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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김밥 방화사건2

by 마음리본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다음 날 아침.
미소김밥 안은 아직도 매캐한 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정숙은 무너져 내린 선반들과 검게 그을린 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소방차가 뿌린 물로 가게 안이 잿물로 흥건했다.

어디서부터 치워야하지?


그때 문이 열렸다.

“사장님…”
후엔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 뒤로 소이, 춘심이모, 그리고 두식이도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지완은 타다 만 테이블 위에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골똘히 무언가를 계산하던 그는 사람들이 들어오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숙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왜 왔어요들? 불나서 할 일도 없는데 며칠 쉬라니까.”

소이가 팔을 걷어부치며 말했다.
“사장님, 저희가 도와야죠. 여긴… 우리 모두의 가게잖아요. 집에서 할 일도 없어요.”

춘심은 정숙의 붕대를 감은 손목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해? 이 가게 준주인이나 다름없다구.”

후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 저 때문이에. 사장님, 죄송해요.”

정숙이 바로 끊었다.
“이제 그만 죄송하세요. 누구도 후엔 탓이라고 생각 안 해.”

지완이 노트를 탁 펼쳤다.

“일단,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복구 계획


지완은 아까부터 골똘히 계산하던 노트를 보여주며 직원들 앞에 섰다.
거기엔 ‘미소김밥 긴급 복구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살림살이는 전부 태웠지만, 구조는 멀쩡해요.
화재 보험 들어놔서 다행이에요.”

그는 손가락으로 나름대로 계획한 일정표를 짚으며 말했다.

“배선 교체 3일, 도장 2일, 기계 설치 2일.
빠르면 1주일 안에 다시 오픈이 가능할 것 같아요.”

두식이 감탄했다.
“진짜요? 이렇게 금방이요?”

“네. 복구작업만 조금 도와주면 될 것 같아요.”

정숙이 안도의 안숨을 쉬자, 직원들 사이에서도 안도의 미소가 퍼졌다.

"우리 김밥 매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손님들 많은데. 손님들이 불편하겠네요."

소이가 말했다.

"문을 닫아봐야 더 소중함도 알게되지 않을까요? 우리 김밥이야 뭐 워낙 없어서 못 먹잖아요."

두식도 덧붙였다.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네. 미소김밥 빨리 다시 돌아와 주세요~~! 하는 손님들의 외침이"

춘심은 이미 손님들이 밀려오듯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가게 안 분위기가 환해졌다.

그 순간, 문이 또 열렸다.


미소김밥의 따뜻한 이웃들


첫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지윤 엄마였다.
그 뒤로 아침마다 우동을 먹던 택배기사 아저씨,
정숙이 구해준 현제와 복지사 신예영,
희망 아동 복지 센터 장센터장까지.

마치 누군가 연락이라도 한 것처럼
미소김밥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가게로 몰려왔다.

현제가 고사리손으로 정숙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아줌마… 괜찮아요? 힘내세요."

지윤 엄마가 말했다.
“동네 맘들한테 다 연락 돌렸어요.
여기 다시 열리면 매일 김밥 두 줄씩은 사줄 거예요.”

택배기사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마다 여기 김밥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정숙은 눈시울이 붉어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녁까지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불에 탄 주방도구와 식기,

형체만 남은 식탁과 의자 등을 바깥으로 날랐다.

손이 많으니 일이 척척 진행됐다.

옆 가게의 도움을 받아 호스를 연결하여 물로 홀을 깨끗이 치웠다.


미소김밥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누군가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등불이었다.




불 난 김에 제주도?


사람들이 돌아간 후,
지완이 유일하게 반만 그을린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다들 집중해주세요, 저… 하나 제안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그를 바라봤다.

“수리 기간 동안 1주일 공백이 생깁니다.
이왕 쉬는 거, 제대로 쉬면 어떨까요?”

소이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요…?”

지완이 미소를 지었다.

“이참에 직원들 다같이 제주도 여행 어때요?여행 비용 전체를 제가 쏘겠습니다!”

“예?? 제주도요??”

춘심은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고야… 내가 이런 호사를 다 누리네.”

춘심은 울컥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저는 괜찮아요. 돈 많이 들어요.”

후엔은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정숙이 손을 얹었다.
“가자, 후엔 씨. 우리… 조금은 쉬어야 해.
그동안 너무 달렸잖아.”

"와~ 신나요. 저 제주도 안 가본지 너무 오래됐어요. 뭐 입고 가야 해요? 옷부터 사야 할 것 같아요."

소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밝고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으유, 소이는 그냥 가도 연예인이야. 나야말로 옷이 하나도 없네. 옷 사러 가야겠어."

춘심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실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제가 월급 탄 걸로 엄마 옷 사드릴게요. 같이 쇼핑 한번 가요."

한두식이 활짝 웃었다.

"엥? 살다보니 아들이 옷도 다 사주고.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아이고, 좋아라."

춘심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지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요, 여행 목적은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요?” 소이가 눈을 반짝였다.

“제주도 산지 재료 연구 및 김밥 투어.
제주도 김밥 맛집을 탐방해서… 우리 미소김밥의 새로운 시그니처를 만들어 보는 거 어때요?”

두식이 박수를 쳤다.
“와, 이건 진짜 천재네요! 사장님, 정말 존경합니다!”

"맞아요. 제주도에 좋은 식재료가 진짜 많잖아요. 흑돼지, 당근, 해초, 옥돔...

와~~다양한 김밥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거리네요."

소이가 이렇게 말이 많았던가?

정숙은 들뜬 가게 직원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다.

불이 가게를 태웠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온기,

이 작은 공동체는
조금도 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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