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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파지 줍는 어머니

어머니가 돈을 버셨다고요?

1) 어머니의 환갑잔치


어머니는 환갑잔치를 원하셨다.

연세가 더 드신 아버지는 칠순 때나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환갑잔치를 원하시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타고 가던 버스의 충돌 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셔야 했고, 택시에 받히는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두 번의 사고에도 어머니는 훌훌 털고 일어나셨다. 그 이후로 어머니가 원하시면 언제든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반복적으로 틀어가며 백년해로 노래를 준비하셨다.


백년해로합시다.

당신의 흐르는 눈물, 내가 닦아 줄게요.

때로는 힘이 들고, 괴로워도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


어머니는 아내가 결혼 예물로 준비한 고운 한복을 입으셨다. 온 가족이 다 모였고, 시골에 계신 마을 어른들을 위해 버스도 대절했다. 대학원 시절에 늘 내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후배들도 초청했다. 그 후배들은 기꺼이 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흥을 돋워줬다. 동생은 덩치 큰 아버지를 업고, 나는 가벼운 어머니를 업고, 행사장을 한 바퀴를 돌았다. 아내도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한복을 입고 덩실거리며 춤을 추던 아내의 예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크게 즐거워하셨다. 내가 결혼할 때보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보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날 때보다도 더 즐거워하셨다. 이제, 아버지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식들의 눈치도 안 보고, 어머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사셨으면 좋겠다.


2) 어머니가 돈을 버셨다고요?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후부터는, 아버지께 용돈으로 쓰시라고 매월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 드렸다. 어느 날 명절에 부모님을 뵈러 갔는데 어머니께서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다.

“용돈을 따로 줄 수 없겠니?”

“부족하시죠?”

용돈을 풍족하게 드릴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버지가 안 준다.”

아버지한테 돈이 한 번 들어가면 잘 안 나온다고 하셨다. 모든 돈은 아버지께서 관리하시는 것은 알았지만, 두 분 쓰시라고 보낸 용돈을 어머니께 안 드리는 줄은 몰랐다. 그다음부터 아내는 어머니 용돈은 아버지 모르게 따로 보내 드렸다. 그렇다고 아버지께 드리는 돈을 반으로 줄일 수는 없었다. 명절 때에도 각각 따로 봉투에 담아 드렸다. 어머니께는 조금 더 많이 넣어 드렸다. 몇 년이 더 지난 어느 날, 팔순이 가까워져 오신 어머니께서 목돈을 주시며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그간 네가 보내준 용돈에, 내가 번 돈을 보탠 거다.”

“어머니가 돈을 버셨다고요?”


3) 파지 줍는 어머니


“어머니가 이상하셔.”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서울에 사는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야밤에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니신대.”

치매에 걸리신 걸까?

연세가 많이 되셨으니 그럴 수도 있다. 외할머니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불안했다.

어떻게 여쭤보지? 어머니 앞에서 차마 치매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잠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다행히도 최근 일을 잘 기억해 내셨다.

“그럼, 예전에 제가 입었던 배냇저고리 아직도 갖고 계세요?”

“그거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에요?”

큰일이다. 박물관에서 내 배냇저고리를 받아 줄 리가 없다. 진짜로 치매이신가 보다. 큰 회사를 운영하던 외당숙이 은퇴 후 박물관을 차리셨는데, 예전에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배냇저고리와 뜨개질로 수를 놓아 만드신 작품 등 몇 가지를 원하셔서 그 박물관에 기증하셨다고 했다. 이젠 그럴듯하게 이야기도 꾸며내시는 건가? 어머니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외당숙께 기증 사실을 확인받고서야 뛸 듯이 기뻐 어머니를 감싸 안아 드렸다.

어머니는 밤에 파지를 모으셨다. 어느 날 파지 줍는 분을 도와주게 되었는데, 파지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행여 남들이 볼까 봐, 밤에 몰래 파지가 많은 쓰레기통 옆을 서성였는데, 그것을 이상하게 본 이웃이 동생한테 걱정을 전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파지 줍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반대하셨다.

