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 Oct 15. 2023

하나의 의식(儀式)

주절거림

앞으로 마주해야 하는 자리가 무섭고 두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씻고 준비하는 과정이 내겐 어떠한 하나의 의식(儀式)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떠한 의식(儀式)이냐 하면은, 나를 깨끗하게 씻기고 치장하고 깨끗한 옷을 입히며 내게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며 마음을 내려놓는 의식(儀式) 말이다. 이것들이 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내면을 마치 갑옷인 것 마냥 나를 감싸면 무언가 용기가 생기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것들이 나를 보호해 주겠지’, ‘이것들 속에서 나의 내면을 숨길 수 있겠지’ 하며 자그마한 안도감을 느낀다. 이 의식(儀式) 속에서 초반의 내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때야말로 난 비로소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치 내가 만들어놓은 제2의 인격 속에 들어간 것만 같은 기분말이다. 거울 앞에 서서 완벽한 나의 모습을 보면 아까의 한없이 여리고 불안한 눈동자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다시 한번 거울을 보며 내게 ‘넌 완벽해’, ‘넌 할 수 있어’라며 주문을 걸고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나와 밝은 빛 속으로 걸어 나간다. 이 의식(儀式)과도 같은 과정은 매번 나의 두려움과 어둠을 희석해 준다. 검은색에서 회색만으로라도 희석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강렬했던 첫 순간들은 언제나 끝나고 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