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산 Oct 29. 2022

혼수상태에 빠진 작은아이

회복 그리고 상실

1) 경찰이 전하는 말


2016년 여름 새벽에 누군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경찰 두 명이 현관문 앞에 서 있다.

“아드님이 고대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혼수상태랍니다.”

힘이 쭉 빠지고 정신도 혼미해졌다. 작은아이는 어젯밤에, 회사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고, 전화를 했었다. 회사 대표와 거하게 저녁 회식을 하고, 연구실 동료와 술을 한잔 더 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혼수상태라고? 믿기지 않았다.

경찰의 말로는 새벽에 친구 집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했다. 경찰이 바꿔준 전화기에서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체온요법을 해야 하는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럼 당장 시행하세요. 그러면 깨어나는 거지요?”

“장담은 못합니다. 뇌사상태에 빠질 수도...”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뇌사상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2) 작은아이의 혼수상태


작은아이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입과 코에 여러 개의 굵은 호스가 꽂혀있고, 가슴에 전기 충격기가 달려 있고, 팔에는 주사기가 연결되어 있고, 팔다리가 병상에 묶여 있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혁아, 일어나 봐!”

“엄마가 왔잖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빨리 일어나야지.”

아내와 큰아이가 번갈아 큰 소리로 작은아이를 깨우려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입 밖으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힘없이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내는 작은아이의 팔을 연신 주무르며 아이를 불러 댔다. 그때 작은아이가 반응을 했다. 눈을 뜨진 못했지만 작음 신음소리와 함께 몸을 조금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주치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사경을 헤매는 자식을 보고 있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중환자실의 면회는 하루에 한두 번 짧은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병실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다. 면회시간에도 잠시 지켜보다가 나온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온갖 생각이 다 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각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위로의 말에 희망을 걸뿐이다.


못 깨어나면 어떻게 하지? 나는 장기기증을 생각을 했다.

“아빠, 나도 기증할 생각이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작은아이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기증할 생각을 했는데, 큰아이는 자기 장기를 기증해서 동생을 살릴 생각을 했다. 큰아이가 나보다 낫다. 그런 대단한 결심을 했다니 놀랍고 대견하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말할 수 없이 든든하고 믿음이 가고 의지가 된다.


애타 하는 아내를 데리고 부모님 댁으로 갔는데, 예고도 없이 웬일이냐고 어머니가 환하게 반기신다.

“그런데 작은 애가 며칠 째 안 들어왔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 급해서 말도 못 하고 출장 갔대요.”

아이를 찾는 어머니에게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피곤에 지쳤는지 자면서 계속 신음 소리를 냈다. 잘 자야 하는데, 내일도 또 힘들 텐데, 아마도 작은아이의 꿈을 꾸나 보다. 핼쑥해진 아내의 모습이 애처롭다. 팔을 주물러주는 것 이외에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작은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나 보다.

벌떡 일어나 급하게 방문을 열고 나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고 1층 대문을 내려다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중환자실에 있다.


아이의 지도교수와 연구실 친구들이 문병을 왔다. 다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새벽에 같이 술을 마신 친구도 보인다. 쓰러진 우리 아이에게 응급조치를 해주고 119를 불러준 고마운 아이다. 우리 아이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못 하고 다들 괴로워하고 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친구들이 잘 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별일 없을 테니, 그만 학교로 돌아가세요."

우리 아이 때문에 아파하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프다.

계속 우리 아이의 곁에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애써 위로의 말을 해주고 돌려보냈다.


3) 회복 그리고 상실


아이의 몸이 너무 차디차다.

아이는 계속 잠들어 있다. 짧은 면회 시간에도 가끔 경련도 일으켰다. 의사도 간호사도 긴장을 했다. 이제는 저체온 치료의 마지막 단계로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자극에 반응하는지를 살핀다고 하였다. 면회시간이 끝나면 또 다음 면회시간을 기다린다. 시간이 더디 간다. 아내는 면회시간이 아닌데도 아이를 보러 중환자실을 들락거렸다. 간호사도 모르는 척 눈감아 줬다. 병실을 둘러보고 나오던 주치의가 말을 붙였다.

“오늘은 여기 있어도... 내일 일찍 오세요.”

오늘 밤부터 아침까지 의식 회복을 시도한다고 했다. 의사가 밤새 지켜보겠다고 했다. 의사의 말에 마음이 놓인다.

더 이상 의사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

더 물어보면, 더 우울한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은 애한테 뭔 일이 있지?”

엄마는 아이의 옹알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다 안다. 아이의 표정만 봐도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안다. 어머니는 이미 벌써 알아챘다고 하셨다. 말을 해 줄 때까지 기다려 보려 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하셨다. 사실을 이야기하면 아마 큰 충격을 받으실 거다. 그냥 별일 아닌 듯 둘러 댔다. 출장 중에 빈혈로 쓰러졌는데, 종합검사받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미심쩍어하셨다.


다음 날 아침, 주치의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만다행으로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연신 머리를 숙였다. 정말 다행이다. 너무 행복했다. 아내가 모처럼 미소를 지으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런데 기억 상실이 좀 있습니다.”

의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몇 년간의 기억을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깟 몇 년간의 기억상실은 문제없다. 잘 버텨준 우리 아이가 감사하고 감사하다.

“혁아, 알아보겠니?”

“응, 엄마. 그런데 내가 왜 여기 있어?”

아이의 눈동자가 흐리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대답을 잘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된다. 작은아이는 왜 여기 있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고의 기억을 못 하는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잠시 의식을 잃었었는데, 다 잘 되었어.”

어머니가 달려오셨다.

“이제 되었다. 이제 됐어.”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셨다. 그간 우리 모르게 많이 애를 태우셨나 보다.


아이는 점차 기억을 찾아갔다. 쓰러지기 전까지의 일들을 다 기억해 냈지만, 그 후 입원하고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3일간의 기억은 해내지 못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힘든 순간을 기억하면 아프기만 할 거다.

의사가 부정맥의 일종인 브루가다 증후군이라 했다. 아이 가슴에 조그맣고 얇은 심장박동기를 삽입했다. 몸에 금속 이물질을 삽입한다는 게 싫었지만, 보험 삼아 넣어 두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을 따랐다. 아이는 병상에서도 3개월 후 네덜란드에서 발표하기로 한 논문을 아직 수정하지 못했다고 한동안 걱정했다. 건강을 찾아가는 모습에 안도했지만, 그간 연구하면서 받아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아이는 10일 만에 퇴원하고, 곧바로 학교 연구실로 복귀했다.

이제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헤~하고 웃어보자!

이전 14화 묻어둔 마음의 상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