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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자 Oct 21. 2023

낮에도 별은 빛난다

10화 별이 된 어머니

  “따릉 따릉 따르릉, 따릉 따릉 따르릉.”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2층까지 크게 들려왔다.

  재훈은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급하게 나가는 소리도 났다. 11시가 훨씬 넘은 밤이었다.

  배가 고팠다. 식구들과 둘러앉아서 밥을 먹어 본 지도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반항이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재훈이가 부엌에 가면 언제든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깔끔하게 상을 차려 두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거실엔 불이 환했고, 선영 누나와 미영 누나는 마주 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재훈이가 내려가자, 미영 누나가 쳐다보았다. 말없이 식당에 들어간 재훈은 물을 마시고 나와 버렸다. 식탁은 어질러져 있었고, 밥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서운했다. 까짓 한 끼 굶으면 어때.

  미영 누나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재훈을 불러 물었다.

  “넌 걱정도 안 되니?”

  “뭐가?”

  “엄마가 병원 응급실에 있단 말이야.

  “응급실, 왜?”

  재훈은 그때야 누나 곁에 앉았다.

  비로소 절에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밥도 먹지 않고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며 어머닐 기다리던 재훈이가 아니었던가?

  그날 이후, 어머니는 이웃집 아주머니보다 더 멀리 있었다. 낳아 준 엄마가 진짜 어머니라고 생각했기에 키워 준 어머닌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낳으면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알게 된 날인가? 그 때문에 또 얼마나 슬픈 날이었던가? 가려져 있던 안개가 걷히면서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재훈은 또 얼마나 많이 울어야 했던가? 낳아 준 엄마를 꼭 찾고야 말겠다는 기대마저 무너져 버린 잔인한 날이었다.

  “절에서 내려오다가 쓰러지셨대. 이제야 깨어나  연락이 왔었어. 아빠와 큰누나가 병원으로 갔어.”

  선영 누나가 설명했다.

  “이게 다 네 탓인지도 몰라.”

  미영 누나가 재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랬다, 재훈은 어머니의 아픔을 심하게 건드린 몹쓸 아이였기에 선영 누나의 말을 듣고 멍해 있었는데, 미영 누나의 원망을 듣자,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처럼 아득해졌다.

  “얘, 재훈이가 엄마를 속상하게 한 것이 뭐가 있니? 엄마는 우리 때문에 더 심한 고통을 받았으면 받았지.”

  “무슨 소리, 언니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그런 말 마. 나도 알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재훈은 돌아서서 마당으로 나왔다. 하얀 구름이 달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오늘이 보름달 뜨는 날임을 기억하는 재훈은 구름이 미웠다.

  ‘미영 누나 말이 맞아.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어머니와 눈이 마주쳐도 외면했던 일, 비 오는 날 찻길에 뛰어들어 놀라게 했던 일, 공원에서 배회하다 담을 넘어 다리를 다친 일, 모든 일에 반항하고 제멋대로 행동했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재훈이가 손을 내밀면 어머니가 웃으며 저쪽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곧 나을 거야. 엄마니까.’

  재훈은 두 손을 모았다.

  ‘부처님, 어머니를 살려 주세요. 그동안 제가 잘못했어요. 꼭 살려 주세요.’

  하늘을 우러러보며 재훈은 허리를 굽혔다.

  “어머니만 살려 주신다면 매일 절에 가서 엄마보다 많은 절을 할게요. 부처님 꼭 살려 주세요. 관세음보살.”

  부처님 가사 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빌고 또 빌었다. 어머니가 평소에 부르듯이 관세음보살을 되뇌면서…….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늘 가득 덮고 있는 구름은 어머니가 덮고 있을 병원의 시트 같다고 생각했다. 구름 속에 감춰진 별처럼 어머니도 별만큼 많은 한을 가슴속에 심어 두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재훈의 콧등이 시큰해 왔다.

  재훈이 마당의 정원석에 앉아서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미영 누나가 나왔다.

  “재훈아,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누나!”

