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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Sep 27. 2023

일본에서의 스몰토크도

도쿄 워홀일기 12 (2023/09/14)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라 어젯밤 7:2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는 잠에 들었다. 한국에도 일본과 같이 정해진 시간에만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그런 곳들이 많지만, 우리 집은 아무 때나 쓰레기를 버려도 되었기 때문에 쓰레기 버리는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거의 대부분의 집이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요일에만 쓰레기를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것이 조금 귀찮게 느껴졌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아니 일본에 왔으면 일본법을 따라야 하는 것을. 세타가야 구는 타는, 그러니깐 가연 쓰레기는 월/목 8시까지 내놔야 하기 때문에 일부로 사람들이 많지 않을 7시 2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자다가 너무 더운 나머지 눈이 저절로 4시에 떠져버려 그 상태 그대로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아 그냥 그대로 점퍼를 챙겨 입고는 양손 가득 쓰레기봉투를 쥐고 현관문을 나섰다. 밖에 나와보니 이미 쓰레기를 버리는 곳인 초록색 그물에 쓰레기봉투가 하나 나와있었다. ‘역시 이곳에도 발 빠른 사람이 존재하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그 옆에 나란히 쓰레기봉투 두 개를 놔두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요즘 일본의 길조인 까마귀가 아침만 되면 울어대는 탓에(한국에서는 산비둘기였는데 이번에는 까마귀라니.. 나를 못 깨워서 안달인 존재들) 아침마다 귀를 틀어막으며 잠에서 깬다. 그러다 어제 사온 귀마개가 떠올라 얼른 귀마개를 꺼내서는 도로 잠에 청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 9시가 되어 며칠 전부터 열리지 않던 우편함에 대한 문의를 하기 위해 관리회사로 전화를 했다. 관리회사는 일본회사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전화를 할 생각에 나는 아침부터 긴장이 되었다. (사실 어제저녁부터 긴장을 하며 잠을 잤다) 한국에서도 끔찍했던 전화공포증이 여기 온다고 나아질 리 없는 나는, 더욱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전화를 할 생각에 너무나 떨려 일본어를 메모장에 적어 내려 연습을 하고는 관리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もしもし(모시모시)”라며 그쪽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메모장에 적혀있는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나의 말을 알아들은 직원은 확인을 해보겠다며 내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자 다시 전화가 연결이 되어 그쪽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열리지 않았던 우편함은 사실 처음부터 틀린 비밀번호를 알려주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번호로 받아 다시 시도를 해 보자 너무나 한 번에 잘 열려 그동안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던 무언가가 사라진 마냥 가슴이 가벼워졌다. 그리곤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입주를 한 후 원래 있는 스크래치와 집 안의 상처들을 하나씩 확인하고는 종이에 적어 관리회사로 보내야 한다. 나중에 내가 집에서 나갈 때 보낸 종이에 적혀 있는 상처들을 가지고 내가 새롭게 만든 상처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 그런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내가 낸 상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수리를 요구할 수 있는 그런 끔찍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피며 사진을 찍고는 글자들을 써 내려갔다. 그랬더니 무려 40가지의 상처와 스크래치를 발견할 수 있어 그것들을다시 서툴기 그지없는 한자들로 써 내려가니 시간이 무려 2시간도 넘게 걸려버렸다.


그렇게 다 작성한 종이를 다시 곱게 접어 봉투함에 넣고는 우체통에 넣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집 근처에 다행히 우체통이 있어 오랜만에 우체통에 우편을 넣는 그런 추억의 기분을 만끽하며 봉투를 밀어 넣고는 그대로 천 원 샵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거의 다 사 오긴 했지만 그래도 미처 사 오지 못한 것들이 있어 집에서 25분 거리에 있는 천 원 샵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교통비를 아끼고자 걸었던 것이 한 10분쯤 걸었을까 급격하게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너무나 덥고 햇빛이 너무나 뜨거운 일본의 날씨를 내가 잠시 잊었나 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십 여분을 더 걸어가자 천 원 샵이 나왔고, 나는 거기서 이것저것을 고르며 쇼핑을 했다. 미처 옷걸이를 챙겨가지 못한 탓에 옷걸이가 하나도 없던 나는 무려 40개의 옷걸이를 고르고는 계산을 하러 갔다. 그러자 일본인 직원은 내게 “옷걸이를 많이 사시네요” 라며 말을 걸었고 그 말에 조금 놀란 나는 하하 웃으며 “제가 옷이 좀 많아서요” 라며 대답을 했다. 무언가 이렇게 일본인직원과 스몰토크를 하니 가슴이 간질간질거렸다.


그 이후로는 마트에도 가 장도 좀 보고, 이번에는 걸어가기에는 짐도 많고 더워 그냥 버스를 타고는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산 것들을 정리하고 옷 정리를 하다 보니 오후가 그렇게 다 지나가버렸다. 노느라 미처 끝내지 못했던 일들을 다 하느라 이번주는 정말 하루종일이 바쁘고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드디어 오늘에서야 그 일들이 얼추 다 끝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녁에는 편의점에 가기 위해 나와서 거리를 걷는데 조용하고 예쁜 하늘이 너무나도 나의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만들었다. 이제야 좀 마음이 진정되고 적응이 된 나는 드디어 일본의 풍경을, 일본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쁜 풍경을 보고는 “아 내가 정말 일본에 와있구나. 1년을 정말 잘 지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항상 여행으로 여름만 경험했던 일본을 이번에는 4계절 전부 경험을 해보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그렇게 야경을 구경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집에 들어와 씻고 앉아 이 글을 쓰는데 마음이 평화롭다. 그래서 마음이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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