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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묻어둔 마음의 상처

아빠, 그때 왜 칭찬하지 않았어?

1) 큰아이에게 남긴 상처


작은아이가 태어나고부터 큰아이의 시샘이 많아졌다.

유모차를 밀치기도 하고 얼굴을 꼬집기도 하고 틈만 나면 작은아이를 집적댔다. 착하기만 하던 아이였는데 왜 그러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어느 날은 방에 들어가 보니 작은아이 배 위에 올라타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탁탁 때리고 있었다.

큰아이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작은아이 때문에 엄마 아빠의 마음이 변했다고 느꼈나 보다.

앨범을 펼쳐놓고 큰아이를 업고 목마를 태우고 놀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그제야 마음이 풀렸는지 헤헤하고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기 전 날 가지고 있던 구슬과 딱지 등을 모두 작은아이에게 주었다.

“이거 전부 네 거 해. 형은 내일부터 초등학교 가야 해.”

놀 때만 빌려주고 놀고 늘 자기 거라고 챙기던 아이였는데, 자기 것을 동생에게 다 주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대견해지나 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싶어 주말에는 바다와 계곡으로 자주 놀러 다녔다. 바닷물 속을 유심히 지켜보던 작은 아이가 뭔가 발견했는지 흥분해서 소리쳤다.

“낙하산 타고 날아간다가 있다.”

물속에는 이리저리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해파리가 있었다. 처음 봐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름을 몰라 그렇게 불렀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차 뒷자리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장난을 친다. 위험하니 창문을 닫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얼핏 보니 큰아이가 뭔가를 창밖으로 던지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야단쳤다.

“던지지 말라고 그랬지. 내려. 너 여기 두고 간다.”

“안 던졌는데...”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큰아이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다음 휴게소에서도 내리지 않았다.

집에 와서야 정신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큰아이는 참고 있었다. 뒤늦게 큰아이가 많이 놀란 것을 알았다. 길거리에 두고 간다고 했던 말에 너무 크게 상처를 받았나 보다.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 주고 말았다. 별것도 아닌 일을 너무 심하게 야단쳤다.

그때 미안하다고 말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된다.

아빠가 미안하다. 너무 많이...


2) 아빠, 그때 왜 칭찬하지 않았어?


어디선가 까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 반대편에서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지르는 외침이었다. 중학생이던 둘째 아이가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뭔 일일까? 궁금증은 노래방에 들렀을 때 금방 풀렸다. 녀석의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시원한 고음을 낼 때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와~ 우리 혁이, 너무너무 잘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노래를 잘했을까? 브레이크 댄스도 신기할 정도로 잘했다. 다 같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탄했다. 아내도 손을 휘저으며 즐거워했다.


고교에 진학한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늦은 밤, 아이가 참고서로 얼굴을 가린 채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측은한 마음이 밀려왔다. 조심스레 참고서를 들어내는데 또 다른 작은 책이 얼굴에 덮여 있었다. 보컬 발성법에 관한 책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니?”

“노래.”

아이는 학원에도 수시로 빠지고 노래방에 가서 몰래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고 실토했다. 솟구쳐 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으며 타이르는데,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 그때 왜 칭찬하지 않았어?”

아이는 자신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반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야기를 했다. 학교 대표로 줄넘기 대회에 나갔던 이야기도 했다. 큰 기대에 부풀어 상장을 내밀었지만 아빠도 엄마도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늘 칭찬받는 형의 그늘에 갇혀 자기 자신은 없었다고 했다.

밤새도록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집에서는 큰아이에 대한 칭찬만 해왔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대통령 장학생으로 KAIST에 다니는 큰아이를 다들 부러워했다. 아내와 나는 작은아이도 저절로 큰아이처럼 될 거라고 굳게 믿어 왔다.

작은아이의 소외감이 많이 컸을 텐데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부모에게 잘 보이려고, 칭찬 한 번 받아 보려고, 몸부림쳐 온 안타까운 시간들이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왜 알아주지 못했느냐는 아이의 말이 내 마음속을 후벼 파며 지나갔다.

노래방에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너무 잘한다고 했던 그 칭찬 하나가

아이의 마음속에 깊게 깊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며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힐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가족이란 이름으로 가슴에 묻어 두고 있다. 그때 묻어둔 상처가 언젠가는 날카롭게 뛰쳐나와 서로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간 살아오면서 참고 묻어 두었을 아내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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