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것들

by 이든

살면서 받는 모든 글을 수집하는 편이다. 10년째 이어지는 친구의 생일 편지, 지나간 연인의 연애편지, 주로 이별의 순간에 건네받는 롤링페이퍼, 학창 시절 친구와 몰래 주고받던, 영양가 없지만 단지 재미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던 작은 쪽지들, 나를 위해 준비한 식사 위에 놓인 맞춤법 틀린 아빠의 메모까지도. 그러다 보니 서랍은 어느새 꽉 차서 열고 닫기가 버거울 정도였으므로 더 이상은 정리를 미룰 수 없게 됐다.


제대로 된 정리란 원래, 기억 속에 묻힌 것들을 끄집어 내어 이게 무엇이었는지를 도로 상기하는 일이다. 이 정리를 끝내 미루고 싶었던 이유다. 지나간 것들을 상기하는 일은, 그때의 것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음을 선명하게 목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들 중 상당수의 발신인의 현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과, 또한 앞으로 언젠가(되도록 먼 미래이길 바라지만) 내 곁에서 사라질 이들의 남은 시간에 대해 가늠했다.



삶이란 혼자서 버스를 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각자에겐 서로 다른 자기만의 속도와 목적지가 있고, 그 과정에서 우린 같은 버스에서 만나 인연이 될 수도 그러다 다른 어떤 버스로 환승을 하여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 특별히 슬퍼할 일도, 아쉬워할 일도 아니라고. 그러나 살수록 그리운 것들이 늘어만 가는 건 왜인지.



상갓집에 다녀온 어떤 날의 아빠가 떠오른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친척 할아버지의 장례였다. 나는 얼굴조차 떠올릴 수 없지만 아빠에겐 외삼촌 되시는 분이라고 했다. 하룻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돌아온 아빠에게선 짙은 술 냄새가 났다. 거실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은 아빠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혜주야 아빠는 그분 청년 시절이 여즉 생생하다, 생생하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게 될까. 아마도 느지막한 오후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여는 게으른 하루를, 의미 없이 물처럼 펑펑 쓰던 시간을, 흘러가는 계절의 공기를.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엔 한 치 앞을 몰라 불안했던 젊음을, 또 그보다도 훨씬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그날 밤, 아빠는 돌아가신 외삼촌이 슬펐고 나는 아빠의 흰머리가 슬펐다.

내가 만난 모든 것들이 쉬지 않고 나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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