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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Oct 04. 2023

나 사실 한식 좋아했잖아..?

도쿄 워홀일기 13 (2023/09/15)

오늘은 아침부터 일어나 영상을 만들었다. 무슨 영상인가  하면은 일본에 온 김에 일본생활을 간단하게나마 찍어 간직하기 위해 일주일간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찍었던 영상들을 가지고 만든 영상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만들기 시작한 것이 거의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만든 영상을 다시 보니 불과 며칠 전의 일이긴 하지만 다시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보는 내내 나 또한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게 되어 재밌었다.


영상을 만든다고(유튜버도 아니고 나 원참) 점심을 건너뛴 나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이 먹고 싶어 마트에라도 다녀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며칠 전에 돈키호테에서 사 온 신라면이 불현듯 떠올라 잽싸게 일어나서는 부엌으로 향했다. 역시나 부엌 서랍장 안에는 라면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로 집어 들고서는 빠르게 냄비에 물을 올렸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가스레인지 앞을 서성거리며 물이 끓기까지 기다리던 나는 드디어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하자 잽싸게 수프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풍겨져 오는 그 그립던 냄새에 하마터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꼬들면을 좋아하는 나는 곧이어 넣은 면을 얼마간 휘젓다가 금세 불을 끄고는 얼른 냄비 채 책상으로 가지고 와서는 곧바로 냄비 속에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면을 들어올려 입에 넣자마자 오랜만에 입 안과 목구멍으로 퍼져오는 그 매콤하고 자극적인 맛에 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에게 음식이란 딱 신라면정도의 맵기부터 시작하는데, 일본에 와서는 간장베이스에 달고 짠 음식만 먹어와서 그런지 더욱더 이 얼큰하며 매콤한 맛은 내게 배가 되어 다가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식을 좋아해 친구를 만나면 거의 10번 중에 8번은 일식을 먹으러 갈 정도로 자주 먹으러 가고 나 또한 일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그런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다. 사실 그동안 난 한식화된 일식을 좋아했던 거지 현지의 일식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요 근래 들어서야 깨닫고 말았다. 더운 날씨와 섬으로 이루어진 탓에 음식이 다 짠 것인지 먹을 때마다 모든 음식들이 내 입에는 너무나도 짰다. 또한, 간장과 된장베이스로 맛을 낸 음식들이 많아 다양한 맛을 느낄 수가 없어 더더욱 한식생각이 났다. 평소에 한국에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던 한식과 김치가 여기 오니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여기 와서 처음으로 입맛 때문에 한국을 떠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이 매콤함을 맛보자 그동안 없던 식욕이 다시 생겨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순식간에 라면 하나를 해치우고 나니 드디어 제대로 된 밥을 먹은 듯한 기분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요즘 일본 음식이 잘 맞지 않는 탓에 식욕이 없었는데, 이 신라면 하나로 식욕이 다시 회복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는 드디어 조금 여유로운 기분으로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뒹굴거리면서도 교통비가 너무 비싸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자전거도 한 번 찾아봤다. 마침 중고로 괜찮은 자전거를 파는 사이트를 발견해 바로 주문을 하려고 하자, 한국에서 발급받은 카드로 결제를 할 경우에는 본인인증전화가 필수적이어서 핸드폰 정지 시키고 온 나는 결국 나중에 문의를 해보기로 하고 밀린 청소를 했다. 역시 어디서든 금방 쌓이고 마는 먼지와 집안일을 끝내고는 가만히 누워 지금 남아있는 돈을 생각해 보는데, 이 정도면 조금은 여유롭게 아르바이트를 구해도 되겠지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해져 당장이라도 아르바이트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음은 좀 더 쉬고 싶은데 머리는 혹시 모르니 얼른 아르바이트를 구하라고 난리였다. 아직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탓에 매일매일이 안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에 대한 걱정인데  계속 그 걱정이 꼬리의 꼬리를 물자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그 걱정만 하고 있어 머리가 다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 에이, 그래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걱정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운이 좋잖아!‘ 라며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다다음주부터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돈이 있다 하더라도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또 겨울에 삿포로로 여행을 가고 싶기 때문에 미루는 것보다는 얼른 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계속해서 비가 오다 말다, 천둥이 치다 말다 해서 집에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한국에서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집순이었다 보니 여기 왔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는 것도 없고 딱히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 이왕 일본에 온 거 이것저것 해봐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내일은 드디어 지브리 신간 영화를 보러 갔다 올 예정이다. 내일이 어떻게 보면 일본에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 놀러 나가는 것인데 살짝 기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하늘은 맑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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