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쁜 선생님이 되었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삼남은 캄캄한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발자국 소리만, 축축한 흙 위로 묻혀갔다.
땀을 흘리며, 급히 걸었다.
가도 가도 목적지는 알 수 없었다.
이내, 끝없는 안개 끝에 학교가 나왔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듯 가슴이 조여왔다.
칠판 앞에, 미라가 서 있었다.
손도, 발도, 얼굴도, 눈과 귀까지도
하얀 붕대에 칭칭 감겨 있었다.
그 미라는 고개를 돌려 삼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라는 다름 아닌 삼남 자신이었다.
“넌 도망친 거야.”
“진짜 형편없는 사람이 됐네.”
“넌 나쁜 선생님이야.”
낡은 천을 찢는 듯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교실의 공간을 메웠다.
반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삼남을 싸늘히 쳐다보았다.
"나쁜 선생님!!!"
삼남은 입술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려 울부짖으려 해도 쇳소리만 새어나갔다.
차가운 식은 땀이 등에 흘러내렸다.
손끝이 얼어붙고, 이마는 축축하게 젖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으악!"
삼남은 소릴 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목소리는 여전히 귀에 맴돌았다.
“나쁜 선생님…”
어둠 속, 삼남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끝내 흐려지는 새벽이었다.
심장은 여전히 불규칙하게 뛰고,
귓속에서는 알 수 없는 소음이 왱왱 울려왔다.
새벽빛이 서서히 번져오고 있었다.
그 빛은 차가웠다.
모든 것을 드러내려는 칼날처럼,
속살을 도려내려는 듯이.
“아이들도 지켜내지 못하고, 나도 지켜내지 못했네…”
속으로 중얼거린 말이 입술에 맴돌았다.
이제,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교실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을 쳐다볼 힘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나쁜 선생님, 아이들을 지킬 힘조차 없는 무능함.
교실에 홀로 서서 무방비로 벌거벗은 기분
수치. 모욕감. 무능.
그 무능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마음….
이후, 삼남은 오랜 시간 혼자 있는 방에 갇혀 울었다.
아무 일 없는데도, 그저 눈물이 났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숨이 가빠왔다.
숨을 참으며 울고, 울다 지쳐 침대에 쓰러졌다.
밤에는 잠들 수 없었고, 아침엔 눈을 뜰 수 없었다.
무기력.
죄책감.
두려움.
공포.
그 감정들이 삼남을 삼켰다.
자신 안의 또 다른 목소리가 끊임없이 그녀를 비난했다.
그때, 삼남은 비로소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교실에서 죽음을 택한 어느 젊은 교사의 마음을.
그 선생님, 얼마나 힘들었을까.
삼남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그런 날들이 시작되었다.
눈을 떠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 날.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 날.
일으켰다고 생각했는데 못 일어났고,
잤다고 생각했는데 잠들 수 없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누가 말을 걸어도 그 말이 가시처럼 들렸다.
누군가 미소를 지으면 삼남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상담 권유에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가빠오는 호흡에 결국 약속을 잡았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쯤 가면 나오는 병원.
그곳에서 한 시간 동안 울거나,
조용히 앉아 있거나, 가끔 말도 했다.
상담을 마친 후에는 밥집에 혼자 앉아 국을 뜨고,
사람들 목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속에, 삼남은 회색 옷을 입은 채
섞이지 못한 이방인처럼 서 있었다.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노을이 지는 걸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자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살았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되도록 사람이 없는 길을 골라 정처 없이 걸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어딘가로 걷지 않으면 숨이 막혔다.
그렇게 마냥 걸었다.
걷는 동안만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생각이 멈춘 그 잠깐,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헤집는 말들….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네.’
‘네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에서 한참 멀어졌네.’
‘넌 유능하지도, 잘하는 것도 없어.’
‘역시 넌 착한 척이었던 거야.’
그즈음, 엄마가 자꾸 전화를 했다.
“막내야, 이번 주엔 꼭 와라잉. 시방 부추가 얼마나 연한 줄 아냐?”
“비 오고 나서 상추가 아주 보드라졌당께. 와서 따 가.”
“열무 담을랑께, 가질러와야. 겁나 연해.”
“은제 올래? 와서 엄마도 쪼깐 도와주고 해야제.”
엄마는 자신이 만든 텃밭으로 그녀를 불러냈다.
사람도 세상도 다 피하고 싶은 그때,
엄마는 텃밭을 핑계 삼아 삼남을 이끌어냈다.
그곳엔 엄마의 밥이 있었고,
햇빛이 있었고, 흙냄새가 있었다.
엄마 그 자체인.
텃밭은 심폐소생술 같았다.
마음 한켠에 아주 작은 온기가 돋았다.
엄마를 먹으며, 삼남은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