“동네 창피하게. 그깟 것 몇 푼이나 한다고! 당장 집어치워.”

“어머니, 제발 하지 마세요. 제가 용돈 더 드릴게요.”

신신당부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치매에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소일거리도 될 것 같아 어머니께 뜨개실을 사다 드렸다. 어머니는 밤을 새워가며 목도리는 물론 모자, 가방, 카드 지갑 그리고 그릇 받침 매트를 만드셨다. 아내는 그것을 예쁘게 포장해서, 천사가 만들어 준 거라고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어머니를 천사라고 불렀다. 천사가 만든 선물을 받은 지인들은 신기해하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머니는 파지 줍는 일을 그만두셨을까?

전화해 보면, 말로는 안 하신다고 하셨지만 계속 파지를 줍고 계셨다. 설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역시나 1층 마당에는 잘 펴진 종이박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머니, 어디서 가져왔어요?”

“옆에 공장을 하는 부부가 있는데, 모아 놨다가 내가 가면 문을 열어줘. 다른 사람한테는 문을 안 열어줘. 그런 곳이 몇 군데 있어. 나는 그냥 가져오기만 하면 돼. 고마워서 떡을 해서 좀 갖다 줬는데 절대 안 받겠다고 펄펄 뛰더라.”

마음이 참 고운 부부다. 그 부부도 부모님이 계실 거다. 파지 줍는 어머니를 보고 안쓰럽게 생각했을 거다. 아마도 부모님 생각에 파지를 모아 두었다가 우리 어머니가 오시는 것을 기다렸을 거다. 마음이 아려온다.

어머니가 신나서 말씀하셨다.

“얘야, 저 건넛집에도 파지 줍는 할머니가 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아. 그런데, 그 할머니도 들켜서 혼났단다. 아들이 잘 나가는 병원장이거든. 용돈도 많이 주는데 뭐가 부족하냐고. 아들 망신 그만 시키라고.”

“그래서 그만두셨나요?”

“아니야. 어젯밤에 뭔 소리 못 들었니?”

그러고 보니 간밤에 마당에서 뭔가 쿵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렸었다.

“그거, 그 할머니가 던져 준 거야. 아들한테 용돈은 받아야겠고, 심심해서 돌아다니다 파지를 보면 몰래 주워서 우리 집에 던져주는 거야, 대문 앞에 빈 병이 있지? 그것도 그 할머니가 놓고 간 거야.”


그날 밤 다 같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 할머니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조금 전까지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안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로 나가보니 현관문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무심코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마당 담벼락 위에 어머니가 위태롭게 서 계신다.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담장 위에서 양손을 옆집 벽에 대고 옆으로 살금살금 걸으시더니 마침내 2층으로 난 계단으로 발을 옮겨 디디셨다.

“아이고~ 도대체 뭐 하세요?”

“아니, 대문이 잠겨서 그랬지.”

파지를 정리하고 나서 대문 밖에 있는 빈 병을 들여놓는 중에 그만 문이 닫혔단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는데도 열어주는 사람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담을 넘으셨다고 하셨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어머니가 2미터가 넘는 담을 넘고 또 넘고 계속 넘고 있었다.

“어머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어머니는 90세가 넘으셨지만 아직도 파지를 모으고 계신다. 파지를 줍기 시작한 이후에는, 늘 달고 다니던 천식도 없어지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즐거워하셨다. 밤에는 하지 않기로 하고, 낮에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시간씩만 파지 줍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머니가 즐겁게 일을 하시고 더구나 더 건강해지신다니,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말리지 않는다. 아버지도 많이 변하셨다. 대문 밖에 있는 빈병을 보시면 슬쩍 안으로 들여놓으셨다. 우리는 집에서 먹고 남은 맥주나 음료 캔을 보면 납작하게 눌러 박스에 보관하는 습관이 생겼다. 운전해서 부모님 댁에 갈 때면 어머니는, 박스에 들어 있는 캔을 보시고,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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