  재훈은 누나 품에 안겨서 실컷 울고 싶었다. 누나 품에 안긴다는 것이 누나보다 큰 재훈이 누나를 싸안은 모양이 되었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별 하나가 고개를 내밀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과를 보고 전화를 주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

  선영 누나는 거실에 없었다.

  재훈과 미영 누나는 의자에 앉았다. 미영 누나는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 누웠다.

  전화벨이 새벽을 가르듯 요란하게 울렸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재훈이에요. 어머닌 어떠세요?”

  “이제 막 입원실로 옮겼다. 너희들은 걱정할 것 없다. 그럼…….”

  힘없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재훈도 천천히 수화기를 놓았다.

  “어떻다고 하시니?”

  “입원실로 옮겼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

  날이 밝았다.

  함안에 계시던 할머니가 이른 아침에 혀를 끌끌 차면서 올라왔다.

  “아이고, 내가 죄가 많은 게지,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늙은 시에미보다 아픈 곳이 많으니, 원.”

  그리고, 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며 쌀을 씻어 아침 준비를 하고, 병원에 가져갈 깨죽도 보온병에 담았다.

  선영 누나는 학교에 갔고, 할머니와 미영 누나 그리고, 재훈은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쓰고, 자는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거꾸로 달린 링거병에서 하얀 액체가 똑똑 떨어져 어머니 팔뚝으로 스며들었다.

  재훈은 여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 손을 잡아 보았으나, 그 손은 싸늘했고 힘이 없었다.

  ‘일어나기만 하세요. 다시는 애태우지 않겠어요. 네, 어머니.’

  재훈은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갑자기 어머니의 호흡이 빨라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달려오고, 간호사는 모두를 내보냈다.

  어머니는 다시 수술실로 옮겨졌고, 모두 말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을 때, 수술실 문이 열렸다.

  “운명하셨습니다.”

  나이 지긋한 의사가 나직하게 말하고, 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어머니!”

  하얀 천이 덮인 어머니 시신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재훈은 달려가 하얀 시트에 얼굴을 묻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버지도 조용히 재훈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흐느끼고 있었다.

  장례식 날에는 비가 내렸다. 하늘도 어머니의 인생을 서러워하였다.

  어머니는 선산에 묻혔다. 상여 뒤를 따라가는 재훈은 다리가 불편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누나들의 치맛자락에는 슬픔이 치렁치렁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사업을 벌여 놓고 걱정만 안겨 줘서 먼저 가게 했다고 서러워했다. 할머니 한숨 소리는 거의 울음이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사실을 재훈은 깨달았다.

  배고프면 항상 따뜻한 밥을 준비해 주고, 때 묻은 옷 빨아 주며, 잘못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던 사람, 화가 났을 때 그 분한 마음마저 받아 주던 사람, 아플 때는 같이 밤을 새우며 더 아파하던 사람, 기쁨은 두세 배로, 슬픔은 반으로 함께 한 사람, 집에 돌아오면 있을 자리에 있는 물건처럼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어머니, 바로 어머니였다.

  ‘내 어머니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다니……. 어머니는 추운 땅속에 묻혀서 혼자 외로워하고 계시는데…….’

  재훈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과 많은 날을 속상하게 해 드린 것에 대한 후회로 점점  말이 없어졌다.

  어머니가 없는 집 안은 구석구석 어느 곳이나 허전했고, 추웠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으나, 햇살은 아직도 뜨거웠다. 학교에서는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피곤이 밀려왔다.

  집안 살림은 할머니가 맡았다. 할머니는 아예 짐을 싸서 부산으로 오셨다.

  재훈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와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어머니께 못다 한 효를 할머니에게 다해 드리겠다는 마음이었다.

  누나들도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기가 죽어 있었고, 우울해 보였다.

  아버지는 불경기 때문에 사업을 벌여 놓은 것이 순조롭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할머니 앞에서 걱정하면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사업이 그렇게 힘들면 농사나 짓지, 그렇게 힘든 걸 왜 하노?”

  “농사도 아무나 짓는 줄 아세요? 나는 서류나 만질 줄 알지 농사일은 하나도 모른다고요.”

