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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Oct 10. 2023

낮에도 별은 빛난다

 3화 말라버린 샘

   이층으로 올라온 재훈은 창을 열었다. 밖에 있던 불빛들이 다투어 들어왔다.

   마당에 멀쑥하게 서 있는 목련 나무까지 외로워 보였다. 아직 잎을 달지 못한 목련은 하얀 꽃등만 몇 개 밝히고 있었다. 어둠 저쪽에서 바람이 살살 걸어왔다. 4월의 바람은 부드러웠다.

   재훈은 두 팔을 깍지 낀 채, 한참 그렇게 밖을 보면서 있었다. 

   모든 것이 겉으로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듯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것은 외로움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했으며, 불안 같기도 했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 낯선 얼굴이 겹치고, 그 위로 지혜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가, 합쳐진 이상한 얼굴들이 어둠 저쪽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재훈은 머리를 흔들고 하늘을 보았다. 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두운 하늘에는 별이 딱 하나 보였다. 모두 땅으로 내려왔는지 뒷산 기슭까지 올라온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크게 내쉬고는 재훈은 창을 닫았다. 잠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재훈은 스위치를 올렸다. 반짝 불이 들어와 책상이 보이고, 침대가 보이고, 낯익은 것들이 모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은 재훈은 일기장을 펼쳤다.


     20xx년 4월 x일 목요일 맑음


    모르는 아저씨에게 처음 들어 본 나의 이야기.

    미친 사람 얘기라고 했는데도 너무 놀라는 어머니. 분명하고 뚜렷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말라 버린 우물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별까지 드문 오늘, 나는 외롭다.

    사막에 버려진 어린 왕자처럼…….


   여기까지 쓴 재훈은 일기장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천장의 사방 연속무늬의 칸을 세어 보다가 눈을 감았다. 아주 붉은색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꽃놀이를 하듯이 퍼졌다 모이고, 모였다 흩어지는 붉은 색깔들의 모임.

   사람이 많았다. 모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로 아버지도 보이고, 어머니도 있었으나 모두 말없이 걷고 있었다. 아버지인 것 같아 다가갔더니 초랭이 탈을 쓴 낯선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각시탈을 쓰고 걷기만 했다. 낯설었다. 무서웠다. 울고 싶었다. 목 안에서 ‘꺽꺽’ 이상한 소리만 나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은 자꾸 불어났고 발걸음도 빨라졌다. 재훈은 이리저리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휴지들이 낙엽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재훈의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져 돌아보았다. 지혜가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반가웠다.

   “일어나, 어서 가자고.”

   “가다니, 어디로 간단 말이야.”

   “모두 동해로 가는 거야.”

   “바다로?”

   “그래, 일어나. “

   “싫어, 저 사람들이 싫어. 난 가지 않을 테야.”

   “웃기지 마. 우리 모두 동해로 가야 한다고.”

   지혜는 가지 않으려는 재훈의 손목을 꽉 잡고 소리쳤다.

   그런데 다시 보니, 지혜가 아니라 큰 황소였다.

   “싫어! 난 가지 않겠어.”

   재훈은 달아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으악!”

   눈을 번쩍 뜬 재훈의 온몸은 젖어 있었다. 재훈은 일어나 앉아 시계를 보았다.

   밤 한 시였다.

   ‘이상한 꿈이야. 모두 탈을 쓰고 지혜는 사나운 황소가 되어 나타나고, 무서워,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재훈은 목이 말랐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고는 조심조심 식당으로 내려갔다.

   컵 가득히 물을 부어서 벌컥벌컥 마시고 나올 때였다. 안방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나왔다.

   “아직 안 잤어?”

   “자다가 목이 말라 내려왔어요, 어머닌 어떠세요?”

   “건강한 줄만 알았는데, 조그만 일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숨이 차구나, 한숨 자고 나니 괜찮아, 아까 너도 놀랐지?”

   변명하듯 어머니의 말이 길어졌다.

   “들어가 주무세요. 나도 올라갈게요.”

   “그래라……. 저, 재훈아.”

   “네, 어머니.”

   재훈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어머니를 보았다.

   “아, 아니다. 어서 올라가 봐.”

   누웠는데도 재훈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재훈은 잠이 많았다. 누웠다 하면 자고, 아무리 일찍 잠들어도 늦게 일어났다.

   어머니는 항상, 재훈은 나무랄 것 없는데 잠이 많아서 탈이라고.

   그렇게 많던 잠이 오늘은 왜 쏟아지지 않을까? 그 생각은 어제 돌아오면서 만났던 아저씨 생각으로 이어졌다.

   ‘난 네 외삼촌이야, 두려워 마,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어. 널 무척 보고 싶어 해.’

   귓가에 빙빙 돌며 재훈에게 소리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미친 사람.”

   재훈은 크게 내뱉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놀랄까?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져서.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야. 난 어머니가 낳은 아들이잖아.’

