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8화. 누군가의 따뜻한 말이 상처 위에 밴드가 되고

그 말들이 한 줄, 한 마디씩 삼남의 마음 위에 작은 밴드를 붙여 주었다

by 마음리본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


삼남은 오래도록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허우적거릴 힘조차 빠져나간 어느 날,
누군가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삼남아,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혜진 언니였다. 예전 동학년을 함께했던.

“언니… 저, 학교 나가기가 무서워요.”

그 말 한마디에 혜진은 모든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 지금 많이 힘들구나. 병원부터 가라. 우울증은 초기에 잡아야 해.”

그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감정을 받아주되, 결정을 이끌어주는 힘이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서야, 삼남은 처음으로 자기 아픔을 인정했다.
‘아, 나… 정말 아픈 거구나.’


은영과 고깃집에 갔을 때,
삼남은 젓가락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울음이 먼저였다.

은영은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야,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 그렇게 울면… 고기가 목에 안 넘어가잖아.”

은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삼남아, 넌 좀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필요해.

원영적 사고 알지? 이건 하늘의 계시야.
더 참았으면 회복도 못 했을 거야.”

그 말이 삼남의 자책을 한 칸씩 밀어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근데, 무한리필인데 고기 너무 못 먹었네. 아까워 죽겠다. 담에 다시 오자, 꼭.”

그 소박한 농담이 삼남의 굳은 가슴을 풀어주었다.


선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에요? 허리디스크일 때도 아픈 허리 부여잡고

체험학습 갔던 언닌데 학교를 안 나오다니… 분명 큰일이 있는 거죠.”

삼남은 다시 가빠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선희샘… 나, 애들 앞에 설 자신이 없어. 마음이 완전히 바닥이야.”

그러자, 단단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그냥 좀 쉬라는 거예요. 쉴 자격 있으세요.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제가 옆에서 다 봤잖아요.
너무 많이 했어요. 쉬어도 돼요.”

쉴 자격 있으세요.
그 말이 삼남을 붙잡았다.
‘그래… 나, 쉴 자격… 있나?’


삼남밴드 2.png


삼남의 빈자리를 메운 동료는
자신의 유산 위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 누군가 내 자리를 대신해 줘서 아이를 지킬 수 있었어요.
이젠 제가 대신할 차례인가 봐요.
누군가 비우면, 누군가 채우는 게 맞아요.
할 수 있는 사람이 돌아가며 하는 거죠.”

그 말에 삼남은 울컥했다.
‘맞아, 사람은 서로 신세 지며 사는 거구나.
신세 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었어.’

돌아보니, 삼남 자신도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버겁다고 말할 때, 기꺼이 대신해 주던 사람.


"오선생, 괜찮아?"

교감이었다.

"죄송해요, 교감 선생님..."

삼남은 또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뭐가 죄송해. 이제 죄송하단 말 그만해. 네 마음이나 잘 챙겨.

학교는 잘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 말고. 너 없어도 학교 잘 돌아간다.

완벽주의, 그거 버려야 해."

정교감은 삼남이 자책하지 않도록 북돋워주었다.

특유의 쿨한 말투로.

'그러네. 내가 안 하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내가 다 하려고 했던 게 교만이었나 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오만,

그 오만으로 때론 동료들을 평가하기도 했던 날들...

삼남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후로도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고, 카톡이 이어졌다.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샘 탓이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그들은 삼남을 평가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널브러져 버린 그녀를 지지해 주었다.


그 말들이 한 줄, 한 마디씩
삼남의 마음 위에 작은 밴드를 붙여 주었다.
피가 멎고, 다시 살갗이 도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남은 그제야 깨달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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