  “그 어려운 공부도 했는데, 무슨 일을 못 할까? 땅은 정직한 거야. 속이지도 않고, 심은 대로, 가꾼 대로 거두기 마련이란다.”

  “요즘 같으면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아버지는 말투가 거칠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고 급하게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재훈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항상 늦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와 거실 의자에 누워 있었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무척 초조한 모습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옜다, 네 사업이 그렇게 힘들다는데 내가 땅문서만 손에 쥐고 있으면 되겠나? 부디 이것으로 네 사업이 불같이 다시 일어나길 빌 뿐이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아버지 목덜미가 벌겋게 보였다.

  “그래, 어서 나가 봐라.”

  아버지는 차에 시동을 걸고는 급하게 떠났다.

  재훈은 할머니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가 물었다.

  “할머니, 제가 심부름할 것 없나요?”

  “없어, 큰누나가 학교 갔다 오면서 시장을 봐 왔단다.”

  큰누나가 식탁에 앉아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나도 도와줄까?”

  “아니야, 넌 올라가서 공부하도록 해. 6학년이면 할 일이 많잖아.”

  “그렇게 해라. 사내자식은 부엌일보다 글을 읽어야지.”

  할머니가 웃으며 재훈을 바라보았다.

  재훈은 2층으로 올라가면서 큰누나의 부드러운 표정을 봤다. 모두 날개를 잃은 새가 되어 기가 죽어 있을 때, 큰누나는 동생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할머니 손이 가지 못하는 학용품을 챙겨 주었고, 용돈이랑 학원비를 제때 챙겨서 어머니가 있을 때처럼 편안했다.

  그러나, 재훈은 갑갑하고 답답했다. 미영 누나가 한 말이 자꾸만 뾰쪽한 가시가 되어 마음을 긁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엄마가 병이 난 거라고.”

  저녁을 먹은 후, 재훈은 할머니께 얘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는 이미 져 버리고 노란 가로등 불이 별처럼 달려 있었다. 큰길로 나오자, 자동차 불빛이 눈이 부셨다.

  “재훈이 아니니.”

  짧은 단발머리를 흔들며 재훈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은 영선이었다.

  “오랜만이야. 네 소식 지혜한테 들었어.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넌 어때?”

  “괜찮아. 백화점에 갔다가 엄마는 들어가고, 준비물 살 것이 있어서 문방구로 가는 길이야.”

  “따라가 줄까?”

  “영광인데. 인기남 재훈이가 함께 가 준다면…….”

  영선은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아직 엄마 생각에 슬프겠지. 돌아가시고 나면 그리워해도 알기나 하니? 엄마랑 즐거웠던 추억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야. 난 너무 방황했었지. 새엄마는 나의 방황을 부채질했고. 하지만, 냉정해야 해.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다 죽는 거라고 신부님이 말씀하셨어. 하늘나라에도 필요한 사람을 먼저 데려간대. 네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 거야.”

  재훈은 영선의 위로가 고마웠다.

  영선이 방황할 때, 재훈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는데, 영선은 재훈에게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임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재훈은 그때 머리로 말했고, 영선은 가슴으로 재훈에게 충고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너무 속상하게 해서 가슴이  아파.”

  재훈은 눈물이 핑 돌아서 말을 더하지 못했다.

  “미안해. 내가 위로한다는 것이 널 울게 했구나.”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친 재훈은 멋쩍게 웃었다.

  어느덧, 문방구 앞에 도착했다. 영선은 들어가 준비물을 사서 나왔다.

  영선이가 손에 든 것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린 죽음을 일찍 경험한 아이들이구나. 그래서 슬픔도 더 빨리 배우게 되었고…….”

  영선이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죽음, 눈물 같은 낱말을 중얼거려 보다가 또 다른 양면인 삶과 행복이란 아름다운 말도 생각해 보았다.

  ‘그래, 우리가 슬픔을 모른다면, 진정한 기쁨도 알 수 없을 거야.’

  밤하늘에 반쯤 잠겨 있는 달이 차갑게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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