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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n 11. 2023

생일

내가 살아가는 방식(2023/05/22의 기록)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매해가 지날수록 어쩜 생일에 대한 감흥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러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일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며, 나는 너의 생일선물을 챙겨줬는데 너는 왜 나의 생일선물을 챙겨주지 않는 거니와 같은 것들로 인해 서운해하고, 축하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친구들을 기다리고 서운해하며 생일을 온전히 보내지 못했었다. 무언가 그날이 그동안의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결과를, 그러니깐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점수를 보여주는 날처럼 느껴져 생일이라고 즐겁기는커녕 생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운 마음과 함께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욱 컸다. 나는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그 사람이 내게 축하 메시지가 없는 것을 보고 혼자 마음정리를 하며 우울해한 적도 많았다. 그깟 겉만 번지르르한 생일축하인사가 뭐 그렇게나 대단하고 받고 싶다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나 그 생일축하메시지에 목숨을 걸었을까.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생일선물을 챙겨 주거나 생일을 축하해 줄 때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 그것들을 다시 돌려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그들이 나의 생일날 내가 해준 것처럼 똑같이 해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화가 났던 것이다. 그저 마음깊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 없이 선물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 아닌, ‘언젠간 저 사람도 나에게 주겠지’라는 기브 앤 테이크적인 마음을 가지고 대가를 바라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나 서운하고 사람들의 축하메시지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고 우울했던 것이다. 그것을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 친구가 나의 생일을 챙겨주지 않으면 어떠하랴. 그저 내가, 내 마음이 이 사람이 좋아서 이 사람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어서 챙겨주면 그만인 것을.


그때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을 했다. 대가를 바랄수록 나만 괴롭고 선물을 주는 의미가 변질되어 버렸다. 상대에게 바랄수록 욕심도 커지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친한 친구들이 혹여 나의 생일을 까먹더라도 나 또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친구생일을, 가족생일을 까먹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기에 그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올해 생일은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선물을 안 챙겨주면 어떠하랴. 그 바쁜 와중에 내 생일을 까먹지 않고 축하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 내 생일을, 나만의 날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생일이라고 굳이 남에게 보여주기식의 성대한 파티와 사진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에게 귀 기울이며 오늘 하루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며 보내는 것이 진정 생일다운 생일을 보내는 것이지 않을까. 결국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고, 나만이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이니깐. 그래서 오늘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만나자는 친구의 말도 거절한 채 그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내 방에서 소소한 나만의 생일파티를 벌인 것이 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행복함을 느꼈고 편안함을 느꼈고 즐거웠다. 그거면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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