   방금 꾼 꿈을 다시 생각하려 했으나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무서워 가슴이 서늘했던 기억밖에 없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는 변함이 없었으나, 방에 있는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도, 마스코트 인형 고양이 치로까지, 낯설었다.

   얼마 후 재훈은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언제나처럼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그릇들의 부딪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로 다시 하루가 밝아 왔다.

   재훈은 머리가 약간 무거운 듯했으나, 평소처럼 일어나 변함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누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아버지와 선영 누나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미영 누나가 크게 켜 놓은 빠른 템포의 K팝이 식당까지 흘러나오고, 엄마는 따뜻한 음식을 식탁 위에 말없이 차리고 있었다.

   변함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재훈은 아침을 먹은 후, 학교를 향해 집을 나섰다.

   교실은 여름 바다처럼 출렁거렸다.

   짝짝짝, 신난다, 욱시글 득시글.

   아이들은 파도가 되어 여기저기서 출렁거리다 하얗게 거품을 일구곤 제자리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말씀하지 않아도 기쁜 소식은 먼저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건너와서 활짝 핀 꽃이 되었다.

   “자, 조용히들 해요. 내일은 야외 학습일입니다.”

   아이들은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얀 꽃으로 눈길을 끌던 운동장의 라일락이 어느새 파란 잎사귀를 가득 달고 푸른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재훈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등나무가 있는 쉼터에 앉았다. 왠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얘, 재훈아!”

   지혜가 재훈을 보고는 뛰어왔다.

   “넌 내일 야외 학습일인데 왜 빨리 집에 가지 않았어?”

   “요즘 그런 기분이 아니야.”

   지혜도 재훈의 곁에 앉으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사실 나도 그래,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 것 있지. 사춘기일까?”

   “나 먼저 갈게.”

   재훈이가 힘없이 일어섰다.

   “같이 가.”

   지혜는 길게 두 갈래로 묶은 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지혜 집은 건강 약국 앞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내려가고, 재훈은 곧바로 올라가 두 번째 집이니 이웃이나 다름없었다.

   “영선은 좀 어때?”

   “좀 나아진 것 같아. 피아노 학원에도 나오고. 그런데, 재훈이 너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무슨 일이 있지?”

   “일은 무슨 일…….”

   재훈은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려다가 관두었다.

   “사실은 말이야, 며칠 전에 이상한 아저씨를 만났거든.”

   “이상한 아저씨라니?”

   “두 번 만났는데, 한 번은 그냥 헤어졌고 두 번째는 날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니? 친엄마가 따로 있대. 나를 낳아 준 엄마가 말이야.”

   “헐, 무슨 말이야.”

   지혜도 어이없다는 듯이 재훈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글쎄 말이야, 난 미친 사람이라고 상대도 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엄마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재훈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섰다.

   입을 다물지 못한 지혜가 재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선 말했다.

   “재훈아,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 엄마와 넌 너무 닮았어. 쌍꺼풀진 눈 하며 오뚝한 콧날까지, 똑같다고.”

   “그래,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이상한 꿈도 꾸고, 괜히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그 아저씨, 정신이상자 거나 네가 너무 잘 생겨 장난치고 싶어 그런 걸 거야.”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어, 착하게 보였거든.”

   “그건 모르지. 나쁜 사람일수록 탈을 쓰는 거야, 탈.”

   그랬다, 탈이었다. 재훈은 언젠가 꿈에서 본, 초랭이 탈을 쓴 아버지와 각시탈을 쓴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 소름이 쫙 돋아났다.

   어느덧, 둘은 신호등 앞에 섰다. 초록 불이 들어오자, 재훈과 지혜는 말없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재훈아, 쓸데없는 생각 마. 만일 그렇다면 여태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있겠어? 내일은 야외학습일이잖아, 우리 1학년 아이처럼 즐거워지자.”

   “장소가 범어사라고 했지?”

   “그래, 점심 먹고 대웅전 앞에서 만나 사진도 찍자. 이제 우리는 추억을 남길 나이야. 힘내,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지혜와 헤어진 재훈은 땅만 보고 걸었다.

   “재훈이 아니니?”

   어머니가 두 손 가득 시장 봐온 물건을 들고 뒤에서 불렀다.

   “어머니!”

   “왜 이렇게 늦었니? 수남 엄마가 집에 오지 않았다면, 내일 야외 학습 가는 것도 모를 뻔했잖아.”

   재훈은 웃으며, 어머니 손에 든 것을 받아 들었다.

   마당에는 나무 그림자가 길게 돌계단까지 늘어져 있었다. 해님이 서쪽으로 가면서 현관의 큰 유리창에 햇살을 쏘아 재훈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목줄을 단 진세가 재훈을 따라오다가 줄이 닿지 않자, 그 자리에 서서 컹컹 짖었다.

   ‘그래, 내일은 밖으로 나가는 날이야. 즐거운 것만 생각하자.’

   재훈은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사 온 것들을 이것저것 헤쳐 보며 짐짓 즐거운 척했으나, 마음은 말라 버린 샘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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