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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

화내고 아파하는 사람들

1) 라면 때문에 마음 아픈 어머니


도시락 반찬은 주로 볶음멸치나 김치가 아니면 단무지였다.

친구들의 군침 도는 반찬을 본 후에는 학교에 도시락 싸가는 것이 싫었다. 도시락을 팽개치고 학교에 간 어느 날,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오셔서 교실 문을 기웃거리셨다. 계속 못 본 척했는데, 화장실에 갔다 오던 친구가 ‘네 엄마가 주고 가셨다’며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받아 놓았지만 열어보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열어본 도시락에는 달걀부침과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아려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귀한 라면을 사 오셨다. 너무 맛있겠다. 연탄불 위에 놓여 있는 냄비에서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라면에 넣을 국수도 보인다. 어머니가 라면 봉지를 열었다.

“엄마, 수프 봉지는 내가 뜯을래.”

어머니의 손에 가위가 들려 있었지만, 얼른 수프 봉지를 집어 들었다. 왼 손가락으로 봉지 끝을 잡고, 오른 손가락으로 한쪽 끝을 쭉 찢었다.

“어이쿠!”

수프가 부뚜막에 날렸다. 반도 안 남았다.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못하고, 에고 아까워라. 하란 공부는 안 하고...”

야단을 맞아도 싸다. 부뚜막에 흩어진 수프를 담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싱거운 라면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미안하구나. 그깟 라면이 뭐라고 귀한 너를 혼내다니.”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어머니 앞에서 아내에게 가난했던 시절의 라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그날의 수프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때 왜 그렇게 혼냈는지 모르겠다고.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고 하신다.

아내에게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팽개치고 학교에 간 이야기도 했다. 집에 와서 열어 본 도시락에는 세상에서 최고로 반찬이 들어 있었다고.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고.

어머니가, 아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시며, 뿌르르 말을 막고 나서셨다.

“아니, 얘가 무슨 얘기를 하는 겨? 가난해서 남들이 먹는 반찬을 해주진 못했지만, 네가 도시락을 팽개친 일은 한 번도 없었어. 단무지는 싫어했지. 그건 맞다.”

어머니는 오로지 내가 잘한 일만 기억하려 하셨다.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린 일들은 아내에게도 숨기고 싶어 하셨다. 자식에게 해주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일들만 어머니는 마음 아프게 기억하셨다. 어머니는, 그때 못 먹여서 내 키가 크지 못한 거 같다고, 동생은 시골에서 엄마 없이 자랐어도 잘 먹고 컸다고,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얘기하신다.

어머니는 라면 때문에 마음 아프고, 나는 지금도 반찬 투정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시골에서 아버지와 살아야만 했던 내 동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2) 화내고 아파하는 사람들


5학년 겨울 방학이다.

빈방 책상 위에 두툼한 봉투가 보인다. 살짝 들여다보니 생전 처음 보는 만 원짜리가 가득 들어 있다. 10원이면 호떡 2개를 먹을 수 있고, 만화책은 3권을 빌려 볼 수 있다. 한 장만 있으면 겨울 내내 호떡을 사 먹고 만화를 보고 또 봐도 남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설레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손끝으로 살짝 한 장을 잡아당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제풀에 깜짝 놀라 후다닥 다시 봉투에 밀어 넣었지만, 돌아봐도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여러 번 망설였지만 내손에는 이미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데 세어 보지도 않을 거야.’

‘한 장쯤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거야.’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물만 들이켰다. 저녁에 들어오신 아버지가 돈 봉투를 집어 들더니 세어 보기 시작하셨다.

“어? 맞지가 않네?”

다시 돈을 세어 보신다. 이번에는 방바닥에 한 장씩 내려놓으면서 세기 시작하셨다.

“이상하네? 왜 한 장이 부족하지?”

나는 또 물 한 대접을 들이켰다. 돌이킬 용기도 없었다.

다음 날 생전 처음 만져보는 만 원을 들고 한 걸음에 만화가게로 달려갔다. 아주머니가 보시더니 이렇게 큰돈을 어디서 바꾸냐며 당황하신다. 바지 주머니는 천 원, 백 원, 십 원짜리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날부터 난 바지를 벗지 않았다. 밤에도 바지를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설을 쇠러 시골 가는 날 새벽이었다. 어머니는 직장일로 바쁘셔서, 아버지랑 둘이 먼저 가기로 했다. 밖에서 아버지가 재촉하신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 하시며 억지로 바지를 벗기려 하신다.

“난 새 옷이 싫어. 입던 바지 그냥 입을래.”

바지 주머니에 든 돈을 들키면 큰일이다. 바지를 둘둘 말아 책상 뒤에다 잽싸게 숨겼다.

다행이다. 엄마가 못 봤다.


내일이면 설날이다. 아버지는 엄마 마중을 가야 한다고 아침 일찍 읍내로 나가셨다. 점심 나절에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다. 아버지께 온 엄마의 편지였다. 아직 시집 안 간 고모가 편지 내용이 뭔지 엄청 궁금해한다. 엄마의 연애편지일 거라며, 내게 뜯어보라고 간지럼 친다. 편지를 읽어보던 고모가 굳은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급하게 편지를 도로 넣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착한 두꺼비가 사는 부엌에서는 할머니와 작은어머니께서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새어 나온다. 할아버지는 닭털을 벗기고 계신다. 동생이 소리쳤다.

“엄마~!”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함박웃음을 지으며 싸리문으로 들어오고 계셨다. 안방에는 엄마가 사 온 선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 펼쳐졌다. 내 동생이 입을 예쁜 바지와 양말도 있다. 고모는 얼굴에 바르는 크림을 들고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갑자기 가운데 방에서 아버지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내 편지를 뜯어본 거야?”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부르셨다.

“저기 개울가에 가서 무궁화나무 가지를 꺾어 와라.”

동생이 나가더니 한 다발 꺾어 안고 들어 왔다. 예감이 불길하다. 싸리문을 들어오실 때만 해도 기분이 좋으셨다. 방에 들어가실 때도 웃고 계셨다. 그런데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바지 걷어!”   

무궁화 회초리가 여러 번 부러졌다. 그 사이 고모가 잘못했다며 편지 내용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가 회초리를 빼앗아 밖에 버리기 전까지 우리는 30대를 맞았다. 애꿎은 동생은 10대를 맞다가 울며 도망쳐 나갔다.


즐거운 설날인데 나는 다리가 펴지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엄마가 쟁반에 떡국 한 그릇을 들고 들어 오셨다.

“네가 숨겨둔 바지에 8천500원이 있더라. 실망해서 순간 편지를 썼는데, 부친 후에는 아차 후회했다. 아빠가 그 편지 버리기로 약속했는데, 고모가 그만 열어보는 바람에... 너도 동생처럼 도망이나 치지, 그걸 다 맞고 있니. 미련도 하지. 아빠도 마음이 많이 아플 거야.”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줄 간 내 종아리에 말없이 연고를 발라 주셨다.

아버지의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산다. 가족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나 용서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화를 내고도 더 마음 아파하셨다. 우리 집 귀한 장손을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그 후 아버지는 오래도록 그 순간을 자책하셨고 가슴 아파하셨다. 만화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랬다고 고백하지 못한 것을 나는 오랫동안 후회했다. 주변에는 나 때문에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내 동생...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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