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임용고시에 떨어진 후, 아빠의 방 문 앞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어쩌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를 위해 소모했을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울었다. 아빠는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듣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진짜로 괜찮은 사람은 괜찮다는 위로를 받지 않는다.
기억이 닿는 모든 세월을 통틀어, 내가 어릴 적 한 번쯤 꿈꾸었던(꿈이라고 말했던) 직업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바이올리니스트, 변호사, 음악 프로듀서, 작가, 광고 카피라이터 그 외 다수.
그러나 내가 이 직업들 자체에 진심으로 매료되었다기엔 어폐가 있다. 이제 와 깨달은 점이지만 직업들의 이름은 나의 '진짜' 꿈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청소년기 대부분의 시절 동안 세상이 보기에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저 정도면 소위 '있어 보인다'(쓰고 보니 더 유치한 표현이지만 달리 뭐라고 대체할 말이 없다)고 평가받을 만한 사람. 그러니 이 직업들은 나의 허영심을 애매한 재능과 흥미로 적당히 포장하여 내놓은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신체와 정신의 성장과 더불어 청소년의 자아중심성을 잃어간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내가 생각보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존재라는 사실을. 때마침 교사가 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절대로 선생님은 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공표한 적이 있었다. 여전히 그보다는 더 흥미로운 직업을 갖겠다는 포부와 오만함을 가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수시 원서 6장 중 5장을 국어교육과에 지원했다.
어떤 직업이 더 좋은지 아닌지 같은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죽을 만큼 싫었단 말도 아니다. 나는 국어를 아주 좋아했고, 국어교사는 내게 잘 맞는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정말 재밌을 것도 같았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말하려는 건 그저, 내 인생의 흐름에 대해서다. 나는 28년에 걸쳐 내가 선망했던 타이틀을 하나씩 포기해야 했다. 자신의 평범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꽤나 속이 쓰린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탐탁지 않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 합리화에 몰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이솝 우화에는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가 나온다.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한 여우는 포도를 먹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는다. 결국 여우는 '이 포도는 무척 신 게 분명해. 저런 걸 누가 먹겠어!'하며 포도를 깎아내린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트집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열등감과 질투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나는 포도에 손이 닿지 않는 여우처럼 굴었다. 생각해 보니 저거 그렇게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그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직업은 천직이어야만(천직으로 포장되어야만) 했다. 이 선택이 결국 '난 놈'이 아니었던 내가 현실과 타협한 결과라는 것을 들키기 싫었다. 나는 대학 시절 동안,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내내, 얼마나 교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열심히 되뇌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의 내가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원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마음 한편에 이에 대한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내내 무시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실패는 그렇게 버티던 마음에 금을 그었다. 그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버스로 대략 한 시간가량이 걸리는 중학교에서 기간제 근무를 시작했다. 계약이 끝나가던 시점, 교감선생님께서는 계약이 종료된 후에 다른 학교에서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게 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제 주어진 임무는, 계속 이렇게 기간제 경력을 쌓으며 시험에 다시 도전하는 것인 듯했다. 누군가가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슬퍼졌다. '무엇'이 되기 위해 보내왔던 시간들이 충분히 슬펐는데, 앞으로 또 얼마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어서 다시 슬펐다. 나는 교감선생님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도 그렇게 안 해.'도, 일단 그만 슬프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