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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김 Jul 04. 2023

여여하게 살어리랏다

이번 생엔 달팽이로 태어날 걸 그랬지

요즘처럼 ‘빠름빠름’이거나 ‘카톡카톡’울려대는 세상에선 어떻게 사는 게 소확행일까?

빌어먹을 ‘빠름빠름’을 내세운 건, 도대체 누구시길래? 빠름의 거품으로 가득 찬 이놈의 디지털 세상을 어찌할거나? 

 그렇지 않아도 빨리빨리에 치어서 숨막힐 지경인 데 말이다. 직장에서 업무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출퇴근시간에도 온통 세상은 빠름투성이고, 빨리빨리 스피드판이다. 출근길이든, 이동중에도 경차는 물론, 지프차나 트럭도, 버스도 무조건 미친 듯이 달려댄다. 안전거리 위반에 신호무시, 칼치기, 무작정 끼어들기, 난폭운전 등 이 세상에 벌어지는 온갖 추태들이 쇼를 벌일 정도로 난장판이다.

 쌍이로구 얻는다면 무엇을 얻기에, 또 잃는다면 얼마나 잃어버리겠는가? 삶 자체가 잃거나 얻거나,  잃는 것이라면 지나가는 시간일 테고, 얻는 거라면 ‘세월아 네월아’아니겠는가? 

 어쩌면 인생은 얼마나 빠르게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쿨하게 사는 게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서나서나 골목길이나 돌담길 소달구지 굴러가던 옛살라비 산골에서 싸드락 싸드락 살아간들 어떠리? 차라리 ‘달팽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같은 생각이 날 지경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 햇살이 상쾌한 봄날, 마당에서 커피타임을 마치고 난 후였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갑작스레 땅에 무언가 작고 동그란 것이 움직였다. 궁금해져서 다가서보니, 그것은 아주 작고 이국적인 무늬를 가진 달팽이였다. 그래서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는데, 달팽이는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나를 향해 기어오는 게 아닌가. 

 "안녕! 달팽이씨, 어딜 그리 가세요, 아니 그렇게 천천히 가다간 몇십년은 걸릴 것 같은데...?”나는 약간의 놀라움에 멈칫 농담조로 물었다. “그야 집으로 가는 중, 난 천천히 가지만, 중요한 건 도착하는 거지, 속도가 아니에요, 근데 당신은 무슨 일로 왔어요?”달팽이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곤 나지막이 말한다. "나야 뭐, 힐링하러 왔지요. 달팽이씨! 근데, 어떡하면 노예같은 삶이 아닌 자유인처럼 살 수 있나요?” 그러자 달팽이도 대꾸했다. “그런대로 한세상인데, 뭘 그리 심각하죠.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시간의 지배자로 자유롭게 살아가면 그만 아닌가요, 아저씨네 세상에선 나처럼 사는 맛을 모를 테니까. 시간나면 아저씨도 이슬차나 한잔 드시고 가세요”달팽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돌담길 위에서 산들바람 탓일까, 달팽이는 마음  속으로 행복한 듯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게 ‘카톡카톡’거리는 동안, 달팽이는 저만의 나나랜드인 호젓한 돌담길의 즐거움을 잘 아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누구나 각자의 색깔대로 살아가기 마련이겠지만, 달팽이처럼 살아가야할 이유 하나쯤 더 생긴 것 같다. 

 정말이지 나는 왜 달팽이처럼 소소행을 모르고 살았던 걸까? 이젠 무념무상 속에 제멋에 겨운 달팽이같이 살아가면 어떠리? 시위적 시위적거리면 어때서? 세월이 아무리 화살 같아도 감성 철철 넘치는 달팽이처럼 여여행의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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