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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산 Oct 29. 2022

누구나 나의 착한 의사

아이들의 선물

1) 우울증


퇴원한 작은아이가 정상을 잘 찾아가고 있다.

조금씩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아이의 전화 벨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랐었다. 마음을 졸여가면서도 애써 태연 한척하며 통화를 했다. 연락이 잘 안 될 때는 한동안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위에 아프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담배와 술을 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다 끊고 나면 나는 뭔 재미로 사나?

재미있는 게 뭐지?

요즘엔 인생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가끔은 우울하기도 하다. 머리 쓰는 일은 싫고 단순한 운동이 좋다.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이 더 우울해지고 더 힘들어졌다. 

아내는 내 힘든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눈치는 챘겠지만 그냥 누구나 겪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내에게 이야기했으면 나보다 더 큰 걱정을 했을 거다. 아내가 갱년기 현상으로 고생할 때도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고 걱정만 했었다. 아내는 스스로 잘 이겨 냈다. 나도 이겨내야 한다.

어느 날 친한 몇 동료들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연락하면 나랑 놀아줘. 그때는 내 마음이 힘들 때야!”

그냥 물어본 안부 문자 하나에도 나이 어린 동료들은 기꺼이 달려와 나에게 시간을 내줬다. 언젠가는 나도 그 친구들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줄 거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하면 말해 줘. 그럼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많이 힘들 땐 그냥 아무런 문자라도 남겨. 

그럼 금방 알아채고 달려갈게.


2) 공황장애


출퇴근길에 가끔씩 현기증이 느껴졌다.

주로 터널이나 광안대교를 통과할 때 느껴졌고, 날이 갈수록 빈도가 조금씩 더해졌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셨나?

나이 들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겠지?

강의를 끝내고 복도를 걷는데 중심을 잡을 수 없게 어지럽다. 비틀거리며 연구실로 와 자리에 앉았지만 머리가 빙빙 돈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혈압이 오른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러다 쓰러지겠다. 내게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급하게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갔다.

심장내과 의사 선생님과 면담했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어디입니까?”

“혈압이 높아 뇌에 있는 실핏줄이 터질 것 같아요.”

“그럴 정도면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뇌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그 의사는, 뇌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며, 즉시 심장내과에 입원을 시켜줬다. 다음 날부터 여러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입원 3일째 되는 날 의사가 퇴원하라고 했다. 병명을 물어봤지만 그냥 어지럼증이라고 하였다. 더 검사할 것도 없고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다.

한동안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광안대교만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특히 출근길에 차가 정체되어 있을 때는 더 불안했다. 온갖 불길한 생각이 밀려오고 심장이 두근두근 마구 뛰었다. 

공황장애 현상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로는 뇌혈관 안 터집니다. 의식을 잃고 온 것도 아니고, 아무 이상 없다는데 뭔 걱정이 그리 많습니까? 그냥 맘 편히 사세요.”

자신에 찬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문득문득 불안감이 밀려올 때에는, 그 의사를 떠올리기만 해도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의사다.


3) 아이들의 선물


작은아이의 말투가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좀 섭섭한 느낌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도 다 큰 어른이 되었다. 큰아이는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를 더 해 본다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연구소로 떠났다. 어느 날 큰아이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엄마를 위한 생일 선물이라고 하였다.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얼마 후 노래를 잘하는 작은아이도 녹음한 음악 파일을 보내왔다.


'그림 같은 집이 뭐 별거겠어요.

어느 곳이든 그대가 있다면 그게 그림이죠...'


가족이라는 말이 의미가 새롭게 느껴진다. 아이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걱정도 사라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놓인다. 아내의 휴대폰 속에는 아이들의 음악이 곱게 간직되어 있다. 내 차에도 두 아이의 노래가 여기저기 여러 CD에 보관되어 있다. 아이들의 음성과 함께 어느새 행복한 미소가 온 세상에 번져 갔다.

잡다한 생각과 우울한 마음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주변에는 착한 의사가 있다.

병원 의사가 아니어도 마음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착한 의사다.

그 사람이 나의 의사일 수도 있고, 내가 그 사람의 의사가 되어 줄 수도 있다.

아프고 힘들 때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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