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2. 저...이제 그만하려구요

누군가를 위한 밥상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식탁이 필요해

by 마음리본

교장실 문은 묘하게 무거웠다.

오삼남은 손에 힘을 주어 문고리를 눌렀다.

방 안에는 교장과 교감이 마주 앉아 있었고, 그녀가 들어서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 삼남샘. 웬일이야?”

교장의 얼굴에는 가벼운 인사 정도의 표정이 머물러 있었다.

“저... 내일부터 병가 쓰겠습니다. 이어서 휴직도 하겠습니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뚝 끊겼다.

교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교감도 눈썹을 꿈틀이며 고개를 돌렸다.

“휴직…?”

교장의 목소리는 낮아졌고, 오삼남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저… 이제 그만하려고요.”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도 어딘가 허공에 외치듯 말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너무 늦어버린 대답을,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랐던 것처럼.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 도저히 학부모 민원을 견딜 수가 없어요.

결국 내가 졌어요. 저는 실패했어요. 아이들 앞에 설 자신이 없어요.

마음에 근육은커녕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고요. “

삼남은 수없이 많은 말들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 삼키느라 얼굴이 일그러진 줄도 몰랐다.


며칠 전, 엄마가 텃밭에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삼남은 회의 중이었다.

책상 위에는 생활기록부, 상담일지, 평가표, 가정통신문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한 학급을 감당하기 위해, 그녀는 매일 ‘담임’이라는 이름으로 분해되고 있었다.

“교사에게 필요한 건 희생이 아니라, 희석이다.”

몇 해 전, 연수에서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희석'이 아니라 '소멸' 중이었다.

낮에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내고,

밤에는 그 감정에 짓눌려 가슴을 쥐어뜯으며 잠들었다.

한 아이는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한 아이는 틱장애가 도졌다고,

한 부모는 변호사를 대동했고,

또 다른 부모는 매일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중간에서, 오삼남은 ‘교사’이기 전에

‘방패’였고, ‘창구’였고, ‘쓰레기통’이었다.

삼남은 담임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제일 일 많다는 연구부장을 3년째 맡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언제 안내해 주냐고,

한 선생님은 안내가 너무 빠르다고,

한 선생님은 왜 이런 일까지 우리가 해야 하냐고

교감은 너 아니면 누가 하냐고

교장은 학교 평가가 나쁜 건 연구부장이 중간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업무 자체보다 업무를 위한 모든 조율 과정이, 관리자의 무리한 요구가

삼남을 분해시켰다.

“삼남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힘든 건 알지만…”

교장의 말이 이어졌지만, 삼남은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그녀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운동장 한편에는, 아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소리가 귀를 찌를 듯 요란하게 들리다가, 어느 순간, 파도처럼 멀어졌다.

‘엄마도 쓰러졌고, 나도 그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밥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식탁이 필요하다고.


사실 삼남의 25년 경력에 병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임신 중 지하철에서 입덧으로 구토가 나도 꾸역꾸역 학교에 갔다.

현장학습 전 날, 허리를 삐끗해서 아예 일어날 수 없었을 때조차 학교에 갔다.

누군가가 내 몫을 해야 한다는 게 신세 지는 것 같고,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아니,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싫었다.

그놈의 완벽주의, 착함을 가장한 나만의 기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실수하지 않고, 늘 읏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착각이

삼남을 갉아먹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삼남이 착해야 사랑받는다고 직감했던 것이...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학부모, 학생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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