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 Sep 23. 2023

드디어 주소등록과 내게도 생긴 일본 전화번호

도쿄 워홀일기 11 (2023/09/13)

오늘도 아침부터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에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다. 하지만, 어제 늦게 자는 바람에 알람소리를 듣고도 눈이 떠지지 않아 결국 8시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할 일이 많은 오늘, 더 이상 누워있으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억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 뜨고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아직까지도 한여름 같은 일본의 햇빛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 한 두 명씩 버스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버스를 타고는 원래라면 미리하고도 남았을 주소등록을 하기 위해 구청으로 향했다. 30분 정도를 타고 가자 드디어 세타가야구청이 보였다. 버스에 내려서는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연습을 했던 ”住所登録しに来ました(주쇼토로쿠 시니 키마시타)“를 읊조리며 문을 열었다. 그리곤 곧바로 앞에 보이는 안내원에게로 가 떨리는 마음으로 ”すみません。 あの、住所登録しに..(스미마셍.. 아노,, 주소토로 쿠 시니..)“라고 하자 그분은 바로 “あ ー “ 라며 나를 데리고는 여러 서류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한국어로 되어 있는 서류를 하나 집어 들곤 나에게 이걸 다 작성하면 된다고 하여 나는 안내원의 말대로 하나하나 다 작성을 마치고는 그대로 그 종이를 들고 다시 안내원을 찾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직접 번호표를 뽑아주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여 그렇게 몇 분 정도를 기다리고 있자 내 번호가 불려 나는 그대로 서류를 들고는 창구직원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다행히 듣는 것은 얼추 되는 나는 그 직원분의 말을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일본어도 못하는데 불친절한 사람에게 걸리면 어쩌지’라는 고민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직원분은 너무나 친절했다. 그렇게 주소 등록을 마치고는 곧바로 국민연금면제와 건강보험감면 신청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이것들은 주소등록과는 다르게 대기 없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다행히 이 분들도 너무나 친절했다. 여러 블로그들에서 한국과는 달리 일본 구청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거의 하루를 잡고 가라는 글을 보고 왔던지라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업무가 빨리 끝나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업무가 다 끝나버렸다. 그래서 곧바로 계속해서 만들고 싶었던 일본번호를 만들기 위해 신주쿠로 향했다. 신주쿠의 ‘빅카메라’라는 전자제품 판매점에 마침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글을 봐 그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일부로 신주쿠로 찾아갔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인 직원에게 상담받을 것을 기대하고 온 것이 무색하게 이미 한국인 한 명이 상담을 받고 있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인 직원과 상담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다행히 듣기는 그럭저럭 되어 그 직원의 말은 얼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물어보는 것보다는 거의 들어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친절한 일본인 직원과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며 계약을 했는데, 갑자기 일본인 직원이 내게 일본어를 잘한다는 말을 해 나는 너무나 민망했다. 듣기는 잘하지만 말은 잘 못하는 거의 반쪽짜리 일본어에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니 너무나 뻘쭘했다. 하지만 그래도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로 답하며 웃어 보였다. 그렇게 오늘 드디어 나에게도 일본 전화번호가 생기는 짜릿한 일이 일어났다.


그 이후로는 집 근처에 다이소가 없어 너무나 한탄스러웠던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다이소에 가 그동안 사려고 했던 것들을 사 왔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가볍게 나온 아침과는 달리 양손이 무거워졌다.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는 집으로 향하자 무언가 이제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은 익숙해진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새삼 내가 벌써 일본에 온 지도 열 흘이나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열흘이 마치 한 달과도 같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첫날 혼자 낑낑거리며 양손 무겁게 집으로 오던 날이 너무나 까마득한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두려워졌다. 친구들과 매일 카톡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내게 너무 부럽다고, 일본 생활은 어떻냐고 좋냐고 묻지만, 지금의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일본이고 뭐고 별 감흥이 없다. 정말 단 하나도 감흥이 없다.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고, 현재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예민하고 불안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어 지금은 벅차다는 기분만 든다. 그래서 앞으로 더 벅찬 일들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워홀의 설렘과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언제 또 내가 이렇게 일본에서 살아보겠느냐 라는 생각을 하면 그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진다. 그래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 이 1년을 정말 잘 지내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쉴 틈 없이 울리는 인터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