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산 Oct 29. 2022

기대에 어긋나도 이어지는 꿈

그 대학 한 학기만 다녀보자

1) 아버지와 나의 다른 꿈


고등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을 면담하셨다. 아버지가 싱글벙글하시는 게 이상하다.

“네가 전교에서 16등 했단다.”

입학하기 전에 본 모의고사의 결과였다.

“계속 유지하면 서울대도 갈 수 있다더라. 네가 판검사 되면 소원이 없겠다.”

아버지의 기대가 커졌다. 벌써 판검사가 된 내 미래의 모습을 꿈꾸시는 것 같다.

나는 박희진 시인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셨는데도 질질 끌리는 청바지를 잘 입고 다니셨다. 그 선생님의 아호가 수연이라 했다. 선생님이 시를 읽어 줄 때는 꿈을 꾸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판검사보다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2학년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누었는데, 선생님이 이과를 선택하라 하신다. 내 성적이면 문과로 대학 가는 것을 힘들고, 이과를 가면 대학을 갈 수는 있을 거라 하셨다. 판검사는 물 건너갔다고 실망하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작가 꿈을 포기해야 해서 실망이다.


2) 그 대학 한 학기만 다녀보자


2학년이 되자마자 선생님들의 성화가 시작되었다.

대학교에 가려면 지금부터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등하교 길은 너무 힘들었다. 버스는 학생들로 미어터졌다. 나는 지각하기 일쑤였다. 건널목을 무단 횡단하다 경찰에게 걸리는 날이면 새끼줄로 두른 원 안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새벽에 등교하는 것을 애처롭게 생각하신 어머니께서 2학년 2학기에 학교 옆에 하숙방을 얻어 주셨다. 하숙생들은 다를 대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은 나 혼자였다. 나는 성대 심리학과를 다니는 형과 한 방을 썼다. 그 형에게는 멋진 청바지가 있었는데, 몰래 입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몹시 춥던 그해 겨울, 화장실을 다녀오다 어지러워 마당에서 쿵하고 쓰러졌던 기억이 난다.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하던, 주인집 거실에는 테레비젼이 틀어져 있었다. 일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일어났는데 다친 데는 없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한 밤이었다.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내 짧은 하숙 생활이 끝났다.


3학년 2학기에 육사 시험이 있었다.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시골 재빼기 정자나무 그늘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전설이 떠올랐다.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3대손에 유명한 장군감이 한 명 태어 날 거라 했다. 그 아이가 장성할 때 까지는 험난한 세월을 마주할 거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했다.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로 고생하셨고, 아버지는 625 전쟁으로 고생하셨다. 나도 지금껏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살았으니, 딱 맞아떨어진다.

육사 낙방이다.

장군이 태어난다던 할아버지의 전설은 착각이었나 보다.

내 친구는 합격했다. 아마 지금 쯤 나 대신 장군이 되었을 거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예비고사를 치르고,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 대학에 지원하고, 각 대학에서 진행하는 본고사에 응시해야 했다. 전기에 생물학과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육사에 이어 두 번째 낙방이다.

후기는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 하나? 하숙집에서 한방을 쓰던 형이 성대 심리학과에 다녔는데, 전기에 떨어지면 재수하지 말고 성대로 오라고 했다. 성대도 좋은 학교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학교 선생님께 찾아가 성대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 성균관대학교?”

“아니, 성대요.”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성대는 보이지 않고, 성균관대학교라고 쓰여 있는 교문이 보였다. 분명히 그 형이 성대라고 했는데? 이상하다. 수위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성대는 어디로 가나요?”

아저씨가 잠시 갸웃하시더니 손을 가리키신다.

“일루 쭉 들어가면 된다.”

성대는 좋은 학교였고, 성균관대학교는 아니라고 생각했데, 그게 그거였다니 실망이다. 문과로 가서 작가가 되는 것은 1학년 말에 포기해야 했다. 전기에 생물학과에 지원했지만 떨어졌으니, 과학자가 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해서 먹고사는 것은 공대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작가도 포기했고, 판검사도 포기했고, 생물학자도 포기했다.

싫다. 나도 싫고, 대학도 싫다. 

그래도 그 대학 한 학기만은 다녀보자.


이전 04화 엄마, 다시 이사 가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