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 얘기는 없니?
어머니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지 1개월 만에 초고 일부분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어린 시절과 서울에서 자라며 겪은 이야기 그리고 부산에 내려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있는 그대로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보기 좋으라고 글자 크기를 크게 했더니 제법 되는 분량이었다. 며칠 후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그런데, 왜 그 얘기가 없니?”
“뭐가요?”
“네가 대학생일 때... 생각 안 나면 말고...”
뭔지 금방 짐작이 갔다. 그 내용은 쓰기 싫어 빼놓은 내용이었다.
2)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내가 대학생이 된 후에는 어머니가 내게 화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뭐라고 대꾸하면, 어머니는 늘 미안해하셨다. 어느 날, 방에서 혼자 노닥거리고 있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또 뭐라고 걱정하시며 중얼거리시는 소리가 들렸다. 중얼거리지 말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지, 아버지께도 큰소리로 대들어 보시지, 매일 같이 걱정하시며 중얼거리기만 하시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또 화를 참지 못했다.
어머니가 듣고 있던 라디오를 부엌 바닥에 내팽개쳤다. 라디오가 박살 났다. 어머니가 놀라 소리 내며 눈물을 쏟으셨다. 나도 놀랐다. 어머니를 붙들고 나도 엉엉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그간의 서러운 얘기를 한 시간 동안 들려주셨다.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장남에게 시집 온 후 온갖 궂은일을 다 하셨다. 두 분 작은 아버지와 세 분 고모들의 분가를 도우셨다. 고모들을 씻기고 입히셨고, 3살이던 막내 고모는 업어 키우셨다. 재주가 많았던 어머니는 모시를 짜고 베틀을 돌리셨고 손수 옷을 만들어 온 가족들에게 입히셨다. 이웃집에 바느질을 해주고 품삯을 받아 오기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한 이후에는 홀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셨다. 시골에 두고 온 내 동생 생각에 늘 가슴 아파하셨지만, 힘들어도 내가 잘되는 것 하나 만을 바라보고 참고 사셨다 했다. 평생 찍소리 못하고 죽어 빠지게 일만 하셨다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대우를 하진 못할망정, 아버지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구박만 한다고 하셨다.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는 박살난 라디오를 보고도 내게 아무 말도 없으셨다. 아마도 어머니가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뜨렸다고 사과하셨을 거다.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3) 아버지의 첫 번째 사과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셨다.
말다툼이라고도 할 수 없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면 늘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대꾸도 잘하지 못하시고 눈물만 흘리셨다.
“엄마, 아버지가 왜 그래요?”
“아니야. 엄마가 잘못한 게 있어.”
오늘은 어머니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고등학교 때는, 새벽에 등교하고 늘 밤에 들어왔기 때문에,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 잠시 이모 집에서 살아야 했을 때, 이모도 이모부와 가끔 말다툼을 하셨다. 언제나 이모가 일방적으로 혼났고, 늘 이모가 잘못했다고 사과하셨다. 그때는 말다툼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그냥 기분이 우울해질 뿐이다.
우리 집도 똑같았다.
어느 집이나 싸움을 하나 보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윽박지르는 게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아버지께 큰 소리를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대학생이 된 후부터는 내게도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그냥 걱정만 하셨다. 어머니 속이 많이 썩으셨을 거다. 아버지는 사과하는 법이 없었다. 말도 늘 간단명료했다. 기분 좋을 때만 내게 이런저런 말을 길게 건네셨다. 언젠가부터 나도 간단명료해졌다. 내가 기분 좋을 때 아버지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방에 들어갔더니 아버지가 나가 있으라 하신다. 나는 그냥 서 있었다. 오늘도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혼나고 눈물을 흘릴게 뻔했다.
“엄마가 뭘 잘못했는데요?”
“이놈이?”
“왜 엄마한테 윽박지르기만 하세요?”
아버지가 손을 치켜올리셨다.
“네가 뭘 안다고?”
“의이 씨~ 때려 보세요.”
당황한 어머니가 다급하게 말리셨지만, 뿌리치며 소리쳤다.
“난,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의 손바닥이 아프지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홀로 술잔을 길게 기울이셨다. 그리고 다음 날 어머니한테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그간의 어머니의 서러운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옛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시집와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신다. 그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온 인생을 아버지가 몰라주는 게 제일 서럽다고 하신다. 내가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 했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으신다. 내가 먼저 끄집어내도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늘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돌리신다. 요즘은 아버지도 많이 변하셨다. 살면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가끔 어머니를 칭찬하기도 하신다. 잘해준 게 뭐냐고 대보라고 어머니가 물어보시면, 아버지는
“미안하네. 고생한 거 다 알어~ 누가 모른댜?”
하고 얼버무리신다.
어머니 눈에는 또 눈물이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