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좋은 교사일까? 아니면, 그냥 지쳐가는 사람일까.’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해가 갈수록 민원의 강도는 세어졌다.
삼남의 심호흡도 길어졌다.
"선생님, 우리 아이 물약과 가루약 섞어서 오전 10시에 먹여주세요.”
“우리 아이가 급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매일 톡으로 보내주세요.”
“우리 아이는 무조건 가운데 줄 맨 앞자리 앉혀 주세요.”
“그 아이랑은 절대 짝 하지 않게 해 주세요.”
“오늘 사진 보니, 우리 아이가 중앙에 없던데, 이유가 뭘까요?
늘 중심에 서는 아이거든요.”
“오늘 어떤 아이 칭찬하셨다는데, 우리 아이가 속상해하더라고요.
자긴 칭찬 못 받았다고.”
그녀는 때때로 교사가 할 일이
돌봄인지 가르침인지 혼동스럽기조차 했다.
가끔은 부모의 지위나 학벌, 가문을 내세우는 말들이 따라왔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제가 어느 대학을 나와서…”
“남편이 사회적으로 이런 자리에 있어서…”
그 말을 들으며
웃어야 할지, 숙여야 할지
삼남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선생 맞아? 애가 다쳤는데 뭘 한 거야?”
아이의 상태는 확인도 않고,
수업 중 다짜고짜 전화한 아버지...
그 아이는 다음 날 멀쩡히 학교에 왔다.
주말 저녁 걸려온 전화.
카랑카랑 흥분한 목소리.
“서로 사과했다고 억울해서 학교를 못 가겠다네요?
우리 얘는 누구한테 사과할 짓을 하질 않아요.”
사과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니,
살면서 사과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과는 지는 것이고,
내 아이가 고개 숙이는 걸 도저히 용납 못하는 부모...
삼남도 안다. 민원을 넣는 학부모는 소수다.
대부분은 교사를 믿어주고, 지지해준다.
하지만 단 한 건의 민원도
삼남의 마음에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다.
작은 연락에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꾸만 자신감을 잃었다.
대치동에서, 삼남은 항상 평가받는 교사였다.
정신은 고갈되고, 마음은 메말랐다.
‘나는 아직 좋은 교사일까? 아니면, 그냥 지쳐가는 사람일까.’
그 일이 일어난 건,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학년.
“저기, 오선생...”
“오선생이 못하면 누가 하나?”
매년 담임과 부장을 겸임한 삼남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완강히 거절했다면
다른 사람이 했을 일.
훨씬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고
삼남은 이후 날마다 자책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이었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아무도 못 해 낼 일을 멋지게 해내고 싶은 마음...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일면, 자신이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지리라는
슈퍼우먼 같은 생각도 있었다.
김순례 여사처럼,
‘남한테 복을 베풀면 내 자식한테 복이 온다’는
뭐 그런 알량한 희생정신.
그건 희생이 아니라,
착한 척이었음을 삼남은 나중에 알았다.
정말 괜찮을 줄 알았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자신이라면 해결할 줄 알았다.
오만을 넘어 객기 수준이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루도 톡이 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삼남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과 행복한 교실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두려웠다.
뉴스에서 교사는 고소당하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발표를 안 시켜줬다고 정서학대,
학교폭력을 말리다 손목을 잡아도 신체학대,
각종 녹음기로 교실 상황을 실시간 녹음하고
이를 빌미로 고소당하는 교사들.
삼남은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녹음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수업을 할 수 없었다.
손과 발, 눈, 전신이 꽁꽁 묶인 채
아이들 앞에 서 있는 미라.
삼남은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다, 스스로의 기준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엉망이 된 교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했을 때
삼남은 진짜 무너졌다.
'나쁜 선생님'이라는 외침이
귓속을 망치처럼 두드렸다.
삼남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진짜 나쁜 선생님이 아닐까?’
자책과 무력감이 삼남을 짓눌렀다.
삼남은 깨달았다.
아이들을 지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부서져버렸다는 것을.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