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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화_부은 발, 갈라진 손

자신의 몸을 한 조각씩 갈아, 김순례표 힐링 밥상

by 마음리본


“겁나게 아퍼. 아퍼서 죽어 불것어.”

엄마는 목욕탕 탈의실 바닥에 주저앉으며 발을 내밀었다.

양말을 벗자마자 부은 오른발이 드러났다.

피가 모인 듯 붉게 부풀어 살갗이 팽팽하게 당겨 보였다.

“이 발이 부서 갖고, 디뎌지지를 않았당께.”

뽀글뽀글 말아 올린 파마머리.

파마값을 최대한 아끼려고 최대한 딱 달라붙어 꼬불거렸다.

남산처럼 불룩한 배와 그 배를 불안하게 뒷받치고 있는 얇은 다리.

엄마의 모습은 꼭 피에로처럼 귀엽다.


엄마는 오늘도 밭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어제 큰언니랑 용하다는 한의원 갔다 왔어. 여그다 여그다, 침을 이라고 맞았응께

지금은 이라고 쪼깐 걸어지제, 걸음을 못 걸었당께.”

엄마의 발등엔 침 자국이 열 군데도 넘게 박혀 있었다.

“그런디, 어째 침구멍이 이렇게 크당가? 발을 뚫어불 것 같구만.”

삼남은 자연스레 사투리로 응수했다. 도시에선 사투리를 쓰지 않지만

엄마 앞에서는 입이 저절로 전라도 말이 되었다.

“느그 큰언니랑 형부는 자국도 없드만, 이상하게 나만 이라고 침구멍이 났시야.

침 놀 때는 아퍼 죽겄드만 그짓말 같이 걸음이 걸어지더라고.”

피에로 같은 배를 하고, 뛰는 시늉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엄마는 올해 여든. 오십대 중반에 서울로 올라온 뒤 스물다섯 해를 도시 농부로 살았다.

아파트 틈 사이, 남들이 버려둔 자투리 땅들을 기막히게도 알아보았다.

얼마간의 임대료를 주고 농사를 짓고, 땅 주인이 쓰다 남은 비닐로 하우스까지 손수 지었다.

문이 달린 조립식 움막, 누가 내다 버린 냉장고.

그 냉장고는 척박한 땅을 옥토밭으로 만드는 엄마의 마법처럼,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나 잘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사철, 얼려둔 옥수수며 시래기, 완두콩…

그건 엄마의 냉장고가 아니라 마음의 저장소였고, 자식이 온다고 하면

한 땀 한 땀 꺼내주는 마법의 보물 상자였다.


“김치 가지러 올래?”

“은제 시간 되냐? 고구마 캐 놨응께 은제 가지러 와라잉.”

“일 안 해줘도 가지러만 와야?”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다 해놨응께 걱정 마. 그냥 와서 가져가기만 해.’

상추를 뽑을 때면

“내가 뽑아줄랑께 너는 신발 멍처. 오지 마.”

엄마는 자식들을 밭에 못 들어오게 했고, 파와 쪽파에 묻은 흙까지 손수 다듬었다.

“집에 가서 다듬을라믄 드러운께 얼릉 내가 다듬으믄 되아야.”

엄마는 매일을 그렇게 살았다. 자신의 몸을 한 조각씩 갈아 넣으며.

허리를 갈고, 다리를 갈고, 무릎을 갈고, 자신의 몸뚱이를 아낌없이 갈아

김순례표 힐링 밥상을 채웠다.


그러느라 언젠가부터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허리가 끊어질 듯했고, 뜸 자국은 허리 전체를 덮었다.

병원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고, 침 없이는 밭에 설 수 없었다.

그러다 그만, 남들이 버려놓은 죽은 땅도 소생시켜 채소 잔치를 벌였던 엄마는

자신의 몸뚱이가 마음대로 움직여질 수 없는 아찔한 지경까지 이른 것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밭을 놓지 않았다.

막내딸이 마음의 병이 생겨 출근을 못한다는 말을 들은 올해, 엄마는 더 많은 밭을 일구었다.

모종을 더 많이 사다 심고, 더 많은 씨를 뿌렸다.

자식이 아프면, 밭에 씨를 더 뿌리는 것. 엄마는 그렇게 마음을 뿌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엄마는 수건으로 손을 털며 말했다.

“이 손이 자르기 좋게 불었응께, 손톱깎기가 있으믄 딱 좋겄구마이.”

엄마의 손등은 바싹 말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 틈마다 흙이 껴 있었고, 균열처럼 엉켜 있었다.

갈라진 손과 부은 발. 그것들은 그저 육신이 아니라 세월의 무늬였다.

삼남은 문득 밭에 쪼그려 앉아 맨손으로 파를 다듬던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조용히 가슴이 젖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학부모, 학생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실제 인물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습니다.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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