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수학 시간, 선생님이 숙제해오지 않은 사람 앞으로 나오라 하신다. 숙제? 그런 게 있었나? 순간 까만 머릿속에서 하얀 별들이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선생님의 손바닥이 내 얼굴로 날아다녔다. 뺨을 비벼 보지만 감각이 없다.
저녁에 어머니가 오늘 있었던 일을 물으셨다.
“엄마, 아무 일 없었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시는 거니까...”
‘엄마도 맞아 보셨을까?’
늘 지휘봉을 들고 다니던 영어 선생님도 기억난다. 그 지휘봉이 가끔씩 사랑의 매로 변했다. 나는 사랑의 매가 싫었다. 뺨을 맞는 게 더 좋았다. 사랑의 매로 맞으면 종아리에 줄이 가고, 엉덩이에 불이 나서, 잠을 잘 때 어머니에게 들키고 만다. 밤마다 매 맞는 꿈을 꾸기 일쑤였다.
과학 선생님이 제일 착했는데, 내 한숨소리를 잘 알아주셨다. 숙제를 해오지 않아도 그냥 꿀밤만 주셨고 그때마다 과학자들의 재미난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 예쁜 이모의 슬픈 얼굴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새로 이사한 곳은 북아현동 골목에 있는 이모 집이었다. 판잣집이었는데, 시골에서 많이 보았던 대청마루가 있고, 자갈이 섞인 흙 마당에는 땅속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신기한 펌프가 있었다. 집 입구에는 착한 작은 이모가 운영하는 문방구도 있었다. 이제는 집에 가기 싫어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집에 가면 늘 예쁜 이모가 있어 좋았다.
나는 숫기가 없어서 여자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여자애가 내게 사전을 하나 내밀었다.
“너 가져. 나는 필요 없어. 근데, 나 모르겠니?”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 준 여자 친구였다. 가만 보니 전에 살던 집 마당에서 세수할 때 보던 그 친구였다.
예쁜 우리 이모를 닮았다.
이모는 가끔 이모부와 말다툼을 하셨다. 말다툼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언제나 착한 이모가 일방적으로 혼났고, 늘 잘못했다고 사과하셨다. 그런 날이면, 이모는 만두를 들고 오셔서, 아무 일도 아니니 어머니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셨다.
오늘도 이모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모는 누가 듣겠다고 작게 얘기하라고 애원하셨지만, 이모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모부는 우리와 사는 게 싫은가 보다. 문을 닫고 문고리를 꼭 쥐고 있어도 다 들린다.
나는 이모부가 싫다.
자갈이 섞인 흙 마당도 싫고, 신기한 펌프도 싫고, 이모의 문방구도 싫다.
눈물 흘리는 이모의 모습이 제일 싫다.
내 마음이 쓰린 것도 싫었다. 이사 다니는 게 싫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엄마, 다시 이사 가자.”
이모가 만두를 들고 들어오셨다. 이모의 환한 얼굴에서 슬픈 여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착한 이모의 예쁜 모습이었지만, 그날따라 이모의 환한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가보고 싶다고 졸랐지만, 친구들을 데리고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