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미소김밥 제주투어 1

by 마음리본

잠시 멈춰도 괜찮아


"사장님, 여기에요. 여기!"

춘심과 두식이 가장 먼저 공항에 와 있었다.

이어서 정숙과 지완, 유나, 후엔과 영태가 차례대로 모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가게 수리 일정이 정해지자

바로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휴,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늦잠을 잤지 뭐예요.

늦을까 봐 조마조마했네요."

후엔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도야, 어찌나 설레던지. 나 어제 산 옷 어때? 두식이가 사줬잖아."

"예뻐요, 예뻐. 잘 어울리세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

정숙은 자세히 봐야겠다는 듯, 춘심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미소 지었다.

"근데, 소이가 왜 아직 안 오지? 전화 좀 해 봐야겠어."

"제가 전화할게요."

두식이 소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이 씨, 왜 아직 안 와요? 우리 여기 다 모여있는데?"

"어? 저 안 보이세요. 여기요, 여기! 오른쪽이요."

두식은 고개를 돌려 오른쪽 에스컬레이터에 내려 뚜벅뚜벅 걸어오는 여자를 바라본다.

칠흑같이 검고 윤기 흐르는 긴 생머리에 얼굴이 새하얀 여자.

선글라스를 끼고 분홍 트렌치코트 사이로 길고 늘씬한 다리를 드러내며 걸어오는 소이.

"어? 소이 이모 맞아? 너무 이쁘다."

영태가 가장 먼저 소이를 알아보았다.

"원래 이쁜 줄 알았지만, 난 또 연예인이 걸어오는 줄 알았네. 소이야. 너무 이쁘다!"

후엔은 소이를 보며 반했다는 듯 말했다.

소이는 모두가 쳐다보자 수줍게 웃었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못 낸 멋 좀 마음껏 내봤어요. 괜찮아요?"

"괜찮다 마다. 진작 이러고 다녔으면 우리 김밥집이 더 불났겠고만."

춘심이 말하다 말고, 아차차 말실수했음을 인지하고 자신의 입을 막는다.

"자자, 불은 잊읍시다. 다 잊고, 리프레쉬하는 여행이니

우리 여행하는 동안 일 얘기는 금물이에요. 벌금 1만 원씩!"


사실 정숙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이 났다는 것도, 후엔의 남편이 범인으로 잡혀갔다는 것도

꿈만 같았다. 한 편의 스펙터클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비행기 앞 좌석에 앉은 소이가 물었다.

“응…사실 아직 적응이 안 되네. 꼭 꿈꾸는 것 같아.”
정숙은 어색하게 웃었다.

후엔은 베트남에서 온 후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탄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연신 찍었고,
춘심은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보네” 하며 비행기 창밖의 풍경을 신기해했다.

두식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 비행기 뜨면 귀 먹먹해질 거예요. 놀라지 말아요.”

춘심이 그런 아들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어이구, 그래요. 두식 씨. 우리 아들 아는 것도 많네.”

모두 웃었다. 별 말 아닌데도 다들 신이 나 보였다.

정숙도 잠시 악몽은 접어두기로 했다.



제주공항에 내리자 공기부터 확실히 달랐다.

짠 바다 냄새가 섞인 신선한 바람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춘심이모가 제일 먼저 말했다.

“아이고, 사람 살 것 같다. 코랑 눈이 뻥 뚫리네.”

소이는 제주도의 공기를 크게 들이켰다.

“흠~~ 어쩜 진짜 공기가 다르네요.”

정숙의 딸 유나는 벌써 휴대폰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켰다.

"여러분, 미소김밥 직원들이 제주도에 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미소김밥이 불의의 사고로 불에 탄 건 아시죠?

앞으로 1주일 동안 저희가 없어도 조금 참으셔야 해요.

대신에 미소김밥 제주투어를 방송하겠습니다~!!!"

유나는 해외 유튜버가 다녀간 후로 종종 미소김밥을 홍보하는 영상을 찍곤 했다.

"으유, 여기까지 와서 영상이야. 그냥 좀 편히 쉬면 안 될까, 유나야."

"엄마, 사람들이 미소김밥을 얼마나 기다리는데, 문 닫아서 아쉬워할 거야.

우리 소식 알려줘야지. 몇 개만 찍을게."


미소 김밥 제주 투어


드디어 첫 번째 코스인 용머리 해안 도착!

용머리해안 절벽 앞에서 정숙은 한참을 서 있었다.

수천 년 동안 깎인 검푸른 바위는 불에 탄 주방을 연상시켰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후엔이 옆에 섰다.

“저는… 아직도 무서워요. 그 사람이 풀려나서 해코지할까 봐요.”

정숙은 바다 쪽을 보며 말했다.

“나도 그래. 근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잖아.

그리고, 그 사람은 제대로 벌 받을 거야.”

파도가 바위를 때렸다. 세게, 반복해서.

“후엔씨, 봐봐. 뜨거운 마그마가 식어서 이렇게 멋진 무늬를 만들어내지.

우리도 뜨거운 시간을 잘 견디다 보면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가 만들어질지도 몰라. 이 바위를 좀 봐. 센 파도에도 잘 견뎠잖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멋진 경관을 만들어냈지. 다 지나갈 거야. 함께 헤쳐나가 보자.”

후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있어서 저는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


"거기 두 사람 뭐해요? 빨리 와요. 사진 찍게."

지완이 후엔과 정숙을 부른다.

진짜 용의 머리를 닮은 풍경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자자, 웃어요. 찰칵!"



사람 일은 모른다


첫날 저녁, 그들은 숙소 근처 탄산 온천에 갔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탕 안에서 춘심이모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사람 살겠다.”

"이모, 일루 와 봐요. 여기 앉아있으니까 막 몸에서 사이다처럼 기포가 생겨요."

"그으래? 신기하네. 아이고, 몸이 노곤노곤. 피로가 싸악 풀린다."

후엔은 물에 몸을 담그자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사장님… 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요.”

정숙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랬다.

그동안 가게를 오픈 후 하루도 마음 놓고 쉬질 못했다.

물론 교회를 다니는 정숙은 주일만은 가게를 쉬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다음 날 가게 준비로 분주했다.

김밥을 말면서, 사람을 상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쉬고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물속에서 소이는 말했다.

“가게 불났을 때요… 저, 다시 김밥 못 말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정숙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두야. 근데 웃기지? 가게가 불에 타니까 이런 데 와서 쉬어보네. 인생 참 재밌지?”

"맞아요. 저 처음 이혼하려고 미소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먹었을 때만 해도

인생 자체가 절망이었어요.

내 인생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근데, 미소김밥에서 일하면서 일하는 것 자체만으로 즐겁고, 김밥집 식구들이 진짜 가족 같고...처음으로 일하면서 행복했어요.

진짜 사람 일은 모르나 봐요."

탕의 열기로 볼이 발그레해진 소이의 얼굴은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정숙은 생각했다.

'그래, 내가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될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자.'


- 20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