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는 사람

by 이든

'잠을 잘 잔다'는 건 아마도 내 평생의 숙제일 듯하다. 왜냐하면 나는 허구한 날 걸핏하면 지독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닥 길다고도 그렇다고 이젠 마냥 짧다고도 하기 애매한 스물 일곱의 인생을 대략 회고해보자면, 내가 띄엄띄엄이나마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은 대략 7-8세 정도다. 나는 그 때에도 잠을 잘 못 잤다. 낙후되고 오래된 건물이었던 탓에 바닥이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거실에 펜을 떨어트리면 한 쪽으로 또르르 굴러가버리곤 했던 오층짜리 낡은 빌라에 살던 그 시절. 나는 남동생과 같은 방에서 나란히 같이 잤다. 아마 기억하는 한, 내가 동생보다 먼저 잠들었던 날은 단언컨데 몇 년을 통틀어 단 5일도 채 되지 않았을 거다. 어떤 날은 동생의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러워서(얘는 심지어 짜증나게 이도 갈았다.), 또 어떤 날은 이불이나 잠옷의 촉감이 거슬려서, 또 다른 날은 그 시절 한창 유행했던 빨간 마스크 괴담이 하필 밤만 되면 떠오르는 바람에(우리 집은 1층이었는데 빨간 마스크는 무려 3층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해서 내 공포심은 아주 극에 달했다.) 나는 항상 잠을 설쳤다.


집에서도 이렇게 잠을 잘 못잤으므로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더더욱 잠을 못 자는 건 매우 당연한 수순이었다. 명절에 할머니댁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모든 친척들과 사촌들이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잠꼬대를 하고 이불을 둘둘 말거나 혹은 걷어차는 일련의 과정들을 그저 새벽 내내 혼자서 말똥말똥 지켜봐야 했다.

조금 더 커서 교복을 입게 되자 야영이나 수학여행과 같은 외박을 필수로 수반한 이벤트는 점점 더 많아졌다. 우리 오늘 밤새 떠들자,고 했던 친구들은 항상 먼저 잠들었고 그 과정에 제법 익숙해진 나는 '누구야 자?' 라는 물음을 굳이 던지지 않고도 그들의 대답없는 숨소리 만으로 이 방에 또 혼자 맨정신이란 사실을 익숙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땐 휴대폰 같은 것은 당연히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단지 홀로 깨어있는 채로 행여나 옆에 누운 평온한 숨소리의 주인들을 깨울세라 조심하며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누워있는 게 전부였다. 다들 수면의 세계로 떠난 불 꺼진 고요한 방에 혼자 남아서 왜 나는, 아니 나만 이렇게 죽어라 잠이 안오는 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그저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것. 그건 꽤 지루하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숱한 불면의 날들을 보냈으면서도 도통 몰랐던 잠 못 자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십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타고나길 보통보다 조금 예민한 성정을 지녔다. 예고없이 큰 소리가 들리면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길을 가다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걸면 간혹 말을 건 그 사람이 미안해하며 사과할 정도로 깜짝 놀란다. 글씨를 쓸 때 펜을 쥐면 자라난 손톱이 손바닥에 닿는 게 거슬려 항상 바짝 짧게 깎았던 것은 어느새 습관이자 미적인 취향이 되었다. 관련있는 얘기인진 모르겠으나 이러한 성격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누군가에게 완전히 마음을 여는 데에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유독 선호한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참 세상 살기에 피곤한 성격을 가졌을까.


어쨌거나 잠자리에 이렇게나 유독 민감하니,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자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십대의 문턱을 겨우 막 넘은 시점, 나는 아주 희한한 경험을 한다. 내게도 같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먼저 잠든 타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처음으로 별로 외롭지 않았다. 이 사람이 잘 자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기분. 아마도 난생 처음 겪은 감정의 종류와 부피가 아니었을까. 심리적 안정감은 청각과 촉각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부터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타인과 부대끼며 함께하는 것이 유난히 서툴고 불편했던 나는 그 시기부터 미세하게나마, 아주 조금씩 그런 것들이 편해졌다. 함께 호흡하기, 공간을 공유하기,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기. 뭐든 타인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단 하나의 관계로 인한 경험만이 변화의 유일한 원인은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세상 예민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사람은 단지 잠만 잘 못 자는 게 아니었던 거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현재, 나는 예민한 사람으로서 이 복잡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 사람, 사람들과 스치고 부딪히며 사는 것에 어느덧 꽤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가끔 스스로가 기특하다.

비록 나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자고 앞으로도 혼자인 시간을 절대적으로 선호하겠지만. 그건 아마도 끝까지 변하지 않을, 그래서 가끔은 미워하고 가끔은 사랑할 나의 고유한 특성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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