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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김밥 방화사건

by 마음리본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폭발한

‘케데헌 김밥 챌린지’ 덕분에
미소김밥은 전국 맛집 탐방 프로그램과

뉴스에까지 소개되었다.

정숙도, 지완도, 소이도, 춘심도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카메라는 직원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하고,

후엔은 화면 속에서 서툰 한국말로 웃으며 말했다.


미소 김밥, 맛있어요.

먹으면 저절로 미소가 나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가게는 매일 밀려오는 손님으로 축제 같았고,

후엔은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그 방송을 본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후엔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달아나야했던...


그날 밤, 가게 밖에는 이상한 기척이 있었다.


정숙이 마감을 끝내고 가게 불을 모두 끄려던 순간,
유리창 너머로 어떤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거친 호흡을 내쉬며

서 있는 한 남자.

며칠동안 마신듯한 술에 절은 냄새를 푹푹 풍기는
후엔의 남편이었다.

“여기 후엔 있지?”

"누구시죠?"

"누구인건 알거 없고, 후엔 나오라고 해."

정숙은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후엔이 말했던 그 지독한 남편이었다.

정숙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후엔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오늘 휴가에요.

“거짓말 하지 마. 방송 다 봤어. 여기서 일한다며.
내 돈 들고, 내 아들 빼돌려서 튄 여자야. 내가 걔 남편이라구!”

정숙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주방 안쪽에서는 후엔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어있었다.

정숙은 단호히 말했다.

“돌아가세요. 여기서 더 난동 부리시면 경찰 부릅니다.”

정숙은 수화기를 들어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거기 경찰서죠? 가게에 이상한 사람이 난동을..."

"에이, 시X."

남자의 눈빛에 독기가 번졌다.
입술이 실룩거리며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울분을 억지로 삼키듯 씩씩 거리며 돌아섰다.

정숙은 가슴이 쿵쾅거려 한참을 진정한 후에야 집에 돌아갔다.

후엔에겐 며칠 가게에 오지 말라고 전화해 두었다.



새벽 4시 40분.

평소처럼 두식이 새벽 배달을 위해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두식은 그 날 이후, 어찌나 열심인지 배달이 6시부터인데, 1시간도 일찍 가게에 나왔다.


“…뭐야?”

어둠 속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두식이 문을 열려는 순간 안쪽에서 불길이 훅 치솟았다.

“불이야!!!!!!!!”

119 사이렌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요란히 뛰어갔다.

불은 주방에서 가게 쪽으로 빠르게 번졌다.
김밥틀, 조리대, 재료통… 하나하나가 불길 속에서 형체를 잃어갔다.

소식을 듣고 뛰어온 정숙은 그 광경 앞에 주저앉았다.

“우리 가게가… 우리 주방이…”

정숙은 두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주방 절반이 숯처럼 까맣게 타버렸다.

철판이 무너져 내렸고,

가게 벽면에는 불길이 지나간 자국이 검은 화상처럼 남아 있었다.

미소김밥의 심장이었던 주방을 완전히 태우고야 불은 멈췄다.



새벽 공기가 아직 매캐했다.
탄 냄새가 골목 깊숙이 스며들었다.

정숙은 주방 입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불이 꺼진 뒤의 잔해는 참혹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였다.

경찰들이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혹시 사장님이 누구시죠?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화재의 원인이 방화인 것 같습니다. ”

앞장선 형사는 상황을 확인하곤 말했다.

“지금 현장 보존은 잘 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CCTV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감식반 두 명은 현장을 카메라로 찍으며 바닥을 살피고,
나머지 형사 두 명이 CCTV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정숙은 뒤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을 삼켰다.
소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떨고 있었고,
후엔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형사가 CCTV 영상을 되돌리며 말했다.

“자, 새벽 4시 10분에서 20분 사이… 그 시간대가 불이 최초로 난 시각으로 보입니다.”

영상이 빠르게 되감기다가 멈췄다.



CCTV 화면

흑백 화면 속 어두운 골목.
그리고 그 골목을 비틀비틀 걸어오는 한 남자의 모습.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술에 심하게 취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몸이 세게 흔들렸다.

후엔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형사가 화면을 확대한다.

남자는 미소김밥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잠시 가만히 서 있는 듯하더니—

가게 창문을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다.

창, 창, 쨍그랑!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그 안으로

툭.

무언가를 깨진 창문 안으로 던졌다.

휘발성 액체통이 주방 선반에 떨어져 깨지며 흘러내렸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찰칵— 불꽃이 켜지고,

파직.

한순간에 화면 속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형사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방화입니다. 확실하네요.”

감식반 한 명이 메모하며 말했다.

“휘발유 계열입니다. 번지는 속도 보이죠?
고의성이 매우 높습니다.”

후엔의 다리가 휘청했다.

지완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저 사람이… 후엔 씨 남편 맞아요?”

지완이 말했다.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흐릿하지만 체격, 걸음걸이 다 그 사람이 틀림없어요.”
후엔이 대답했다. 형사가 후엔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족분이신가요?”

후엔은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편… 맞아요. 저 사람이..."

후엔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이 찾아온 시각, 후엔이 숨지 않았다면

불은 나지 않았을까? 후엔은 가게의 불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왔다.

정숙이 설명했다.

"실은 저 사람이 밤 9시에 가게에 찾아왔었거든요. 후엔의 남편인데 후엔을 찾길래

없다고 하고 돌려보냈었어요."

형사는 메모를 적으며 말했다.

“남편과 무슨 악연이라도 있나요?"

후엔은 흐느끼며 말했다.

"남편이 맨날 술먹고 때려서 제가 도망나왔어요. 아들까지 때리려고 해서 아들이랑 같이요."

"가정폭력을 당하신 거군요. 신고를 하지 그러셨습니까?"

"신고해도 금방 다시 돌아오던데요? 몇 번 신고했는데, 도로 돌아온 다음엔 폭력이 더 심해졌어요."

"그러시군요. 일단 가정폭력과 방화죄 둘다 적용해야겠습니다.

저희가 바로 지명수배 요청 넣겠습니다.”





감식반은 주방 쪽으로 이동하며 탄 자국과 연료 흔적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정숙은 타버린 주방을 바라보았다.
멀쩡하던 공간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 광경을 보며, 후엔은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가게가…”

정숙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후엔 씨 때문이 아니야.
나쁜 사람은 따로 있어.
우린… 다시 시작하면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숙은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깨달았다.

불이 꺼진 새벽의 골목은 서늘했고,
새로운 현실이 정숙과 미소김밥 사람들 앞에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 목요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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