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밭이 곧 엄마였다...
“뭐슨 해 묵고 사냐.”
엄마는 늘 먹는 걸 먼저 물었다.
그 말 뒤엔 언제나
‘밥 묵었냐? 밥은 꼭 묵고 댕겨라잉’ ‘애기들 밥은 챙겨줘야 써’ ‘밥 묵고 가라’
하는 당부가 따라왔다.
삼남이 승진 시험에 두 번째 떨어졌을 때도 엄마는 말했다.
“아야, 치워부러라. 참말로 드럽고 치사해서. 인자 고만해야. 공부 그만하고,
애기들 오믄 땃땃한 밥이나 해줘. 애기들이 다 커도, 엄마 밥이 꼭 있어야 쓴다잉.”
엄마에게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그건 신념이었고, 존재의 이유였다.
자식들이 삶의 고비마다 부딪히고 무너질 때
“엄마~!” 하고 찾아오면 품어주는 따뜻한 밥 한 끼.
그 한 상을 위해 엄마는 하루를, 계절을, 일 년을 살아냈다.
남도의 볕 좋고 땅 넓은 고향 집을 접고 경기도 산곡으로 이사 온 것도
결국 그 밥 때문이었다.
“엄마가 멀리 있어갖고 느그들이 엄마한티 자주 못 온께. 엄마 밥도 못 얻어 묵고,
엄마 없는 새끼들마냥 쓰겄냐? 푸정거리 하나 줄 사람이 없제.”
엄마는 그렇게, 왜 도시로 올라왔는지를 자식들에게 설명하곤 했다.
그건 자식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 자신의 삶을 잇기 위한 이유였다.
고향집을 정리해 받은 돈 3천만 원에 언니들 자취방 전세금을 보태
작은 아파트 하나를 장만했고, 그곳이 도시살이의 시작이 되었다.
들과 산만 보며 살아온 엄마에게 아파트는 감옥 같았다.
“아따, 집은 오갈 데도 없이 좁아터져갖고, 으디 나가기만 하믄 다 돈이고.
답답해 갖고 죽어불 것 드라고.”
우울감이 엄습하던 그 시절, 엄마는 도시에서도 길을 찾았다.
시에서 연 단위로 임대하는 텃밭이 있다는 걸 알자 바로 신청했다.
“1줄에 5만원 인디, 2줄만 받았당께. 욕심 같아서는 한 댓 줄은 해야 쓰겄는디.”
엄마는 땅을 갈고, 거름을 아낌없이 퍼붓고, 허리를 굽혔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텃밭이 아니었다. 작지만, 엄마의 세계이자 마음밭이었다.
상추, 시금치, 쑥갓, 감자, 고구마, 깻잎, 깨, 땅콩, 오이, 토마토, 옥수수, 배추, 무, 파…
없는 게 없는, 야채 가게처럼 풍성해졌다.
대부분 도시 사람들은 초봄엔 상추 몇 번 따 먹다가 여름이면 풀에 덮여 밭을 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아저씨, 이 밭 안 쓰요?”
처음엔 그렇게 조심스레 물었고, 나중엔 다른 이들이 먼저 말했다.
“할머니, 이 밭까지 다 하셔요.”
그렇게 2줄이던 밭은 3줄, 4줄… 결국 10줄까지 늘어났다.
엄마는 그 작은 땅에서 자식과 손주들을 먹였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심었다.
그 밭이 곧, 엄마였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학부모, 학생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