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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3화. 대치동에서의 날들

이제 한계인 것 같다고,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고 외쳤던 내면의 소리

by 마음리본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무관하게 재구성된 허구이며,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삼남이 두 아들 교육 욕심만 없었더라면,

굳이 거주지를 옮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대치동, 그 뜨거운 교육 열기 한복판으로 발령받았을 때,

삼남은 숨이 막혔다.

여태까지 가르쳐온 아이들과도,

학교 분위기와도 전혀 달랐다.

쉽지 않은 곳은 많았지만,

대치동은 그중에서도 낯설고 벅찬 세계였다.


이곳에서 선생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학원 강사, 과외 선생처럼 흔했고,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을 증명하는 자존심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시험으로 재단된 아이들은

교실에서도 서로를 견제하며,

비교와 무시,

우월감과 열등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누군가는 학원 레벨테스트 때문에

틱장애를 얻었고,

또 다른 아이는 수학 문제를 못 풀어

종이를 찢으며 벽에 머리를 박았다.

어떤 아이는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또 어떤 아이는 늘 비교당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삼남은,

보이지 않는 긴장과 경쟁으로 가득 찬 공기에

가슴이 터질 듯했다.


아직 자아도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패배감을 안고 사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견제하지 않고 존중하는 교실이 될까?”
삼남은 답을 찾고자 새로운 생활교육 방법을 배웠다.




둥글게 앉은 아이들과 함께 시작하는 ‘서클’.
명상으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삼남은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누려야 할 권리와 존엄성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문장을 줄줄 읊었지만,

그날의 주제는 단순한 암기가 아니었다.

“그러면, 내가 존중받지 못했던 경험을 이야기해봅시다.”

토킹스틱이 돌아가자,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친구가 제 의견을 무시했을 때요.”


“귓속말하는 걸 보고 흉보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꼈어요.”


“한 친구가 대놓고 저에게 못생겼다고 자살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쓸모없는 사람 같았어요.”


울먹이며 뛰쳐나간 아이,

그리고 끝내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며 사과하는 아이.

교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아이들의 진심을 받아냈다.

서클은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이해하고, 돌보는 공간이었다.



“저는 엄마가 100점을 못 맞으면 내 아들 아니라고 말할 때,

제 존재가 하찮게 느껴져요.

엄마는 늘 다른 친구와 비교하고, 제가 맞은 점수를 깎아내려요.

엄마에게 공부를 못하는 저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에요.”

“저도 엄마가 늘 말하는 엄마 친구 아들이랑 비교당할 때, 속상해요.”

울먹이며 말하는 학생들,

거기에 함께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다른 친구들...

마지막으로 삼남이 말해준다.


‘너희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수학 점수 따위로 너희들을 평가할 수 없다고,
한 명 한 명 각자 고유한 강점을 가진 소중한 사람’이라고...




때로는 봄꽃 흩날리는 양재천을 거닐며

시를 써서 낭송했고,
사진 콘테스트, 연극, 우리말 알리기 프로젝트로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공부라는 이름의 강요가 아니라,

삶과 연결된 배움 속에서 가장 반짝였다.

진로 발표회에서는

‘운동화 빨리 묶기’, ‘재활용품 만들기’, ‘개구리 키우기’ 같은

사소해 보이는 것도 소중히 나누었다.

다름을 응원하는 웃음과 박수 속에 아이들은

자신만의 빛을 확인했다.


그 시간들은 분명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현실은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주말이 지나면 매듭지어놓았던 마음들은 금

새 흩어졌다.


삼남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마음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한계야. 더는 버틸 수 없어.’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한 건 삼남 자신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깟 게 뭐가 힘들어.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자신이 만든 그 엄격한 기준 속에서,

삼남은 언제나 모자란 교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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