 나의 삶에서 사랑은 나름대로 체온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독감 앓듯이 영혼은 유행병처럼 외로움으로 몸살을 앓으며 세월을 휘어잡지 못하고 뜬구름처럼 고독에 질퍽거렸습니다.
세상이라는 게 별로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되던 즈음 사랑은 홀연히 내 손목을 잡고 꿈을 꾸게 하였습니다. 체온을 뜨겁게 유지하면서 복종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사랑의 존재 이유가 되었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자리가 환한 삶으로 빛날 때 세상은 살만한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와 존재를 지탱해주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사랑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눈멀고 귀멀게도 하여 세상을 한 가슴으로 담아내기도 하였지만 소월의 초혼(招魂)처럼 상사(喪事)로 망부석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사랑은 어리석음과 지혜를 같이 안겨주기도 하고, 실천을 의미하기도 하며, 우리 일상의 모든 경험이고 고행이기도 하며, 헌신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렇게나 치부되는 인간이 삶의 고통을 넘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랑이 에너지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겪는 모든 사랑이 저절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며, 사랑은 바람과 햇살에 살을 말리는 억새처럼 삶의 고통에 대한 치열한 자기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괴로움이 훗날 아름다운 추억이 되듯이 사랑은 그리움을 낳습니다.
나에게 그리움이란 인간에 대한 버릴 수 없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으며,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것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사랑의 만남과 헤어짐은 진정 그리움으로 표출되었고, 그리움은 사랑과 허무의 내면으로 다가갔습니다.
방치된 나의 추억은, 가슴 어느 모퉁이에서 세월이 휩쓸고 간 만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해후하게 하는, 어떤 형식이나 가식의 그늘 없이 온전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만남에 대한 정서입니다. 더 나아가 시(詩)를 통한 그리움은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능케 하여 황폐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며, 그리움은 지난날에 소중한 기억으로 정서와 사랑을 연계시켜 가슴에 따뜻한 추억의 불을 지펴주기도 합니다.
2025. 8. 29. 순동, 사랑과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